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로마 공화국 집정관]][[분류:기원전 3세기 집정관]][[분류:로마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기원전 3세기)] ||||<#800080> {{{#ffffff {{{+3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 }}}[br]{{{-1 [[라틴어]]: Marcus Pomponius Mathō }}} }}} || ||<#800080> {{{#ffffff '''생몰년도''' }}} ||미상 ~ 기원전 210년 또는 204년 || ||<#800080> {{{#ffffff '''출생지''' }}} ||이탈리아 로마 || ||<#800080> {{{#ffffff '''사망지''' }}} ||이탈리아 로마 || ||<#800080> {{{#ffffff '''지위''' }}} ||[[노빌레스]] || ||<#800080> {{{#ffffff '''국가''' }}} ||[[로마 공화정]] || ||<#800080> {{{#ffffff '''가족''' }}}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조부)[br]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아버지)[br][[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형제)[br]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아들) || ||<#800080> {{{#ffffff '''직업''' }}} ||[[로마 공화정]] [[집정관]] || ||||<#800080> {{{#ffffff '''로마 공화정 집정관''' }}} || ||<#800080> {{{#ffffff '''임기''' }}} || 기원전 231년 || ||<#800080> {{{#ffffff '''전임''' }}}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기원전 232년 집정관)|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br][[마르쿠스 푸블리키우스 말레올루스]] || ||<#800080> {{{#ffffff '''동기''' }}} ||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마소]] || ||<#800080> {{{#ffffff '''후임''' }}} ||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바르불라]][br][[마르쿠스 유니우스 페라]]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공화국]] [[집정관]]. == 생애 == 고대 로마의 [[노빌레스]] 가문인 폼포니우스 씨족의 일원이다. 로마 공화국 후기부터 전해지는 전승에 따르면, 이들은 로마의 2번째 국왕 [[누마 폼필리우스]]의 아버지 폼포니우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는 누마 폼필리우스의 족보가 로마인들 사이에서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대의 많은 학자들은 사비니족 남성들이 흔히 사용했던 개인 이름인 폼포에서 유래했을 거라며, 이들이 사비니족이었다가 로마에 귀순한 평민이라고 추정한다. [[파스티 카피톨리니]]에 따르면, 조부, 아버지 모두 마르쿠스라는 프라이노멘을 사용했다고 한다. 형제로 기원전 233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외조부인 [[마니우스 폼포니우스 마토]]가 있었다. 기원전 231년 [[가이우스 파피리우스 마소]]와 함께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이 시기에 사르데냐인들이 로마를 상대로 재차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이들을 토벌할 임무를 부여받고 사르데냐에 출진했다. 고대의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도망치는 반란자들을 추적하기 위해 [[개]]를 사용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기원전 217년 [[트라시메노 전투]]에서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전사하고 로마군이 궤멸되었을 때, [[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기원전 220년 집정관)|루키우스 베투리우스 필로]]가 고위 행정관 선거를 주관하기 위한 [[독재관]]에 지명된 뒤 그를 [[기병장관]]에 선임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2주 후 선거를 부정확하게 실시했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했다. 기원전 216년 법무관에 선임된 뒤 로마와 외국인간의 소송 문제를 담당했다. 기원전 215년 갈리아 키살피나 총독으로 부임했으며 기원전 214년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기원전 214년 말 후임자인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에게 지휘권을 넘기고 로마로 돌아갔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는 기원전 210년과 기원전 204년에 [[아우구르]]와 데켐브리(Decemvir: [[시빌라 예언서]] 관리자)를 역임하던 '마르쿠스 폽포니우스 마토'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학자들은 둘 중 한 명은 그의 사촌일 거라고 추정한다. 아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토는 기원전 204년 법무관을 맡아 시칠리아를 통치했으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프리카 원정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