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역대 의회 명예 황금 훈장)] [include(틀: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목차] > [youtube(8bzmtkhXAno,start=718)] > '''And so, with deep confidence, I call upon the citizens of the State of Arkansas to assist in bringing to an immediate end all interference with the law and its processes.''' > '''이에 저는 깊은 신뢰로서 아칸소 주의 시민들에게 요청하고자 합니다. 부디 법의 집행을 더 이상 방해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 > 1954년 9월 24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담화([[http://historymatters.gmu.edu/d/6335/|전문]]) == 개요 == '''Little Rock Crisis''' 1957년 [[아칸소]] 주의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에서 [[미국 흑인]] [[학생]]들의 [[미국 백인]] [[학교]] 등교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 자유를 표방한 미국의 '''[[흑역사]]'''이자 동시에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된다. == 요약 == 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른바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347 U.S. 483)' 재판에서 ''''피부색을 이유로 하여 [[학생]]들의 [[교육]]을 분리하거나 차별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NAACP]][* 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 당대 가장 큰 규모의 유색인종 차별 폐지 운동 단체.]에서는 [[인종차별]]이 심하던 남부의 주에 위치한 [[백인]] 학교에 [[흑인]] 학생들을 등록시키고자 하였다. [[아칸소]](Arkansas)의 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서는 성적이 우수한 9명의 학생들을 등록시키기로 하였다. 1957년 백인 학교였던 리틀록 센트럴 고등학교(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에 9명의 흑인 학생이 입학했는데 원래는 17명이었으나 이들 중 8명은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은 학생들의 이름은 아래와 같으며 이들은 리틀록 나인(Little Rock Nine)이라고도 불린다.[* 이 사건 자체를 리틀 록 나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일:Little Rock Nine.jpg]] || 미니진 브라운[br](Minnijean Brown, 1941 - ) || 엘리자베스 엑포드[br](Elizabeth Eckford, 1941 - ) || 어니스트 그린[br](Ernest Green, 1941 - )[* '리틀록 나인' 중 가장 먼저 학교를 졸업함] || || 텔마 마더셰드[br](Thelma Mothershed, 1940 - ) || 멜바 빌즈[br](Melba Pattillo Beals, 1941 - ) || 글로리아 칼마크[br](Gloria Ray Karlmark, 1942 - ) || || 테런스 로버츠[br](Terrence Roberts, 1941 - ) || 제퍼슨 토머스[br](Jefferson Thomas, 1942 - 2010) || 카를로타 라니어[br](Carlotta Walls LaNier, 1942 - ) || 학교 이사회는 해당 학군의 교육감이었던 버질 블로섬(Virgil Blossom)의 결정 하에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만장일치로 허가한 후 점진적으로 흑인 학생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나(이른바 Blossom Plan) 수많은 백인 [[학부모]]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인종차별주의자들 중에는 당시 아칸소의 주지사였던 [[오벌 포버스]](Orval Faubus, 1910 - 1994)도 포함되어 있었다. == 전개 == === 주 방위군의 봉쇄 === 1957년 9월 4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리틀록 학구(School District)가 흑인 학생들의 입학을 허가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포버스 주지사는 이를 거부하고 '''[[주방위군]]을 학교로 보내 흑인 학생들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주지사는 ''''평화에 대한 침해와 폭동, 그리고 소요의 즉각적 위험이 있으며, 사람들 및 재산에 해를 끼칠 상당히 유력한 근거가 있기 때문''''[*원문 imminent danger of tumult, riot and breach of peace and the doing of violence to persons and property.]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파일:리틀록 주방위군.jpg]]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고 있는 주방위공군. 원 안에 별이 달린 [[미군/계급#s-6|계급장]]을 통해 [[미합중국 공군|공군]] 병력임을 알 수 있다. 주 방위군은 지휘관인 주지사의 명령에 철저히 따랐으며 마리온 존슨 [[육군]] [[중령]](Lt. Col. Marion Johnson) 휘하의 주방위육군과 인근 리틀 록 [[공군]] [[기지]]에서 지원 나온 주방위공군 [[병력]]이 흑인 학생들의 접근을 봉쇄했다. 이로 인해 9월 4일 등교한 흑인 학생은 엘리자베스 엑포드뿐이었다. 흔히 그녀가 이에 저항하기 위해 혼자 등교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영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실제 이유는 집에 [[전화]]가 없어서 아무도 그녀에게 학교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리틀록 나인은 23일 다시 모였으나 수많은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시위]]대가 학교 밖에 모이는 통에 안전을 이유로 결국 수업 도중 학교에서 나가야 했다. 이 상황을 전해들은 당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3204호 명령을 내렸다. === 연방군 투입 === 3204호 명령의 요지는 ''''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즉각 해산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군|연방군]]을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포버스 주지사가 끝까지 거부하자 아이젠하워는 실제로 연방군을, 그것도 당시 정예 중에 정예인 '''[[미합중국 육군]] [[제101공수사단#s-4.1|제101공수사단]]''' 병력을 투입했다. 