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마비노기 영웅전/캐릭터]] [목차] == 개요 == [[마비노기 영웅전]]의 캐릭터 [[미리(마비노기 영웅전)|미리]]의 배경을 설명하는 문서. == 배경 == >때는 신화의 시대였으며, 아직 여신의 그림자가 내리지 않았을 때였다. >동쪽 대륙의 중심에는 거대한 봉우리들을 자랑하는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높은 산을 가리켜 영산 드리우스라 했다. >이 드리우스에는 거대한 신전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거친 산맥과 짙은 안개 속에 자리 잡은 신전은 마치 그 존재를 숨기고 싶은 듯했으나 그와는 반대로 드리우스의 주변 하늘에는 유난히 눈에 띄는 존재들이 바람을 가르며 날갯짓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날개와 기다란 꼬리, 미늘 갑옷을 두른 듯 번들거리는 피부를 가진 드래곤이었다. > >영산 드리우스의 신전은 바로 이 드래곤을 신으로서 모시기 위한 장소였으며, 이 때문에 신전의 곳곳에는 드래곤의 형상을 나타낸 조각들과 장식물들이 즐비했다. >신전의 재단 앞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 여성이 작은 보자기를 하나 끌어안은 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여성의 얼굴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창백했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자애로운 미소가 희미하게 엿보였다. > >“이제 곧 때가 되겠군요.” > >여성은 듣는 이 하나 없는 재단 앞에서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말에 반응하듯 신전의 재단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재단에 놓인 초승달 모양의 유물이 한순간 빛을 내뿜은 것이다. >그녀의 표정에 천천히 쓸쓸함이 번졌다. 슬픔 가득한 눈동자가 품속의 작은 보자기 안으로 향했다. > >“미안한 부탁만 잔뜩 남겨주겠네요.” > >여성이 안아 든 보자기 안에는 갓 난 여자아이가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의 말에 동의라도 하듯 재단의 유물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갓난아이의 볼 위로 푸른 빛이 반짝였다. > >- >역사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 세계에는 드래곤을 신으로 모시는 드래곤 신앙이 존재했다. >드래곤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인 ‘신녀’를 중심으로 한때 뿌리 깊은 신앙을 자랑하던 드래곤 신앙은 전 대륙에 걸쳐 수많은 사당과 신전을 남겼다. >하지만 드래곤과 인간의 유일한 접점이었던 신녀가 인간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되고 이를 계기로 드래곤과 인간, 두 존재 사이의 관계는 점차 소홀해졌으며 끝내 인간의 역사에서 드래곤은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드래곤 신앙은 결국 힘을 잃었고, 왕국의 부흥과 함께 끝내 쇠퇴하여 사라졌다. >역사의 시대 초기에는 마지막까지 신녀의 존재를 기억하고 드래곤 신앙을 지켜오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그조차 전쟁의 시대를 맞이한 후에는 자취를 감추었으며 왕국과 여신이라는 절대 권력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기억을 간직한 자들이 점차 사라져갔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 >[[파일:external/s.nx.com/img_story_12_1_U85N9Ii4ncjbrs3.jpg]] > >“누나는 이상해.” > >마루가 미리를 보며 이야기했다. >미리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어쩐지 마루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 >“대체 뭐가?”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상해.” > >숨바꼭질이 끝나고 난 뒤, 마루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 눈치였다. 아무리 꼭꼭 숨어도 너무나 쉽게 찾아내고야 마는 누나였다. >마루는 누나를 노려봤다. >미리가 다시 한번 눈을 피했다. >마루에게 누나의 태도는 수상하기 그지없었다. > >“그러고 보니 저녁 메뉴는 우리 마루가 좋아하는 타티크 구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빨리 안 가면 다 없어질걸?” > >미리가 저녁 메뉴로 화제를 바꾸면서 발걸음을 빨리했다. >혼자 잰걸음으로 앞서가자 마루는 같이 가자며 볼멘소리를 하고 따라왔다. >미리는 그런 동생을 보면서 귀엽다는 듯 웃었다. >마루가 다가와 미리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사이좋게 걷기 시작했다. > >마루의 눈치를 살피던 미리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혹시라도 들키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만약 마루에게 이 사실을 들키는 날에는 평생 숨바꼭질은 물 건너가게 될지도 몰랐다. > >숨바꼭질이 시작되고 미리가 술래가 되었을 때였다. >마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녀는 가장 먼저 주변의 풀과 흙 그리고 꺾인 나뭇가지 등을 만지기 시작했다. >풀잎에서 파란색. >그녀는 숲길을 따라 신이 나서 달려가는 마루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꺾인 나뭇가지는 주홍색. >쓰러진 나무기둥을 타고 