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 ||<:> {{{+5 '''[[勿]]'''}}} ||<:> {{{+5 '''[[忘]]'''}}} ||<:> {{{+5 '''[[在]]'''}}} ||<:> {{{+5 '''[[莒]]'''}}} || ||<:> 말 '''물''' ||<:> 잊을 '''망''' ||<:> 있을 '''재''' ||<:> 나라이름 '''거''' || [목차] == 개요 == '어려웠을 때를 잊지 말라'는 [[고사성어]]로, 문자적으로는 '거나라에 있을 때를 잊지 말라'라는 뜻이다. '''무망재거'''(毋忘在莒)로도 쓴다. == 출전 == 《[[사기(역사책)|사기]]》 전단열전·《[[관자]]》 소칭 == 유래 == 두 개의 고사를 유래로 한다. 둘 다 배경 자체는 거나라지만, 주인공은 모두 제나라 인물이다. === [[제양왕]]·[[전단(전국시대)|전단]] 유래 === [[전국시대]] [[제나라]]는 강성했지만, [[제민왕]]의 외교 실패로 인한 5국 연합군의 침공으로 민왕은 살해되고 70여 성이 [[연나라]]에 점령되어 멸망 일보직전에 놓여 있었다. 이때 제민왕의 태자였던 [[제양왕]]은 거성(莒城) - 옛 [[거|거나라]] 수도성 - 으로 도망하여 숨어지냈다가 거성 사람들에게 새 왕으로 옹립되어 이곳을 지켜냈다. 다른 한 성인 즉묵성(卽墨城)을 지키고 있던 [[전단(전국시대)|전단]]이 연나라 대장 [[악의]]를 실각시키고 악의 대신 온 적장 [[기겁]]을 [[화우계]]로 물리쳐 마침내 점령된 나머지 70여 성을 되찾아 제나라를 회복할 수 있었다. === [[제환공]] 유래 === [[춘추시대]] [[제나라]] 군주 [[제양공]]과 [[공손무지]]가 잇따라 살해되면서 제나라는 내분에 빠졌고, 외국에 나가 있던 제양공의 두 동생인 공자 규와 공자 소백([[제환공]])이 제나라 군위를 놓고 겨루게 되었다. 노나라에 있는 공자 규보다 거나라에 있는 공자 소백이 먼저 제나라에 도착해 즉위했고, 공자 규의 스승인 [[관이오|관중]]은 중도에 매복해 공자 소백을 활로 쐈으나 죽음을 가장하고 먼저 가버린 공자 소백의 꾀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제환공이 된 공자 소백의 요구로 공자 규 일당인 관중은 노나라에 감금됐으나, 제환공의 스승이었던 [[포숙아]]가 관중을 적극 천거해 관중은 풀려나서 제환공의 재상이 되고 제나라를 함께 [[춘추오패]]의 첫 패자로 만들었다. 이후 제환공·관중·포숙아·영척이 함께 술을 마실 때, 포숙아가 덕담으로 제환공에게는 거나라에 있던 때, 관중에게는 노나라에서 감금되었을 때, 영척에게는 소에게 밥 주던 시절을 잊지 말자고 덕담을 건넸다. 이 포숙아가 제환공에게 남긴 말, '공께서는 거나라에서 나오시던 때를 잊지 마옵소서[使公毋忘出如莒時也]'에서 이 고사성어가 나왔다. [[분류:고사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