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본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 구단, rd1=1. FC 마그데부르크)] [include(틀:작센안할트/행정구역)] ||<-3> '''{{{#000000 {{{+1 마그데부르크}}}[br]Magdeburg}}}''' || ||<-3> [[파일:마그데부르크 문장.svg|width=150]] || ||<-3> '''{{{#000000 휘장}}}''' || ||<-3>{{{#!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마그데부르크,너비=100%)]}}}|| ||<-3> '''{{{#000000 마그데부르크의 위치}}}''' || ||<-3> '''{{{#ffffff 행정}}}''' || || '''{{{#ffffff 국가}}}''' ||<-2>[[독일]] [[파일:독일 국기.svg|width=30]] || || '''{{{#ffffff 시간대}}}''' ||<-2>(UTC+1/+2) || || '''{{{#ffffff 주}}}''' ||<-2>[[작센안할트]] || ||<-3> '''{{{#ffffff 인문환경}}}''' || || '''{{{#ffffff 면적}}}''' ||<-2>201km² || || '''{{{#ffffff 인구}}}''' ||<-2>239,364명^^(2022년 12월)^^ || || '''{{{#ffffff 인구밀도}}}''' ||<-2>1,191명/km² || || '''{{{#ffffff 홈페이지}}}''' ||<-2>[[https://www.magdeburg.de/Home?La=2|[[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height=30]]]] || ||<-3> '''{{{#ffffff 정치}}}''' || || '''{{{#ffffff 시장}}}''' ||지모네 보리스 || [include(틀:무소속)]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ista_Magdeburg.jpg|width=800]]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마그데부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중 하나이자 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목차] == 개요 == 독일의 도시이자 [[작센안할트]]주의 주도이다. 엘베강을 끼고 자리잡고 있다. 자그마치 1200년이나 된 매우 유서 깊은 중세 도시이며 [[프랑크 왕국]] 시절부터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30년 전쟁]]까지 독일의 굵직한 역사를 함께했으며 [[한자 동맹]]의 맹주로서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 도시로 활약했다.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쇠약해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소실되고 옛 모습을 많이 잃었으나 아직도 곳곳에 1200년간의 역사를 품은 유산들이 의외로 많이 남아 있다. == 역사 == 마그데부르크는 중세 독일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중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39px-HerscherpaarMagdeburgCathedral.jpg]] ||오토 대제와 왕비 에디트의 조각상.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1250년경|| 그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가 805년 이 지역에 거주지를 세우면서 마그데부르크의 역사는 시작된다. 중세 고지 독일어로 '크고 튼튼한 요새'라는 뜻의 'Magadoburg'에서 오늘날의 도시 이름이 유래된다. 이 도시는 본래 인근 [[마자르]]족과 [[슬라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이후 962년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을 성립하면서 이곳을 수도로 삼게 되고, 사후에는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에 안장되었으니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이 도시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부터 마그데부르크는 매우 강성해졌으며 1294년에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따 중세 [[자유도시]]의 기원이 된 '''마그데부르크 도시법(Magdeburger Recht)'''이 탄생했다. 13세기 한자 동맹에 가입할 당시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2만여 도시 중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마르틴 루터]]도 여기서 잠시 활동했었으며 이에 따라 마그데부르크에도 개신교가 들어왔다. 이렇게 중세를 거쳐 근세에 이르기까지 마그데부르크는 독일 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작센 선제후국]]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은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수 백년 동안 서로 으르렁거렸다. 마그데부르크의 영향력은 한동안 꺼지지 않을 듯 했다. === [[30년 전쟁]] === 그러나 30년 전쟁 와중이던 1631년 [[요한 체르클라에스 폰 틸리]] 장군이 이끌던 가톨릭 황제군은 마그데부르크를 점령했고 이 때 대학살극이 벌어졌다. 황제군이 마그데부르크를 장악한 1630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 20일까지 황제군은 마그데부르크 내의 식량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시민들까지 무차별 학살했다. 