넘는 즐거움, 언덕 꼭대기에 있는 사당을 목표로 달려갈 때의 청량함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사당의 매끈한 나무 기둥은 보라색. >사당 안쪽에 몸을 숨긴 채 그녀를 기다리는 마루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미리는 이처럼 사물을 만질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감정과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주로 미리에게 특정한 어떤 색을 떠올리게 했는데 미리는 이 색을 통해서 사물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들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을 세세한 흐름까지는 알 수는 없었지만, 행복한 일은 밝은색으로 슬픈 일은 어두운색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별 쓸모 없어 보이는 능력이었지만 숨바꼭질에는 제격이었다. >마루가 어디에 숨든 그녀는 적당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때를 봐서 숨어 있는 곳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단지 오늘은 너무 손쉽게 찾은 것 때문에 마루의 의심을 산 모양이었다. > >“내일도 여기 오자. 누나.” > >마루가 미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사당을 돌아보며 생각하는 척 잠시 눈을 감았다. > >“내일은 좀 어려울 것 같아.” >“왜?” > >내일은 회색이거든 하고 대답하려다 미리는 입을 다물었다. > >“내일은 그냥……. 안될 거 같아.” > >미리가 대강 얼버무리자 마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손을 댄 사물의 과거를 느낄 수 있는 능력 외에도 미리는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예지 능력이었지만 점성 마법에서 이야기하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과는 달랐다. >그녀가 미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번에도 색뿐이었다. >미리의 머릿속으로 복잡하게 뒤섞인 색상들이 미래에 대한 모호한 감각들을 전해왔다. >결국, 그것만으로는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일하게 쓸모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날씨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흐린 날은 어두운색을 맑은 날은 밝은색을 보곤 했던 것이다. > >미리가 느끼기에 내일은 회색이었다. >그녀가 회색을 떠올린 다음 날은 꼭 비가 내렸다. >미리는 비가 오는 날이 싫었다. >그녀가 벌써 풀이 죽은 표정을 짓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루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 >“역시 누나는 좀 이상해.” >- >미리와 마루는 사당을 떠나 언덕길을 따라 마을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언덕 아래로 사방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곽 도시, 서란의 풍경이 펼쳐졌다. >하늘을 나는 새들마저 막아서는 높은 성벽과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 희뿌연 연기가 가득한 이곳은 서란이라는 본래 이름보다 ‘불의 도시’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다. >서란은 왕국에서 가장 많은 화약 제작소와 등불 제작소가 있는 곳이었다. >낮에는 화약 제작소의 불꽃이 번쩍였고, 밤에는 등불이 도시를 수놓았다. > >미리와 마루가 집으로 향하는 동안 도시에는 집집이 등불이 하나씩 밝아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언덕을 내려와 사당의 입구 근처에 위치한 한 저택으로 들어섰다. >대문을 통과하자 넓은 뜰과 함께 전통적인 형태의 동방 주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나무 기둥을 골조로 삼은 목조 건물 위로 삼각형을 이루는 기와지붕이 길게 뻗어 있었다. > >"[[허크(마비노기 영웅전)|서채의 아저씨]]다!" > >안뜰을 지나 본채로 향하던 중 마루가 소리쳤다. >뜰 한가운데서 한 남자가 마치 기도라도 드리듯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서쪽 사랑채에서 방을 빌려 지내고 있는 손님이었다. >큰 키에 도깨비 같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의 무릎 맡에는 남자의 키만큼이나 큰 대검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 >"만져봐도 돼요?" > >미리가 말릴 새도 없이 마루가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는 마루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검 자루를 내밀었다. >마루가 해맑게 웃으며 자루를 쥐었다. 