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文立 (? ~ 279)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촉나라 및 [[서진]]의 인물. 자는 광휴(廣休). 익주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출신. == 생애 == 촉나라 시절 태학에 들어가 《모시》, 《주례》, 《예기》, 《의례》 등 다양한 유학 경전을 전공하고 [[초주]]의 스승이 되었다. 당대 문사들은 문립을 [[안회]]와 같다 평했고, [[진수(역사가)|진수]], [[이밀(촉한)|이밀]]은 자유, [[자하]]와 같다고 했으며, [[나헌]]은 [[자공]]과 같다고 하였다. 이후 임관하여 관직이 상서까지 이르렀다가, 촉이 평정되고 진나라에서 수재로 천거받아 낭중이 되었다. 266년에 제음태수로 임명되었다가 중앙에 부름을 받아 태자중서자가 되었으며, [[제갈량]], [[장완]], [[비의]]의 자손이 중원을 방황하고 있으니 이들에게 관위를 주어 등용하면서 파촉의 민중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오의 백성들의 기대를 이 곳으로 돌리는 것이 좋다고 상표했고 이 일은 모두 시행되었다. 조칙에서 문립이 충실하고 마음이 바르면서 청렴하며, 사려가 깊고 재능이 깊다고 칭찬하면서 이전의 치적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문립을 산기상시에 임명했다. [[사마염]]이 이름높은 정경에 대해 추천하지 않는 것을 묻자 늙은데다가 명예를 바라지 않기에 추천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서역으로부터 말이 헌상될 때 사마염이 이 말을 어찌하냐고 묻자 태복에게 물으라고 했고 사마염은 이를 옳게 여겼다. 위위에 승진해 279년에 사망했고 저술한 상주문, 시, 부를 모아 수십 편이 세상에 전해졌다고 한다. [각주] [[분류:촉한의 인물]][[분류:서진의 인물]][[분류:27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