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고려(무신정권)]][[분류:고려의 후궁]] [include(틀:고려의 후궁/의종 ~ 공양왕)]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5AA58, #B6D592 20%, #B6D592 80%, #85AA58); color: #3F6864)" '''조선 의종의 후궁[br]{{{+1 무비 | 無比}}}'''}}} || || '''생몰년''' ||미상 || || '''이름''' ||무비(無比) || || '''부군''' ||[[의종(고려)|의종]] || || '''자녀''' ||'''슬하 3남 9녀'''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의종(고려)|의종]]의 후궁. 이름이 [[무비]]로, 정식 후궁이 아니었다. 성씨와 생몰연도는 알 수 없다. == 생애 == 원래 [[남경(고려)|남경(南京)]]의 궁인이었다가 왕의 눈에 들어 총애를 받았다. 그녀는 무려 3남 9녀를 낳았다. 무비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환관 백선연(白善淵)이 있었다. 백선연은 남경의 관노 출신으로 의종이 남경에 갔을 때 보고 데려와 ‘양자(養子)’라 부르며 총애했던 인물이었다. 이 때문에 무비와 백선연 두 사람이 간통을 한다는 소문도 났을 정도다. 관리 [[문극겸]]은 이들이 추잡한 행동을 하고 술사(術士) 영의와 미신으로 왕을 유혹해 재물을 낭비한다며 백선연과 무비를 죽이라고 상소하기도 하였다. 의종실록을 적은 고려시대의 사관(史官)은 의종 패망의 원인을 불교와 귀신 숭배, 아첨하는 신하와 간사한 내시 및 술사, 그리고 무비를 지목하고 있다. 즉 무비가 안에서 일을 주관하며 왕의 비위를 맞춰 감언이설이 조정에 충만하고 충직한 말을 들을 수 없어 변란이 일어났다고 쓰고 있다. [[무신정변]]이 일어나자 무비는 개경 근처에 있는 청교역(靑郊驛)으로 도망가서 숨었다. 이를 [[정중부]]가 알고 잡아 죽이려 하였는데 공예왕후가 간청해 죽음을 면하고 왕을 따라 거제로 갔다. 이후 3년 뒤 의종은 시해되었는데, 무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 대중매체에서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무비(무인시대))] 대하드라마 [[무인시대]]에서 [[김성령]]이 무비 역을 맡았다. '[[이의방]]이 의종의 애첩을 취했다'는 기록을 기반으로 하여 이의방과 교분을 맺는 것으로 각색되었는데, 실제 역사상 이의방이 무비를 취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무비, version=58, paragraph=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