대검을 휘둘러 보고 싶었던 듯 마루가 작은 팔로 검을 들어 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대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남자가 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루가 검의 무게를 느낄 수 있도록 대검을 손에 살짝 쥐여주었다. >남자의 도움으로 대검을 좌우로 휘두르자 마루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미리는 이 모습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미리는 부모님이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날을 떠올렸다. >남쪽 성문 앞에 쓰러져 있던 남자를 집까지 데려온 것은 아버지였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남자는 며칠은 굶은 듯 야위어 보였다. >다른 도시에서 무작정 걸어 올라온 듯했다. >미리의 부모님은 남자를 사랑채로 옮기고 약과 음식들을 대접했다. >남자는 몇 년간 용병 생활을 전전하던 중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서란을 찾았다고 했다. >부모님은 얼마든지 쉬다 가라며 남자를 다독였다. > >미리는 부모님이 아무런 의심 없이 남자를 받아준 것이 불안했다. >남자의 신원을 더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녀는 부모님 몰래 창고에 보관된 남자의 대검을 찾았다. > >손가락이 대검에 닿았다. >검붉은색이었다. >미리는 섬뜩함을 느껴 얼른 손을 거뒀다. >그녀의 손끝이 얼얼했다. >아직 증오와 분노, 고통 그리고 절망이 느껴지는 듯했다. >사물의 기억이 이렇게 날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 >미리는 마루와 놀아주는 남자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남자는 무뚝뚝한 표정과는 달리 마루가 좋아할 만한 장난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마루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끌어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미리는 대검에 담겨 있던 어두운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 >[[파일:external/s.nx.com/img_story_12_2_U85N9Ii4ncjbrs3.jpg]] >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그것은 기괴한 형태의 무기였다. >무기의 몸통은 손잡이가 되는 자루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로 양 끝이 마치 마상시합을 위한 창처럼 길고 날카로웠다. >그것만 보면 영락없이 적을 찌르기 위한 무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무기에는 양쪽 창끝에서 시작해 반원을 그리는 거대한 칼 몸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기는 그 자체로 적을 베어 넘길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날붙이와도 같았다. > >미리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의 다리는 무기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무기의 손잡이에는 한 가닥의 사슬이 길게 뻗어 나와 있었다. >사슬의 머리가 마치 뱀처럼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리의 심장이 두려움으로 인해 방망이질 쳤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은 무기를 향해 천천히 뻗어 나가고 있었다. > >"!" > >한순간 사슬이 순식간에 뻗어 나와 미리의 손목을 휘감았다. >깜짝 놀란 미리가 사슬에서 손을 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 >‘사명.’ > >그녀의 손끝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손끝을 시작으로 검은 기운이 마치 온몸을 비늘처럼 뒤덮어 가기 시작했다. > >‘드래곤 나이트의 사명.’ > >저항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검은 기운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았다. > >“안돼!" > >꿈에서 깨어났을 때,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너무나도 선명한 꿈이었다. >무엇이 현실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기분 탓인지 사슬이 휘감겼던 손목이 아팠다. >잠들기 전에 남자가 가진 대검에 대해 걱정을 한 탓일까. >미리는 요즘 들어 사물의 기억을 읽는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두운 감정들에 노출되는 것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미리는 앞으로 무기에는 가능한 손을 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 >창밖에서 햇살이 방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비가 올 거라는 어제의 예상과는 달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회색빛 맑은 날. >미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따스한 햇볕 아래로 어딘지 모를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 >그 날, 서쪽 사랑채의 남자는 한마디 인사도 없이 저택을 떠났다. >창고에는 남자의 대검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 >미리는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그녀가 좋아하는 전설 속의 마법사나 음유시인 또는 연주자처럼 세상에는 오래도록 회자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미리 자신은 조금 남다른 능력을 갖췄을지는 몰라도 평범한 여자아이였다. > >그렇게 생각했다. > >"불꽃이 튀지 않게 조심히 섞어야 한다." > >마루가 아버지를 