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스페인 관련 문서)] [[파일:k5kjrft4bqlti7lf3bbt6ozog4_2000.jpg]] [[스페인어]]: Palacio Real de Madrid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의 [[수도(행정구역)|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스페인 왕실의 [[법궁|정궁]](正宮)이다. 마드리드에서는 가장 보안이 철저해 박물관 내부 각 방마다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살벌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극히 일부의 박물관 구간만 공개되며 근대까지 스페인 왕실에서 사용했던 내부를 전시하고 있다. == 역사 == 본래는 [[알카사르]] 데 마드리드(Alcazar de Madrid)[* Alcazar de Madrid라고 [[구글]] 이미지 검색하면 그 원형을 볼 수 있다.]라는 [[카스티야 왕국]]의 트라스타마라 왕조 시대부터 사용했던 [[무데하르]] 양식의 궁전이 있었다. 트라스마타라 왕조가 단절되고 [[압스부르고 왕조]]로 넘어간 이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스페인의 수도로 정하면서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Juan Bautista de Toledo)에 의해 개축되었으며 [[펠리페 3세]], [[펠리페 4세]]를 거치며 개축, 보수되어 전성기 [[스페인 제국]]을 상징하는 크고 멋진 첨탑이 양쪽으로 멋있게 지어져 있는 독창적이고 근엄했던 건물로 자리잡았다. 알카사르 데 마드리드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스페인 왕위가 [[압스부르고 왕조]]에서 [[보르본 왕조]]로 교체되면서도 계속 사용되었지만 1734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펠리페 5세]]는 [[이탈리아인]] 건축가 필리포 유바라(Filippo Juvarra)[* [[사보이아 공국]]-[[사르데냐 왕국]]에서 활동했던 건축가로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 밑에서 수페르가 성당을 지은 인물이다. 그 외에도 베나리아 궁전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보이아 가문]]의 궁전이 대부분 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에게 의뢰하여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스 왕국]]의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을 지어줄 것을 부탁했고 그래서 탄생한 궁전이 오늘날의 마드리드 왕궁이다. 보르본 왕조는 계속 이 궁전을 사용했으며 [[스페인 내전]] 당시 파괴되기도 했으나 이후 금방 복원되었다. == 기타 == 현재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일가가 거주하고 집무하는 곳은 마드리드 왕궁이 아니라 마드리드 외곽의 사르수엘라 궁(Palacio de Zarzuela)이다. 조악하게나마 한국에 비유하자면 마드리드 왕궁은 [[경복궁]], 사르수엘라 궁은 [[창덕궁]]에 비유할 수 있다. [[보르본 왕조]]를 [[스페인/역사|스페인 역사]]에서 영광스러웠던 [[압스부르고 왕조]]가 망하면서 '옥좌를 날로 먹은 [[프랑스인|프랑스 놈들]]'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스페인인|스페인 사람]]들은 [[베르사유 궁전]]과 비슷한 이 왕궁을 노골적으로 저평가하는 편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시조 [[펠리페 5세]]는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의 피를 물려받았다. 펠리페 5세의 할머니 [[마리아 테레사(스페인)|마리아 테레사]]는 압스부르고 왕조의 마지막 국왕 [[카를로스 2세]]의 이복 누나였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혈연 자격으로 스페인 왕위를 계승한 것이다. 물론 [[루이 14세]]가 [[프랑스 왕국|프랑스]]의 영향력 확장을 노리고 둘째 손자의 즉위를 지지하기는 했지만, 펠리페 5세가 아무 연고도 없이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 여담으로 [[카를로스 3세]] 치세에 현재 규모보다 더 크게 확장하려 했으나 재정 부족 등의 이유로 무산되었다.[[https://www.skyscrapercity.com/threads/monumentos-que-pudieron-haber-sido-pero-no-fueron-o-desaparecieron.856526/page-22|#]] 입장료는 2022년 기준 13[[유로]]이다. [[분류:스페인의 궁전]][[분류:마드리드]][[분류:화폐의 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