황제군은 당시 폭주하는 군사비로 인해 제대로 된 식량과 물자를 보급받지 못해 매우 굶주려 있던 상태였고, 이 같은 상태가 엉뚱한 마그데부르크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당시 제국군 원수에서 해고 당해서 앙심을 품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의 공작으로 인해 황제군이 굶주렸다는 썰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애초에 당시의 미약한 행정력으로는 10만이 넘는 황제군을 먹여살리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발렌슈타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이 거대한 군대를 겨우 유지할수 있었지만, 그의 해임으로 인해 더이상 불가능해졌다. 이 비극은 오히려 발렌슈타인의 해임으로 인해 발생한 일에 가깝다.] 결국 6달만에 3만명에 달하던 마그데부르크의 인구가 불과 5천명으로 줄어드는 대참극이 일어났다. 30년 전쟁 역사상 늘 약탈이 있어왔지만, 이 마그데부르크 사건은 그 중에서도 역사에 남을 정도로 심각한 약탈, 방화, 살인, 강간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결국 [[개신교]] 세력을 결집시켜 30년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 그러나 이에 상관없이 마그데부르크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받았으며 이후 한자 동맹 시기의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 근대 === 이러한 참변 이후 마그데부르크의 시장이었던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 1602~1686)[* 참고로 이 사람은 근대 [[물리학]]에 상당히 큰 기여를 한 사람인데, 후술할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 말고도 [[마찰 전기]]에 대한 연구로 유명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탈레스]]가 [[호박(보석)|호박]]을 천에 문질러서 마찰 전기를 발생시켰던 것을, 게리케가 [[구리]]로 된 큰 구를 만들어서 천에다 문질러서 탈레스의 실험을 재현하면서, [[금속]]이 강력한 [[유전체]]임을 입증했다.]는 폐허가 된 마그데부르크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그에 의해 대기압의 세기를 나타낸 것으로 유명한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이 1654년 시행되어 기체 역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실제 이 실험은 [[레겐스부르크]]에서 열린 [[제국의회(신성 로마 제국)|제국의회]]에서 황제 [[페르디난트 3세]]가 보는 앞에서 실행되었다.] 1680년부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에 편입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가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이 되며 프로이센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되었으며 [[틸지트 조약]]에 의해 [[프랑스 제1제국]]의 [[괴뢰국]]인 [[베스트팔렌 왕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배한 1815년 [[빈 회의]]를 통해 [[프로이센 왕국]]으로 반환되었고 이후 [[독일 제국]]의 도시가 되었다. === 현대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MagdeburgStalinist.jpg]]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그데부르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1940년 8월 22일 첫번째 연합군 공습을 받은 이래로 1943년부터 꾸준히 연합군의 폭격을 받았고 [[드레스덴 폭격]]이 이루어지기 1달 전인 1945년 1월 16일 영국 공군에 의해 주도된 마그데부르크 공습으로 인해 1만 6000여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 과정에서 마그데부르크에 남아있던 문화 유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45년 4월 11일 미 제9군이 [[엘베강]] 서쪽의 마그데부르크 도심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5월 5일 엘베강 동쪽에 [[붉은 군대]]가 진주한다. 독일 항복 이후 6월 1일 마그데부르크 엘베강 서쪽지역을 점령하던 미군들이 철수하고 영국군이 점령했다가 7월 1일 소련군에게 넘어간다. 곧이어 동독 정권이 수립되면서 재건 계획에 의해 남아 있던 문화 유산들의 잔해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소비에트 식 건축물들이 들어선다. 이렇게 [[동독]] 시절을 거치면서 마그데부르크는 그 외형이 이전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만 오토 대제가 대관식을 올렸던 마그데부르크 성당 등 중요한 건축물들은 일부 보존되었다.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동서독 통일|통일]]과 함께 마그데부르크는 부활한 [[작센안할트]] 주의 주도로 새롭게 출발한다. 2005년 도시 설립 1200주년 기념 행사가 마그데부르크에서 열렸다. 다만 통독 이후에 여느 동독 도시들처럼 인구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같은 주의 [[할레]]보다 인구가 아주 약간 적다. 주민들 정서도 구 동독 지방의 그것과 비슷하게 다소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 명소 == [[파일:5omchf5hswy11.jpg|width=600]] * '''마그데부르크 대성당''' 937년 처음 세워진 매우 유서깊은 성당이다. 이곳에 오토 대제가 묻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Gr%C3%BCnezitadelle.jpg]] * '''그뤼네 치타델레(Grüne Zitadelle)''' 오스트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에 의해 설계되었다. 