따라 화약을 만들고 있었다. >화약 제조가인 아버지는 유독 마루에게만 화약의 조제법을 알려주곤 했다. >마루도 불을 다루는 것을 좋아하는 듯 곧잘 아버지를 따라 화약을 만들었다. >미리는 이따금 두 사람이 함께 일하는 모습을 근처에서 지켜보곤 했다. > >마루가 검은 무쇠솥 안에 화약의 원료들을 넣고 이리저리 섞었다. >무쇠솥 덕분에 불꽃이 튀어도 다칠 염려는 없었지만, 자칫 아까운 재료들을 낭비할 수도 있었다. >마루는 진지한 표정으로 재료들을 섞은 뒤 화약을 조심스레 자루에 옮겨 담았다. > >아버지가 마루의 화약을 한 줌 쥐어다가 불을 붙여 성능을 시험했다. >화르르 하고 마루의 화약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미리는 문득 저 검붉은 화약의 불꽃 속에 무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꽃은 무기였다. >왕국은 항상 더 강력한 무기를 원했다. >서란에서 만들어진 화약은 왕국군에 공급되어 폭탄과 폭약, 총포를 만드는 데 쓰였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이곳 서란과는 달리 바깥세상에서는 마족 토벌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는 원정이 이어지고 있었다. > >전쟁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죽음의 소식이 뒤따랐다. >승리의 함성조차 누군가의 희생 위에 놓인 장식물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쩌면 마루의 작은 손에도 무기가 들릴 날이 올지 몰랐다. >미리는 벌써 그 순간이 두려웠다. >평범한 자신의 능력으로 지금의 행복을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 >"왜 또 그러고 있어." > >누군가 미리의 손을 붙잡았다. >마루였다. >얼굴이랑 손에 얼룩을 잔뜩 묻히고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 >"오늘은 인제 그만 할래. 다른 거 하고 놀자." > >마루가 그녀의 손을 잡아 끌었다.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고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주는 듯했다. >미리는 마루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대견한 동생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오랫동안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 >밤이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음속으로 직접 와 닿는 소리였다. >어딘지 모르게 포근하고 그리운 소리. >미리는 소리에 이끌려 집을 떠나 사당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동안 그녀의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레 발걸음이 움직였다. > >그녀는 언덕 위의 숲길을 지나 길 끝에 위치한 사당에 도착했다. >사당 안에는 눈 부신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원형의 구 하나가 허공에 떠 있었다. >이 빛의 구가 한 번씩 강한 빛을 뿜어낼 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마음의 소리가 느껴졌다. > >미리가 빛의 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을 가까이 가져가자 빛의 구에서 기다란 사슬이 뻗어 나와 그녀의 손목을 휘감았다. >그 순간 빛의 구가 번쩍하고 강렬한 빛을 발하며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무기가 대신 나타났다. >반원의 형태를 한 무기. >그것은 미리가 꿈에서 본 그 무기였다. > >그제야 미리의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사슬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휘감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도망치기 전에 사슬을 통해 무기의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 >[[파일:external/s.nx.com/img_story_12_3_U85N9Ii4ncjbrs3.jpg]] > >새하얀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무기가 떠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미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도 사물도 아무런 풍경도 소리조차 없었다. > >“여기는?” >“이곳은 드레이커의 영혼이 잠든 곳. 사명을 간직한 기억의 장소.” > >무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뚝뚝하지만 포근하고 날카롭지만 그리운 목소리였다. > >“드레이커의 마지막 후예여. 사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드레이커? 사, 사명……? 