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명운행(明雲行) || || 생몰 ||[[1874년]] ~ 미상 || || [[출생지]] ||[[평안북도]] [[강계군]] 공서면 서부 || || 사망지 ||미상 || ||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명운행은 1874년경 평안북도 강계군 공서면 서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8일 김경하(金京河), [[정준(독립운동가)|정준]], [[한봉민]] 등이 주도한 강계군 독립만세시위에 가담해 수천명의 시위대와 함께 북문에 위치한 군청, 헌병분견소, 천도교구를 향해 행진했다. 행렬이 거의 북문에 도달했을 때, 일제 기마헌병들이 무차별 발포했고, 현장에서 정준, 김병찬(金秉賛), [[손주송]], 한씨(韓氏) 부인이 사망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후 명운행은 체포되어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의 경력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명운행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강계시 출신 인물]][[분류:1874년 출생]][[분류:건국훈장 애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