[include(틀:상위 문서, top1=류현진/선수 경력)] [include(틀:류현진)] ---- ||<-5>
'''[[류현진|{{{#000 류현진의}}}]] [[류현진|{{{#000 연도별 시즌 일람}}}]]''' || || - || ← || {{{#fff 고교 시절}}} || → || [[류현진/2006년|2006년]] || ---- [목차] == 개요 == [[파일:attachment/ryuddal1234.jpg]] 동산고등학교 시절 류현진의 [[청룡기]] 및 [[고등학교]] 시절 기록.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1학년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입학은 [[박경태(야구)|박경태]], [[김기태(1987)|김기태]], [[최승준]]과 같이 했고, 박경태, 김기태와 함께 주축 투수로서 동산고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1학년 당시 준결승까지 역투하며 팀을 제1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미추홀기]] 결승에 올렸지만,[* 결승전 직전까지 4경기에 등판해 탈삼진 21개를 기록했다.] 준결승에서 많이 투구한 나머지 [[최정]], [[배영섭]], [[배장호]]의 [[유신고등학교 야구부|수원유신고]]와의 결승전 선발투수는 [[금민철]]이 되었다. 그러나 금민철은 결승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고, 결국 류현진이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5회초에 등판했지만 3루타를 포함한 안타 4개를 얻어 맞으며 3실점해 1이닝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당했다. 팀은 4-5로 패하며 준우승의 아쉬움을 삼켜야했고 류현진은 감투상[* 준우승팀의 에이스 투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을 수상했다.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2학년, [[토미 존 서저리]] == 이 대회 이후로 류현진의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는데, 팔꿈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인하대학교병원]]에서는 2개월 동안 쉬어보라는 진단을 내렸고 류현진은 2개월간 공을 놓았다. 그러나 2개월간 휴식 후에 다시 야구를 재개하자 통증이 재발했고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는 2개월을 더 쉬어 보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런식으로 병원을 세 번 찾았고, 6개월간 휴식을 취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대학병원 대신 개인병원[* 김진섭 정형외과로 [[한국프로야구]] 선수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류현진 뿐만 아니라 오승환, 김진우, 김택형, 최충연, 장지훈, 강윤구, 금민철, 한현희, 권준헌, 박치국, 홍상삼, 류택현, 유한준, 황동재 등이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고, 구자욱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손혁은 어깨 인대 접합 수술을 이 곳에서 받았다.]을 택했고, 그 곳에서 '''이미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상황이고 수술이 불가피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잘못된 진단으로 중요한 고교 시절 때의 긴 시간을 날려 버렸으니 화가 난 류현진의 아버지는 그러한 진단을 내렸던 --돌팔이-- 대학병원에 항의를 했다. 2012년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https://youtu.be/heZjHIS_bXs?t=51|언급한 바에 따르면]] "화가 폭발하신 아버지가 병원에 쳐들어가서 난동을 부렸다"고 했는데 원래는 "아버지가 돌으셔서 깽판을 치셨다(...)"고 말했다. 이 에피소드는 결국 '류현진의 아버지가 소문난 깡패 출신이어서 성질이 더럽다'는 루머로 와전됐고 결국 지역 연고팀 [[SK 와이번스|SK]]와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졌던 [[롯데 자이언츠|롯데]]가 류현진을 외면하였다는 소문까지 커졌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보다 '''큰 부상 & 수술 경력 있는 어린 선수'''라는 우려가 가장 컸기에 SK와 롯데가 지명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팔꿈치 부상은 투수의 부상 중에 그나마 위험성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수술 후 재활기간은 각 신체부위별로 다르며 손가락/손목은 최소 6개월, 팔꿈치 최소 12개월, 어깨 최소 18개월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체가 완전히 자라서 자리잡힌 성인의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고 류현진은 수술 당시 아직 성장중인 청소년이었기에 수술을 앞두고 고심이 많았다. 결국 류현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아야 했고, 3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잡을 수 있었다. ==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3학년 == 이후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또 다시 예선부터 준결승전까지 3경기를 내리 던지면서 전부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어냈다. 특히 8강전 [[성남고등학교 야구부|성남고]]와 맞붙었을 때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022349|무려 1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어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최동원]]이 홀로 가지고 있던 전경기 무실점 승리 기록을 노릴 수도 있었던 터라 관심은 더해졌다. 그러나 지나친 무리로 인해 [[대구고등학교 야구부|대구고]]와의 결승전에서는 3이닝 5실점(4자책) 후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팀은 류현진의 강판 이후 3점을 더 내줘 8-0까지 끌려갔으나 팀 타선이 대폭발하면서 10-8로 대역전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결승전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탓에 결국 최우수선수상도 팀의 역전에 큰 공헌을 한 현천웅[* 본래 포지션은 포수이며 투수 알바도 가끔 뛰었다.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건국대학교 야구부|건국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반때도 지명을 받지 못했고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에서 신고선수로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청원고등학교 야구부|청원고]], 여강중 코치를 거쳐 2022년부터 모교인 동산고 코치로 활동 중이다.]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청룡기에서의 활약으로 인해 [[한기주]], [[김광현]] 등과 함께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되어 준결승전에서 대만을 상대로 6이닝 동안 10탈삼진을 잡는 등 호투하였다. [YOUTUBE(gr_kfhUWDBk)] === 신인 드래프트 === [[류현진/선수 경력/프로지명]],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참고할 것. [각주] [[분류:류현진/선수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