대체 무얼…….” > >“우선 이것은 그대가 알아야 할 과거이다.” > >미리의 당황한 모습에도 무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회전하는 주마등처럼 잔상을 남기며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최초의 풍경, 그곳은 서란이었다. >그리고 점차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서란의 성벽이 세워지기 전, 왕국이 생겨나기도 이전, 대지의 풍화가 산맥을 깎아내리기도 이전의 시대에 이곳에는 거대한 드래곤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던 시절을 비추었다. > >그것은 회색빛이 가득한 고대의 기억들이었다. >드래곤의 신전에는 은빛 머리카락을 가진 한 인간 여성이 신전을 찾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고 경애를 표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신녀님'이라 불렀다. >신녀의 손에서 마법의 불꽃이 피어올라 곁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제의 손 위로 이동했다. > >“그녀는 우리의 힘을 필멸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무기가 그녀를 향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풍경이 조금만 회전하며 시간을 조금만 이동시켰다. >이번에도 과거의 기억은 드래곤 신전을 비추었다. >신전 안에서 신녀라 불리던 여성과 한 사람의 남성 신관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나의 핏줄이여. 정녕 필멸의 존재들에게 우리의 힘을 모두 전수하고자 하는가? 그들은 운명을 바꿀 힘을 가지고도 운명에 순응하며 사는 자들이다." > >신관의 물음에 신녀는 자애로운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 >"우리 드레이커의 피는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사명을 다 하지 못한 채 파국을 맞이하겠지요. 이제 우리가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뿐입니다." > >신녀는 신관에게 품에 안은 갓난아이를 살며시 보여주었다. >신관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우리의 피는 이어받지만, 필멸의 존재로 살아가는가. 이것이 그대의 선택인가?” > >신관의 물음에 신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다시 한번 풍경이 회전하며 다음 기억을 향해 시간을 이동시켰다. >이번에는 검붉은색의 기억이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드래곤의 신전이 불타고 있었다. > >"선민을 꾀어내어 사교도로 만든 자들을 처단해라! 사교도의 교주 신녀의 목을 친 자에게는 왕께서 직접 후사하실 것이다!” > >불타는 신전을 중심으로 왕가의 무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드래곤 신앙을 축출하고 왕국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왕국이 고용한 자들이었다. >무사들에 맞서 드래곤들이 신전 앞 광장에 모인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신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서려는 것이었다. >신전의 안쪽에서 신녀는 품에 안은 갓난아이를 바라보며 볼을 쓰다듬고 있었다. > >“우리의 마지막 후예. 마침내 이렇게 때가 되었군요. 그대를 더 오래 지켜주지 못해 어미 된 자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 >신녀는 한 손으로 아이를 감싸 안은 채 한 손으로 재단의 유물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유물의 힘을 이용해 빛의 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차원의 틈새로 향하는 통로였다. >그녀는 흔들림 없는 미소와 함께 아이와 유물을 모두 빛의 구 안으로 밀어 넣었다. > >“부디……. 드레이커의 기억이 그대를 바른길로 인도하기를.” > >다음 순간, 신전의 관문이 뚫리고 무사들이 들이닥쳤다. >무사들의 검이 무자비하게 신녀의 몸을 꿰뚫었다. >그녀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필멸의 존재들이 자신에게 검을 들이댈 날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이 생을 다한 꽃송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목숨이 끊어짐과 동시에 인간의 형상이 점차 허물어지고 신녀의 몸은 거대한 드래곤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존재가 쓸쓸히 쓰러지는 모습을 미리는 슬픔과 함께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그리고 이것은 그대가 알아야 할 현재이다.” > >다시 영원과도 같은 세월이 흐르고, 그녀는 서란의 풍경 속으로 돌아왔다. >과거 드래곤 신전이 있던 곳에는 거대한 신전 대신 작은 사당이 하나 들어서 있었다. > >한순간 사당 앞으로 신녀가 만들었던 빛의 구가 나타났다. >이 빛의 구를 통해 신녀의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이가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냈다. > >갑자기 하늘에서 솟아난 듯한 이 갓난아이를 받아 든 것은 한 쌍의 젊은 부부였다. >그것은 미리에겐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 >"엄마? 아빠?" > >사당 앞에 자리한 젊은 부부는 바로 다름 아닌 미리의 부모님이었다. >그녀가 놀랄 새도 없이 풍경의 회전과 함께 부부와 아이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점차 자라 건강한 여자아이로 자랐다. >조금 이상한 능력을 갖췄지만 자신을 평범하다고 믿는 소녀. >다름 아닌 미리였다. > >“나……라고?” > >기억 속의 미리는 어느새 시간을 다 따라잡은 듯했다. >미리의 눈앞에는 이제 마치 거울에 비친 듯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한줄기 눈물과 함께 기억 속의 미리는 천천히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 >“마지막으로 이것은 그대가 알아야 할 미래, 사명의 순간이다.” > >그것은 언제인지 모를 미래의 기억이었다. >그녀는 [[엘쿨루스|세계의 붕괴를 바라는 고대의 드래곤]]과 대치하고 있었다. >붉은색 날개를 가진 드래곤 앞에서 세계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드래곤과 대치하는 미리의 손에는 지금 이 기억들을 보여주고 있는 바로 그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거대한 무기를 가볍게 들어 올린 그녀의 눈빛에는 한 점의 망설임이나 흔들림이 없었다. > >“내가……. 