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include(틀:역대 로열 콘서트허바우 상임지휘자)] ||<-2> '''{{{+1 리카르도 샤이}}}[br]Riccardo Chailly[br]{{{-1 OMRI[* Order of Merit of the Italian Republic]}}}'''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44064452_1853735024723817_3040126595416195072_o.jpg|width=100%]]}}}|| ||<|2> '''출생''' ||[[1953년]] [[2월 20일]] ([age(1953-02-20)]세)|| ||[[롬바르디아]] [[밀라노]]||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이탈리아)]|| || '''직업''' ||[[지휘자]]|| || '''가족''' ||아버지 루치아노 샤이|| [목차] [clearfix] == 개요 ==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지휘자]]. '색채의 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디테일한 표현과 조율에 능한 지휘자로 평가된다. == 생애 == [[밀라노]]의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은 이탈리아와 프랑스 혈통이 섞여 있다.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음악을 배우며 자랐다. 20살인 1973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산하에서 스칼라 극장의 부 지휘자가 되었으며, 25세인 1978년 라스칼라에서 지휘자로 데뷔했다. 데뷔 직후 거의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빨리 유명해졌는데, 음반사 DECCA 덕분이었다. 오페라 녹음에 주력해왔던 데카는 파바로티를 기용한 윌리엄 텔 음반을 녹음할 지휘자를 물색했는데, 유명 지휘자와 녹음을 꺼리던 파바로티의 성향 때문에 무명의 실력 있는 지휘자를 구하다가 샤이를 기용하게 되었고 이후 샤이에게 가능성을 발견한 데카는 1980년 무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붙여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음반을 녹음시켰다. 이 유명곡에 의외로 변변한 녹음이 없었던 DECCA는 세계적으로 이 음반을 엄청나게 마케팅했고, 샤이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가 되었다. 80~90년대 한국에서도 성음 라이센스 음반이 독점하던 시절 므라빈스키, 카라얀과 더불어 레코드 가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차이코스키 5번 음반이 바로 샤이의 음반이었을 정도였다. 나중에 색채감과 간결함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된 샤이의 음반들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본인이 추구하는 음향, 기존 거장풍의 스타일의 절충, 그리고 적절한 생동감이 더해진 이 차이코프스키 음반을 그의 최고의 연주로 치는 사람도 있다. 이후 29세인 1982년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가 되어 7년간 역임하였으며, 이후 1988년부터 2004년까지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를,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카펠마이스터를 지냈다. 2016년부터는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뒤를 이어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2017년부터는 [[다니엘 바렌보임]]의 뒤를 이어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 및 [[라 스칼라 필하모닉]]의 각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분류:이탈리아의 지휘자]][[분류:1953년 출생]][[분류:밀라노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