그 결과 '''연방군과 주방위군이 [[남북전쟁]] 이래 처음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연방군 투입과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으로 주방위군의 통수권을 주지사로부터 회수해서 주지사를 지휘계통에서 배제시키고 대통령 명령으로 주방위군 병력들을 복귀시켰기에 대치 상황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미국은 원래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바로 주지사에게서 주방위군 지휘권을 가져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이를 거부한 사례가 없으나 만약 주지사나 주방위군이 이를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사실상 그 주 혹은 부대는 중앙정부에 반란을 일으키는 셈이라서 이때는 중앙정부가 연방군을 파견하여 진압한다.] 업무만 놓고 보면 101사단 같은 정예 부대를 투입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선택으로 101사단이 투입됐고 상징적인 의미를 더하기 위해 출동한 101사단 병력은 전원 백인 장병들로만 구성됐다. 101사단 병력 투입 이틀만에 포버스 주지사는 [[백기]]를 들고 흑인 등교 금지 조치를 철회했다. 그러나 흑인 학생의 등교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여전히 학생들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101사단 병력과 대통령의 지휘를 받는 아칸소 주방위군 병력이 계속 이들을 호위하고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파일:리틀록 공수부대.jpg]] 101사단 [[병사]]들이 '''[[총검|착검]]한 [[M1 개런드]] [[소총]]으로'''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맨 앞 육군 [[이병]]의 왼팔에 달린 '울부짖는 독수리'(Screaming Eagle) 부대마크가 선명하다.[* 참고로 착검을 하고 시위대에게 겨누는건 당시 미군 [[야전교범]]을 따른 것이다. [[https://youtu.be/wjg9ZWth10Y?si=fuahzz-ybWg0PSR7|#]]] [[파일:리틀록 시위대.jpg]] 시위대 중 한 명이 101사단 병사의 무기를 탈취하려고 폭력을 쓰다가 역으로 [[개머리판]]에 얻어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연행되는 모습이다. [[파일:리틀록 주방위군2.jpg]]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주방위군의 통수권을 회수한 이후의 모습으로 '''주방위군'''이 흑인 학생들을 호위하고 있다. 투입 이후 한 학기 동안 101사단은 학교 인근에서 출동 대기 상태로 흑인 학생들의 신변을 지켰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history.com/minnijean-brown-little-rock-9.jpg]] 등교하는 학생들을 호위하는 101사단. 학생들이 타려는 차는 101사단이 학생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스쿨버스]] 대용으로 운행한 민수차량이다. == 이후 == * 최초로 졸업한 어니스트 그린은 이른바 리틀록 나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1958년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함으로서 최초의 흑인 졸업생으로 이름을 올렸으며 이는 흑인의 인권과 자존심을 상당히 고양시켰다. [[졸업식]] 당일 학교장은 어니스트에 대한 공공연한 린치 시도가 재학생들 사이에 오르내리던 상황이라 그의 안전을 우려해 졸업식에 오지 말고 집에서 우편으로 졸업장을 받으라는 제안을 했지만 어니스트는 이를 거절하고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졸업식 당일에는 린치 등 불미스러운 사태는 없었다. 졸업 후 어니스트는 미국의 미시간 주립 대학교에 입학해 학사 학위와 대학원 학위를 받았다. 1965년 그는 아돌프 협회(Adolph instituet. 남부 지역의 소수민족 여성들의 경력 개발을 위해 세워진 단체)의 건축업에 속하는 견습직을 얻었다. 1968년에서 1976년 사이 그는 필립 랜돌프(A. Philip Randolp)의 교육 기금단체(A. Philip Randolph Education Fund)의 책임자로 일했다. 또한 1985년부터는 리만 브라더스에서 일했다. 1981년에는 특출한 이글 스카우트 상(Distinguished Eagle Scout Award)을 받았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날 그간 생존해 있던 리틀록 나인 멤버 전원을 초청했다. * 미국에서 연방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주 정부]]에 간섭하여 군 통수권을 박탈한 몇 안 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여러 미디어에서 인용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드라마 [[지정생존자(미국 드라마)|지정생존자]]에도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 이 사건을 일으킨 주지사 오벌 포버스([[민주당(미국)|민주당]])는 1958년 갤럽지 앙케이트 조사로 멋진 미국인 남성 10에 들어가면서 오히려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1967년까지 주지사를 역임했지만 이후에는 번번히 낙선하고 정계에서 물러나 아칸소에서 살다가 1994년 [[전립선암]]으로 죽었다. 그는 살아 생전 [[남부연합]] 깃발 앞에서 인터뷰하는 등 흑인 차별을 지지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다만 1962년경부터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백인시민위원회와의 관계를 끊는 등 점차 온건파로 돌아섰고 임기 후반기에는 유화적인 스탠스를 취하면서 1964년 선거에서는 흑인 유권자의 81퍼센트나 되는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심지어 198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경선 당시에는 [[제시 잭슨]]을 지지하기도 했다. 전체적 삶을 보면 오히려 [[조지 월리스]]와 유사한 편.~~리틀록 사건 하나만으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었다.~~ * 재즈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가 오벌 포버스를 비판하는 곡인 'Fables of Faubus'를 작곡하여 자신의 앨범 'Mingus Ah Um'에 수록하기도 했다. [[파일:Little_Rock_Desegregation_1957.jpg]] * 리틀록 나인의 모습 중 어느 백인 여성이 흑인 학생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유명하다. 이 여성의 이름은 헤이젤 브라이언(Hazel Bryan)인데 이후 헤이젤은 1997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고 리틀록 나인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엑포드와 직접 만나 용서를 구하고 화해했다. 헤이젤은 자신이 찍힌 해당 사진이 유명해진 뒤 인종차별주의자로 두고두고 비난받아야 했다고. [[https://www.telegraph.co.uk/news/worldnews/northamerica/8813134/Elizabeth-Eckford-and-Hazel-Bryan-the-story-behind-the-photograph-that-shamed-America.html|텔레그래프 기사]] * 리틀록 9인이 재학한 센트럴 고등학교는 1998년 교정 전체가 사적지로 등록되었다. 물론 학교로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 같이 보기 == * [[앨라배마 대학교 흑인 등록 거부 사건]] * [[Blackbird]] [[분류:1954년/사건사고]][[분류:1957년/사건사고]][[분류:인종차별/사건사고]][[분류:아이젠하워 행정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