그럴 리 없어......!” >“사명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드래곤 나이트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 >무기의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미리는 현실 속 사당의 풍경으로 되돌아왔다. >그녀의 눈앞에는 여전히 무기가 허공에 두둥실 떠 있었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그녀가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무기였다. > >스르르 하고 사슬이 미리의 손목을 떠나갔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마치 무기가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 >드래곤. >드레이커. >후예. >사명. >드래곤 나이트. > >그녀는 이 모든 생각을 몰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의식 어딘가에서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긍정하고 있었다. > >‘사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 >머릿속에 무기의 한마디가 다시금 떠올랐다. >미리는 사당을 떠나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에겐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무거웠다. >그녀의 평범한 삶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 >[[파일:external/s.nx.com/img_story_12_4_U85N9Ii4ncjbrs3.jpg]] > >"누나.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 >오늘도 마루가 방문 앞을 찾아왔다. 미리는 애써 괜찮다며 동생을 타일러 돌려보냈다. >며칠이 지나도록 손목에는 여전히 사슬이 휘감긴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무기의 기억은 자신을 '드레이커의 마지막 후예'라고 불렀다. >드레이커. >기억이 가리키는 바로는 그것은 힘을 잃고 사라진 드래곤 종족 중 하나인 듯했다. >미리는 기억 속에서 본 드래곤들과 무사들의 검에 죽음을 맞이한 여성 드래곤을 떠올렸다. >드레이커의 후예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나는 인간이 아닌 걸까? >아니라면 나는 대체 무엇일까? > >그녀는 방을 나서기 두려웠다. >진실과 마주하기 두려웠다. >- >며칠 후, 미리는 고심 끝에 부모님을 찾았다.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장 큰 의문과 마주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두 사람은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면서 미리를 맞이해주었다. >미리는 그 모습에 어딘지 모르게 거리감을 느꼈다. >미리는 드레이커의 기억 가운데 마지막 내용을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부모님의 입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다. >미리의 질문에 부모님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그것만으로 미리는 돌아올 대답을 예측할 수 있었다. >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목소리에 미리는 괜찮다며 태연하게 웃었다. >그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이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가족은 가족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날 저녁은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 >슬픔은 아주 늦게 찾아왔다. >방으로 돌아가 혼자가 되었을 때, 고요한 적막과 함께 미리는 새삼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영혼은 깊은 물 속으로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자신을 향해 뻗어진 손들이 보였다. >있는 힘껏 손을 뻗어 보았지만 그것은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수면 위의 빛이 점차 멀어졌다. >가족들의 손길도 점차 시야에서 멀어졌다. >마침내 바닥에 닿았을 때, 그곳에는 빛이 존재하지 않았다. > >나는. 대체. 무얼까? >눈물만이 그녀를 반겼다. >- >며칠 후 미리는 다시금 사당을 찾았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하지만 사당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빛의 구도 무기도 없었다. > >미리는 사당 앞에 걸어앉았다.