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후삼국시대 호족들)] '''明貴'''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삼국시대]]의 인물. 증성(甑城)[* 오늘날 [[평안남도]] [[강서군]] 일대에 해당된다. 북한의 행정구역으로 치면 [[남포시]] 지역.] 일대에서 활동했다. [[삼국사기]] 열전 궁예편에서 그의 기록이 나오는데, [[905년]] 평양성주 [[검용(후삼국시대)]]이 [[궁예]]에게 투항하자 증성 일대에서 활동했던 황의적(黃衣賊), 적의적(赤衣賊)과 함께 귀부했다는 기록이 전부다. == 기타 == 그가 궁예에게 귀부한 이유는 나오지 않았으나, 평양과 강서지역 간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검용의 투항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측된다. 검용과 마찬가지로, 궁예에게 투항하기 전에 통일신라의 지배 하에 있던 지방 세력 출신인지조차 알 수 없는데, 삼국사기 지리지 기록상 대동강 이북 쪽으로는 신라가 군현을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삼국사기 지리지가 [[경덕왕]]~[[헌덕왕]] 시기 [[9주 5소경|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을 다루고 있으므로, 헌덕왕 이후 70여년 기간 동안 평양, 강서까지 진출했을 것이란 설도 있긴 하다.] [[분류:후삼국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