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90deg, #14B53A 25%, #FCD116 25%, #FCD116 75%, #CE1126 75%);color:#000;" }}} || ||<-6><:>{{{#FFFFFF {{{+4 '''Mopti''' }}}[br]ߡߏߕߌ[br]몹티 }}} || ||<-6>{{{#!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Mopti,너비=100%,높이=300px)]}}}|| || '''국가''' ||[include(틀:국기, 국명=말리)] || || '''행정구역''' ||[[몹티주]] || || '''면적''' ||40km^^2^^ || || '''인구''' ||114,296명[* 2009년 기준.] || || '''시간대''' ||[[시간대|UTC+00:00]] (GMT)) || [목차] [clearfix] == 개요 == [[말리]] [[몹티주]]의 주도이다. == 역사 == [[1828년]] 4월, [[프랑스]] 탐험가 르네 카이에가 [[젠네]]에서 [[팀북투]]로 가는 도중 이 곳에 들려 진흙벽돌로 지은 집에 사는 동네라고 묘사했다. 카이에가 이사카라고 부른 이 지역은 약 700명에서 800명 정도가 살면서 쌀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몹티는 당시 [[세쿠 아마두]]가 세운 [[마시나 제국]]의 일부분이었으며, [[1862년]] [[우마르 탈]]에 의해 마시나 제국의 수도 [[함둘라히]]가 함락당하면서 [[투콜로르 제국]]에 합병된다. [[1893년]], [[프랑스군]]이 이 지역을 점령해 [[프랑스령 수단]]으로 편입시킨다. [[20세기]] 초반에 마을은 크게 성장했으며,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업지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이 도시 내 경제 발전을 이끌게 된다. [[1933년]], 프랑스 식민국에서는 [[젠네 모스크]]를 본따 만든 대모스크 건설을 지시했다. [[2012년]], [[말리 내전]] 당시 반란군이 말리 북부 지역을 점령했을 때 몹티만 북부 지역 대도시 중 유일하게 정부군이 장악하던 도시였다. == 경제 == 상업지구와 [[말리]] 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가 위치해 있어 [[타우데니]]에서 채광된 암염과 쌀을 비롯한 여러 작물들을 가지고 무역활동을 하면서 도시가 발전해 왔다. 몹티에는 대모스크가 위치해 있어 인근 지역에서 관광도 많이 오는 도시다. [[2012년]], [[말리 내전]]으로 인해 관광객의 발걸음이 멈췄으나, 전쟁으로 인해 반란군이 장악한 지역으로부터 피난 온 사람들이 몹티로 밀려들어오면서 몹티의 경제를 촉진시키기도 했다. == 출신 인물 == * [[아마두 투마니 투레]] : 제4대 [[말리]] 대통령 == 여담 == * [[풀라어]]로 모임이라는 뜻이다. 이는 보조어로 지어진 원래 지명인 사간(Sagan)을 대체했다. [[분류:말리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