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서양음악사)] ||<-2> '''{{{+1 릴리 불랑제}}}[br]Lili Boulanger'''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Lili_Boulanger_1er_Grand_Prix_entier.jpg|width=100%]]}}} || || '''본명''' ||마리 줄리엣 올가 불랑제[br]Marie-Juliette Olga Boulanger|| ||<|2> '''출생''' ||1893년 8월 21일||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프랑스)|파리]]|| ||<|2> '''사망''' ||1918년 3월 15일 (향년 24세)|| ||[[프랑스 제3공화국]] 멤지-슈흐-센느||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프랑스)]|| || '''직업''' ||작곡가|| || '''가족''' ||언니 나디아 불랑제[* 현대음악의 스승이라고 불릴 정도로 [[레너드 번스타인]], [[다니엘 바렌보임]], [[필립 글라스]], [[퀸시 존스]], [[존 엘리엇 가디너]], [[아스토르 피아졸라]] 등의 수많은 거장 제자들을 배출한 음악교육자이자 작곡가, 그리고 지휘자이다. [[조지 거슈윈]]도 나디아 불랑제를 사사하고 싶어 했으나 거슈윈이 그만의 색채를 잃을까 봐 거절했다는 일화(거슈윈이 찾아갔던 이가 모리스 라벨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불명)는 유명하다.]|| || '''종교''' ||[[가톨릭]]||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출신의 여성 작곡가. 여성의 활동 영역, 분야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클래식 음악계에서 [[https://m.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1903121348011#c2b|선구자적 역할을 해냈던 인물들 중 하나로 높이 평가받는다.]][* [[클라라 슈만]]([[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 파니 멘델스존(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의 누이)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과 20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음악사에 큰 손실로 남았다. == 생애 ==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80305/88966661/1|나디아-릴리 불랑제 자매의 생애에 관한 글]] 불랑제는 파리 태생의 신동으로서, 그녀의 재능은 매우 어린 나이에 명백히 드러나 있었다[* 두 살 때 이미 귀에 익숙한 멜로디를 부르고는 했다.] 음악가였던 부모는 딸의 음악 교육을 장려했다. 그녀의 어머니 라이사 미셰츠카야는 1835년 로마 국제 음악상을 수상한 파리 음악원의 스승이 되는 에르네스트 불랑제와 결혼한 러시아의 공주였다. 그녀는 나이 차이가 70이 넘는 그녀의 아버지와도 사이가 좋았다. 불랑제의 할아버지 프레데릭 불랑제는 유명한 첼리스트였고 그녀의 할머니 줄리엣은 가수였다. 불랑제는 그녀의 언니 나디아와 함께 아주 어린 나이에 파리 음악원의 수업에 참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루이 비에르와 함께 음악이론과 오르간을 공부했다. 그녀는 또한 성악을 할 수 있었으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하프를 연주했다. 마르셀 투르니에와 알퐁스 하셀만스가 하프를, 엘렌 쇼몽 여사가 피아노를, 페르난도 루퀸이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1912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음악상 중 하나인 로마대상(Prix de Roma)에 출전했지만, 공연 중에 병으로 쓰러졌다. 1913년에 19세의 나이로 돌아와 칸타타 '파우스트'로 작곡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릴리는 '''로마대상 역사상 최초로 작곡상을 수상한 여성'''이라는 역사적 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유진 아데니스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바탕으로 썼다. 칸타타는 생전에 많은을 했다. 이 상 덕분에 그녀는 출판사 리코르디와 계약을 맺었다. 반면 나디아는 네 번의 실패 끝에 로마 음악 콩쿠르에 참가하는 것을 포기하고, 동생 릴리가 음악원에서 폴 비달, 조르주 카우세드와 함께 화음, 대위법, 작곡을 공부하는 앙리 달리에르의 오르간 수업에서 보조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그곳에서는 그녀의 재능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녀가 읽을 곡 자주 가져왔다. 불랑제는 1900년 아버지의 죽음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그녀의 많은 작품들은 슬픔과 상실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화려한 조화와 악기 그리고 능숙한 텍스트 설정으로 유명했다. [[가브리엘 포레]]와 [[클로드 드뷔시]]의 측면은 그녀의 작곡에서 들을 수 있으며, 아르튀르 호네거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캐롤라인 포터에 따르면, "두 자매는 모두 드뷔시의 영향을 받았고, 그들은 문학적으로 선배 작곡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두 자매 모두 연극 펠레아스와 멜리산드의 작가이자 말레인 공주의 시를 지은 모리스 매터링크의 시를 지었다. 1916년 2월, 매터링크는 릴리에게 후자의 연극을 오페라로 설정할 것을 허락했다. 릴리는 죽기 전에 오페라를 거의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1막, 2장, 대본 2편, 스케치의 짧은 악보만 남아 있다." 그녀는 만성 질환을 앓았고, 2살 때 면역 체계를 약화시킨 기관지 폐렴으로 시작하여 24살에 장내 결핵으로 이어졌다. 비록 그녀는 여행을 좋아했고 로마상을 수상한 후 이탈리아에서 여러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녀의 건강 악화는 그녀를 집으로 돌아가게 했고, 그곳에서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프랑스 군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조직했다. 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말년의 대부분을 보낸 오페라 '라 프린세스 말레인'을 끝내지 못하게 했다. 불랑제는 멤지슈흐센느에서 사망하였고, 파리 몽마르트르 공동묘지(Cimetière de Montmartre)에 묻혔다. 훗날 그녀의 부모, 언니 나디아도 같은 곳에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3917598/lili-boulanger|안장되었다.]] 나디아는 동생 릴리가 사망한 후, 자신의 작곡 실력이 동생에 비해 부족하다면서 작곡을 포기하고 교육 및 연주, 지휘 등에 주력했으며, 동생이 세상을 떠난지 60년이 넘은 1979년 타계했다. == 주요 작품 == ||[youtube(57ifMZotkh4)]||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 || ||[youtube(fT8fJMyOJRw)]|| || 내림라장조 전주곡 || * 가곡 "인어들" * 시편 * 슬픈 저녁 * 봄의 아침 * 야행성 * '''녹턴''' * 갱신 * 반사 * '''내림라장조 전주곡''' * 기다림 * 태양의 찬송가 * 반환 * '''피에 제수''' [[분류:프랑스의 작곡가]][[분류:1893년 출생]][[분류:1918년 사망]][[분류:결핵으로 죽은 인물]][[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프랑스의 가톨릭 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