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0E6E1A6100000578-865_634x405.jpg|width=100%]] || ||<-2> '''매튜 그라함 "매트" 맥케이 [br] (Matthew Graham "Matt" McKay)''' || || 생년월일 || [[1983년]] [[1월 11일]] ([age(1983-01-11)]세) || ||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호주)] || || 출신지 || [[퀸즐랜드]] 주 [[브리즈번]]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신체조건 || 171cm || || 프로입단 || 2005년 [[브리즈번 로어 FC]] || || 소속팀 || 브리즈번 스트라이커스 (2001~2004) [br] 이스턴 서버브스 (2004) [br] [[브리즈번 로어 FC]] (2005~2011) [br] [[인천 유나이티드 FC]](2005~2006, 임대) [br] [[창춘 야타이]](2009/^^임대^^) [br] [[레인저스 FC]] (2011~2012) [br] [[부산 아이파크]](2012) [br] [[창춘 야타이]] (2013) [br] [[브리즈번 로어 FC]](2013~2019) || || 국가대표 || U-20 : 4경기 / 0골 [br] U-23 : 1경기 / 0골 [br] 59경기 / 2골 || [목차] [clearfix] == 소개 ==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까지 호주 대표팀의 간판 스타로 활동했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미드필더이다. 탁월한 시야와 패스, 기복없는 플레이로 많은 각광을 받아왔지만 이상하게도 해외 진출 복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 선수 경력 == === 프로 데뷔 === 브리즈번 지역 세미프로 팀에서 뛰던 맥케이는 2005년 [[A리그]] 출범과 동시에 리그 참여를 결정한 [[브리즈번 로어]]에 입단했다. 당초 [[서혁수]]와 [[신태용]]이라는 쟁쟁한 미드필더들을 받혀줄 카드로 선택된 것이었지만 [[신태용]]이 A리그 데뷔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서 기회를 얻게 된다. 2006년에는 국가대표 데뷔 기회를 받을 정도로 맥케이는 점차 뜨는 이름이었다. ==== 의문의 [[인천 유나이티드]] 임대 ==== 어찌 보면 첫 해외 진출인데 시작부터 이상하게 꼬였다... 2006년에 [[인천 유나이티드]]는 여름 이적 시장에서 단기임대로 맥케이를 영입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까지는 괜찮은 그림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연맹에 등록되지 않았다.''' 당시 전반기 인천의 외국인 선수는 [[제난 라돈치치]], [[셀미르]], [[야스민 아기치]]가 있었는데 셀미르와 아기치를 내보내면서 아기치가 맡던 자리에 맥케이를 데려오기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2006년 2월에 열렸던 통영컵에서도 맥케이와 연결되어 있던 인천은 결국 단기 임대로 맥케이를 데려오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인천이 연맹에 등록한 선수는 맥케이가 아니라 [[레인저스]] 출신에 세르비아 국대 출신인 [[드라간 믈라데노비치]]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블라제 일리요스키|바조]]까지 영입하며 셀미르의 공백까지 메웠고 인천의 외국인 쿼터는 그대로 다 찼으며, 때문에 경기 출장은 커녕 등록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결국 드라간은 성공했고 바조는 실패했지만[* 굳이 따지고 보면 나쁘지는 않았지만, 기대치에는 못 미쳤고 향수병이 겹쳤다.] 맥케이는 그럴 기회조차 없이 허송세월하다가 브리즈번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 1차 임대 복귀 ==== 맥케이는 인천에서 돌아온 이후 다시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매 시즌 득점도 적절히 기록해주고, 열심히 뛰어주면서 제 역할을 다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국가대표 복귀를 이루어내는 데 성공했다. ==== [[창춘 야타이]] 임대 ==== 다시 폼을 끌어올린 맥케이는 2009년에 중국 창춘으로 임대를 갔다. 임대를 간 기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아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는 않았고, 얼마 안 가서 브리즈번으로 복귀한다. ==== 2차 임대 복귀 ==== 다시 돌아온 맥케이는 브리즈번의 우승 차지에 공헌하는 등 훌륭한 모습을 보여줬고, 이 시기에 국가대표에서도 주축으로 입지가 빠르게 상승하였다. 2010~2011 시즌에는 브리즈번의 캡틴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 [[레인저스]] 진출 === 브리즈번에서 주축 선수로 성장, 승승장구하며 호주 정상급 미드필더가 된 맥케이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11년 8월 스코틀랜드의 명문 [[레인저스]]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레인저스에서 맥케이는 출전 자체가 3경기에 그쳤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레인저스가 파산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것.''' 구단 자체가 혼란에 빠져있었고, 그 과정에서 4부리그 강등까지 확정되었다. 상황이 이러니 맥케이가 더 이상 레인저스에 머물 이유는 없어졌다. === [[부산 아이파크]] === 미드필드에 세밀함을 더할 선수를 찾던 [[안익수]]의 레이더망에 걸린 맥케이는 2012년 부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마침 [[레인저스]]가 파산하여 타이밍이 좋았다. 부산에선 세번의 해외진출 신패를 딛고 그라운드에서 맹활약했다. 27경기 1골 6도움을 기록하며 부산의 초반 약진을 견인했지만 시즌 중반 부상을 당하면서 그 기세가 꺾여버렸다. 부상만 없었다면 훨씬 더 멋진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스텟 중에서 1골 5도움이 전반기에 나온 것이니... 2012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맥케이는 2013년에도 부산과 함께 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윤성효|세제믿윤]]이 부임하면서 동 포지션에 숭실대 선수들로 가득 채우는 바람에 창춘으로 이적하고 말았다. === 이후 활약 === 창춘에 컴백한 맥케이는 16경기에 출전했지만, 감독과의 불화가 생기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갔다. 브리즈번에서는 여전히 중심을 잡아주는 선수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는 중. 오랜 기간 해외무대를 전전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브리즈번 로어]]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 남은 듯하다. 고향 팀이기도 하고. 2019년 4월, 시즌 종료와 동시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https://asiafootball.info/entry/former-busan-mckay-announce-retirement|#]] == 국가대표 경력 == 청소년 대표팀 경력도 어느 정도 있었고, 브리즈번에서의 활약을 통해 성인 대표팀에 입성했다. 레인저스 시절 잠시 입지가 흔들렸지만, 부산 이적 이후 다시 국가대표로 복귀했다. == 플레이 스타일 == 공수 양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체력적으로도 강인하다. 이런 조건을 활용해서 풀백으로 뛴 경험도 있다. == 관련 문서 == * [[외국인 선수/역대 프로축구]] [[분류:1983년 출생]][[분류:호주의 축구선수]][[분류:미드필더]][[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K리그/역대 아시아 쿼터]][[분류:브리즈번 로어 FC/은퇴, 이적]][[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창춘 야타이/은퇴, 이적]][[분류:레인저스 FC/은퇴, 이적]][[분류:부산 아이파크/은퇴, 이적]][[분류:호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참가 선수]][[분류:호주의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참가 선수]][[분류:2015 AFC 아시안컵 호주 참가 선수]][[분류:2003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아랍에미리트 참가 선수]][[분류:브리즈번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