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마르쿠스 요타피아누스.jpg|width=100%]] || || '''이름''' ||마르쿠스 요타피아누스[br](Marcus Jotapianus)|| || '''출생''' ||미상|| || '''사망''' ||[[249년]]|| || '''직위''' ||미상|| || '''반란 대상''' ||[[필리푸스 아라부스]]||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필리푸스 아라부스]] 황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당했다. == 생애 == 요타피아누스는 동방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일부 학자들은 그가 [[콤마게네 왕국]]의 왕족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에 따르면, 요타피아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확실하며, 그가 반란의 정당성을 설파할 때 자신의 혈통을 과장하려고 지어낸 것일 수도 있다. 필리푸스 황제는 시리아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고향인 트라코나티에 대대적인 지원을 한 걸 제외하면 동방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와 체결한 협약에 따라 배상금 50만 데나리우스를 마련하기 위해 동방 속주에 막대한 세금을 물렸다. 이때 그의 형이자 동방 총독인 [[율리우스 프리스쿠스]]가 심한 수탈을 일삼았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동방 주민들은 반란을 일으켰는데, 요타피아누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황제를 칭하고 동전을 주조했는데, 오늘날 그가 주조한 조잡한 동전 몇 개가 발견되었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반란에 가담한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진압 시기는 [[데키우스]] 황제 즉위 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분류:로마 제국/군인]][[분류:로마 제국/정치인]][[분류:24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