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명경안(明敬安) || || 생몰 ||[[1852년]] ~ ? || || [[출생지]] ||[[전라도]] [[진안군|용담군]] 이동면 보촌리[[http://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Popup.do?goTocode=0&mngNo=10685|#]][br](현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보촌마을)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명경안은 1852년경 전라도 용담군 이동면 보촌리(현 전라북도 진안군 동향면 대량리 보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6년 전라북도 무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문태수(독립운동가)|문태수]]에게 가담했다. 이후 이용이(李用伊) 등과 함께 1909년 2월 5일 전북 용담에서 화약 3근을 제조하고 총 2정을 수리하여 공급하는 등 문태수 의병대의 화력 지원 활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일경에 체포된 그는 1909년 6월 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경력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명경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진안군 출신 인물]][[분류:1852년 출생]][[분류:건국훈장 애족장]][[분류:서촉 명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