건물 자체는 훈데르트바서가 2000년 타계한 이후 착공되었으나 설계는 그가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으로 간주된다. [[파일:magdeburg_water_bridge.jpg]] * '''마그데부르크 수로''' 폭이 32m, 깊이가 4.25m 나 되는 대형 수로이다. 엘베강을 건너 마텔란트 운하와 엘베-하벨 운하를 잇기 위해 2003년 10월 10일에 완공된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배가 다니는 수로이다. [[파일:wlfans.jpg]] 이 수로는 위 유체역학적 질문으로도 유명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정답은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다.'이다. 선박이 수면 아래 물에서 차지하는 부피에 따른 질량만큼 즉, 배수량만큼만이 배의 질량인데 수로와 [[운하]] 나아가 운하 외에 존재하는 물의 양은 그보다 훨씬 많아 수위의 큰 변동은 없다. 따라서 구조적 문제가 발생할 만큼의 변화는 없다. == 자매 도시 == * [[파일: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기.svg|width=23]]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 * [[파일:독일 국기.svg|width=23]]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 [[파일:미국 국기.svg|width=23]] [[미국]] [[내슈빌]] *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width=23]]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23]] [[폴란드]] [[라돔]] * [[파일:중국 국기.svg|width=23]] [[중국]] [[하얼빈시]]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23]] [[프랑스]] [[르아브르]] == 여담 == g가 무성음화하기 때문에 독일어 발음은 [ˈmakdəˌbʊʁk] 또는 [ˈmaxdəbʊɐ̯ç]에 가깝지만 규정 용례는 마그데부르크이다. 일본어로는 마쿠데부루쿠(マクデブルク). [[마그데부르크 중앙역|중앙역]]을 중심으로 철도 노선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많은 구 동독 지역이 그렇지만 이곳도 [[네오나치]]가 상당히 날뛰는 곳이다. 2006년 이곳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이 네오나치로부터 폭행을 당해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독일 제국]] 시절에 도시의 이름을 딴 순양함 함급이 있었다. [[마그데부르크급 경순양함]] 참조. 참고로 1번함 마그데부르크는 독일의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의 원인을 제공했다. 독일 축구 2부 리그에 해당하는 [[2. 분데스리가]]의 [[1. FC 마그데부르크]]가 이 도시를 연고로 하고있다. 동독시절엔 [[SG 디나모 드레스덴]]과 함께 강호로 뽑혔지만 통일후 사이좋게 강등됐다. 그리고 현재도 [[SG 디나모 드레스덴]]과의 라이벌의식을 불태우고 있다. 이 둘의 더비를 '''엘브클라시코'''라고 한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엘베강]] + [[엘 클라시코]]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브란덴부르크]], 마그데부르크, 할버슈타트, [[슐레지엔]]만 국가의 본체로 구성되면 충분하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강철왕국 프로이센 p.340.]. 마그데부르크가 [[호엔촐레른 가문]]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역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반면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로이센 공국]]의 [[동프로이센]]은 전쟁이 일어나면 일단 포기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프로이센 수뇌부는 동프로이센에 별 미련이 없었다.]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를 통일]]한 [[사보이아 가문]]이 마그데부르크 출신이다.[* 최근 연구 결과 [[신성 로마 제국]] [[작센 왕조]]와의 혈연을 강조하기 위해 조작했다는 것이 정설이고 유전학적 분석에 따르면 [[부르고뉴]] 또는 [[프로방스]] 출신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애초에 이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프랑스 문화권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최근 연구 결과가 더 타당성이 있는 분석이다.] 마그데부르크에서 스위스 제네바 일대까지 내려와 [[아를 왕국]] 일대의 현재 프랑스 [[사부아]]와 이탈리아 [[발레다오스타]]에 터전을 잡아 [[사보이아 백국|사보이아 백작]]으로 서임된 후 [[토리노]]를 상속받아 통치하다 16세기 이후 완전히 이탈리아화하여 [[사보이아 공국]], [[사르데냐 왕국]]을 거쳐 통일 [[이탈리아 왕국]]을 수립하였다. 2022년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텔]]이 이곳에 공장(일명 "기가파브릭 (Giga-Fabrik)")을 지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2023년에 착공하여 2027년 완공 예정이며, 1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전망이다. 입지 선정의 기준은 [[라이프치히-할레 국제공항]]과 가까운 위치인 점,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생산 공장과 그륀하이데(Grünheide)의 [[테슬라]] 기가팩토리(Gigafactory)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점, 친환경 에너지 공급이 원활한 북독일 지역인 점 등이라고 한다. [각주] [[분류:작센-안할트]][[분류:독일의 도시]][[분류:독일의 옛 수도]][[분류:한자동맹 가맹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