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했다. >어디를 가야 자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일까. > >그때, 고민에 빠진 미리를 향해 주변 나무숲 사이로 다수의 발소리가 다가왔다. >사실 미리가 깨닫지 못했을 뿐 사당의 언덕을 오르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뒤를 조용히 뒤쫓는 무리가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천천히 미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무사, 승려, 상인 등 모두 제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도시에 숨어들기 위해 서로 다른 복장을 하고 서락에 들어선 자들이었다. > >"아무것도 묻지 말고 순순히 우리를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누, 누나!” > >미리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았다. >무사의 복장을 한 남자의 손에 마루가 인질로 잡혀 있었다. >남자의 한 쪽 손에 든 검이 마루의 목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었다. > >“동생을 놓아줘요!” >"당신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생이 다치는 걸 보기 싫다면 순순히 저희와 함께 가시죠."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나는 아무 힘도 없어요! 제발 동생을 놓아줘요!” > >미리의 외침에도 남자의 위협은 잦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말 없이 마루의 목에 날카로운 검을 한층 더 가까이 드리웠다. > >“……! 알았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 >미리는 무사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포승줄을 든 승려복의 사내가 미리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왔다. > >"누나……." > >그 때였다. >마루를 인질로 잡은 무사의 등 뒤로 그림자가 하나 조용히 나타났다. >그림자는 무사의 무릎 뒤를 걷어차 자세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마루를 끌어당겨 품속에 끌어안았다. >무사가 갑작스러운 충격에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사가 고개를 돌렸을 때 무사의 코앞에는 두 개의 총구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림자의 손에 들린 것은 총구가 두 개 달린 거대한 총포였다. > >"움직이지 마라. 탄환이 아까우니까." > >그림자의 정체는 서쪽 사랑채에서 묵던 대검의 남자였다. >남자는 무사에게 겨눈 총구를 치우지 않은 채 마루의 등을 떠밀어 계단을 내려가도록 다독였다. >그와 동시에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사내의 장검을 발로 걷어차 손쉽게 주워들었다. >검과 총포로 무장한 남자가 일당을 노려보았다. > >"칫. 일이 점점 복잡해지는군. 다들 여자부터 붙잡아! 소중한 마법 재료다. 죽이지는 말라고.” > >남자의 등장에 일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마루라는 인질을 잃고 훼방꾼까지 나타났으니 이제 어떻게든 미리를 데리고 도망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일당은 총포를 든 남자를 무시한 채 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 >무리가 달려드는 것을 바라보며, 미리는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루의 목에 검을 들이댄 자들에 대한 분노, 남자의 등장으로 인한 안도감, 자신의 무력한 모습으로 인한 절망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 >‘사명을 받아들일 때, 그대는 드래곤 나이트의 힘을 되찾을 것이다.’ >‘나는……. 아무 힘도 없어요.’ > >사명을 받아들일 각오 없이는 자신은 무력한 존재였다. >하지만 만약 사명을 받아들인다면……. >행복한 일상을 지킬 힘도 가질 수 있는 걸까? > >단검을 든 승려복의 사내가 미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단검이 그녀의 몸에 닿으려는 찰나, 사당의 안쪽에서 무기가 나타나 승려의 얼굴을 엄청난 힘으로 가격했다. >그녀의 손안에는 어느샌가 무기에서 뻗어 나온 사슬이 쥐어져 있었다. >그녀가 사슬을 잡아당기자 무기는 그 육중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가볍게 그녀의 손으로 날아왔다. > >미리는 처음으로 무기의 손잡이를 쥐었다. >그러자 그녀의 손안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무기의 중심으로부터 무기의 몸체를 감싸듯 뜨거운 열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 >무기가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평범한 소녀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사명을 선택할 것인지. > >미리는 자신의 향해 달려드는 무리를 상대로 자신의 첫 각오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무기가 원형의 궤적을 그리며 공중을 회전했다. >무기의 궤적을 따라 마법의 화염이 공중을 수 놓았다. >그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한 무기는 한없이 가벼웠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를 상대하는 자들에게 무기는 더할 나위 없이 무거웠다. >미리가 공격한 궤적을 따라 일당의 무기는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져 내렸다. >처음부터 일당의 무기만을 노린 공격이었다. >미리는 일당의 목숨은 빼앗고 싶지 않았다. >드레이커의 사명을 받아 들이는 것과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 >사건이 마무리되고 미리를 납치하려던 범인들은 모두 투옥되었다. >미리와 마루가 큰일을 당할 뻔했다는 소식에 부모님이 두 사람을 향해 헐레벌떡 달려왔다. >두 사람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을 보면서 미리는 두 사람의 사랑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 > >미리는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는데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 >다행히 범인들을 소탕한 것은 전설적인 용병 '대검의 허크'가 활약한 덕분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는 서란을 떠나기 전, 두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던 차에 범인들의 수상한 움직임을 목격하고 뒤를 밟고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 >허크는 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번에야말로 서란을 떠났다. >이번에는 대검도 함께였다. >남자는 떠나는 길에 미리에게 자신이 도와줄 필요 없었던 것 아니냐며 웃었다. >떠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미리는 자신의 힘과 사명, 그리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했다. >어느샌가 평범한 여자아이의 삶은 영영 사라진 듯한 기분이었다. > >[[파일:external/s.nx.com/img_story_12_5_U85N9Ii4ncjbrs3.jpg]] > >미리는 또다시 언덕 위의 사당을 찾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드레이커’와 마주하기엔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그녀는 어느샌가 드레이커의 영혼과 기억을 간직한 이 무기를 ‘드레이커’라고 부르고 있었다. >미리는 드레이커의 기원과 드레이커의 사명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과도 같았다. >하지만 드레이커가 보여준 기억 만으로는 그들의 뿌리와 역사를 완벽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미리는 드레이커를 통해 다시 한번 미래의 기억과 마주했다. >그녀가 겪게 될 사명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했던 바로 그 기억이었다. >붉은 날개의 드래곤이 기억 속의 미리를 향해 강렬한 화염을 내뿜었다. >기억을 지켜보는 미리조차 타는 듯한 화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 속의 미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기억 속에서 드래곤의 화염이 걷히자 그곳에는 [[피오나(마비노기 영웅전)|미리를 지켜주고 있던 방패를 든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뿐이 아니었다. > >세계의 운명과 맞서 싸우는 미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리시타|눈물 흘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는 남자.]] >[[이비(마비노기 영웅전)|다친 사람들을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치료해주는 여자.]] >[[카록|누구 보다 앞장서서 괴력으로 적을 무찔러줄 남자]] >그녀의 등 뒤로 함께 해줄 동료들의 그림자가 보였다. > >미리는 다시 한번 검붉은 화약 속에서 떠올렸던 끝 없는 전쟁을 상기시켰다. >세상은 여전히 누군가의 슬픔 위에 위태롭게 놓인 채였다. >드레이커의 사명이 아직 어떤 것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 세계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기억 속의 사람들은 모두 이 세계의 어둠과 싸우고 있었다. >미리는 자신도 이 세계의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드레이커의 능력을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 >"정말 가려는 거야?" > >마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리는 그런 마루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미리는 고민 끝에 서란을 떠나 여행길에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사명을 완수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이 여정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 끌어낼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의 뿌리와 사명의 의의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 기대했다. > >미리는 울먹이는 마루를 다독이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 >“다녀올게.” > >그녀가 바다로 향하는 마차에 올랐다. >마차를 이용해도 열흘은 걸린다는 먼 길이었다. >하지만 미리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든 드레이커를 힘껏 움켜쥐었다. > >마차가 천천히 서란의 성문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글 : 칼미슈 / 그림 : jin, king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