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세르비아의 축구감독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iodrag-Andjelkovic.jpg|width=100%]]}}} || ||<-2> {{{#000000,#e5e5e5 ''' 이름 ''' }}} || {{{+1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br]'''Miodrag Anđelković''' || ||<-2> {{{#000000,#e5e5e5 ''' 본명 ''' }}} ||미오드라그 안젤코비치[br]Миодраг Анђелковић || ||<-2> {{{#000000,#e5e5e5 ''' 출생 ''' }}} ||[[1977년]] [[12월 7일]] ([age(1977-12-07)]세) /[br] {{{-1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유고슬라비아SFR]]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세르비아SR]] [[미트로비차]] }}} || ||<-2> {{{#000000,#e5e5e5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세르비아)] || ||<-2> {{{#000000,#e5e5e5 ''' 신체 ''' }}} ||187cm || ||<-2>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br][[축구 감독]] || ||<|2>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OFK 베오그라드 (1996) [br] [[RCD 에스파뇰]] (1997) [br] [[UD 알메리아]] (1997) [br] [[SpVgg 그로이터 퓌르트]] (1997) [br] 하포엘 페타 티크바 (1998) [br] OFK 베오그라드 (1999~2000) [br] FK 스메데레보 1924 (2000) [br] [[안탈리아스포르]] (2000~2001) [br] [[플루미넨시 FC]] (2001) [br] [[코리치바 FC]] (2002) [br] OFK 베오그라드 (2002) [br] [[비제프 우치]] (2002~2003) [br] OFK 베오그라드 (2003) [br]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 [br] [[세레소 오사카]] (2004) [br] 이르티시 파블로다르 (2005) [br] 메탈루르흐 자포리자 (2005) [br] [[알 아흘리 SFC]] (2006) [br] OFK 베오그라드 (2007) [br] [[다롄 스더]] (2007) [br] [[하얼빈 이텅]] (2008) [br] CS 판두리 트르구지우 (2009) [br] 인테르나티오날 쿠르테아 데 아르게슈 (2009) [br] 브랜트퍼드 갤럭시 (2010) [br] OFK 믈라데노바츠 (2011) || || {{{#000000,#e5e5e5 ''' 감독 ''' }}} ||OFK 베오그라드 (2018 / ^^감독대행^^) [br] OFK 베오그라드 (2020~2021) || [목차] [clearfix] == 개요 == [[세르비아]] 국적의 공격수로 2004년에는 당시 [[K리그]] 신생 팀이었던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뛴 경력이 있다. 안젤코비치는 인천의 첫 득점자이기도 하다. 커리어 통산 16개의 국가에서 21개의 클럽을 경험한 [[저니맨]]의 표본. == 커리어 == === K리그 진출 이전 === 8살에 축구를 시작한 안젤코비치는 95/96시즌 [[OFK 베오그라드]]에서 프로로 데뷔했는데, 당시 총 18경기 1골에 그쳤다. 그 이후 그는 [[스페인]]의 [[RCD 에스파뇰]]에 합류했으나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UD 알메리아]]나 [[독일]]의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에스파뇰 시절에는 19살의 유망주였던 안젤코비치에게 장기 계약 제의가 오기도 했었지만, 선수 본인은 그 때까지는 오랫동안 외국에 있기가 부담스러워서 이를 거부했고, 이후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이스라엘]]의 하포엘 페타 티크바를 거쳐서 안젤코비치는 베오그라드에 돌아왔고, 이전보다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27경기 11골을 기록했다. 스메데레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안젤코비치는 이번에는 [[터키]]의 안탈리아스포르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으나 다소 애매한 기록만을 남겼다. 터키를 떠난 뒤에는 [[브라질]], [[폴란드]] 등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또 한번 베오그라드로 복귀했고, 7경기 2골을 기록하고 있었다. === [[인천 유나이티드 FC]] === 베오그라드에서 뛰던 안젤코비치는 [[안종복]]의 눈에 띄었고, 인천의 제의를 받는다. 이후 [[라데 보그다노비치]]의 조언을 들은 후 인천 이적을 결심하게 된다. 2004년 3월 1일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감바 오사카]]와의 창단 기념 경기에서 안젤코비치는 [[제난 라돈치치]]와 투톱을 형성하며 출전했는데, 이 경기에서 안젤코비치는 [[전재호]]의 패스를 이어받아 팀 창단 후 첫번째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곧 이어 열린 4월 10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도 안젤코비치는 인천의 K리그 1호골을 성공시켰고, 5월 들어서는 [[울산 현대]]나 [[부산 아이파크]]를 상대로도 득점을 했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지지부진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상대한 경기에서 한 득점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세레소 오사카]]에 임대되었다. 그래도 인천 공격진에서 고군분투하던 선수라 이 이적에 대해 논란도 있었지만, 곧 이어 [[드라간 스토이사블례비치]]와 [[라디보예 마니치]]가 합류하며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뛴 기간은 짧지만, 인천의 창단 첫 시즌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선수 중 하나로 이름이 남았다. === 이후의 커리어 === 세레소에서는 4경기 1골에 그쳤고, 이후 다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리그 등 다양한 국가의 팀들로 이적했다. 중국 리그에서 경기를 뛰던 당시에는 하얼빈 이텅에서 22경기 7골을 기록하는 등 나름 활약했고, [[루마니아]] 리그를 거쳐서 [[캐나다]], [[세르비아]] 리그까지 경험한 뒤 은퇴했다. == 플레이 스타일 == 활동 범위가 넓고 개인기를 갖춘 선수였다. 다만 당시 인천의 미드필더가 공격진에게 볼배급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를 많이 범한 편. 인천 시절 안젤코비치는 11경기에서 22개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했다. 즉, 한 경기에 두 개 정도의 오프사이드를 기록한 것. 이런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안젤코비치는 인천의 최전방에서 꽤 괜찮은 플레이를 해줬고, 인천의 창단 시즌 전반기에 그나마 공격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 여담 == * 과거 [[포항 스틸러스]]에서 대활약하였던 [[라데 보그다노비치]]와 친구 사이였다고 한다. 인천에서 제의가 들어온 뒤, 라데에게 한국에 대해 물어봤더니 좋은곳이란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 2006년에는 사우디의 알 아흘리 소속이었는데, 훗날 한국에서 전설을 쓸 [[데얀 다미아노비치]]와 함께 뛰었다. * 2007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적이 있던 [[조 본프레레]] 감독과 함께 중국 [[다롄 스더]]에서 생활하기도 하였다. [각주] [[분류:1977년 출생]][[분류:세르비아의 축구선수]][[분류:세르비아의 축구감독]][[분류:외국인 선수(축구)]][[분류:공격수]][[분류:OFK 베오그라드/은퇴, 이적]][[분류:RCD 에스파뇰/은퇴, 이적]][[분류:SpVgg 그로이터 퓌르트/은퇴, 이적]][[분류:UD 알메리아/은퇴, 이적]][[분류:안탈리아스포르/은퇴, 이적]][[분류:플루미넨시 FC/은퇴, 이적]][[분류:코리치바 FC/은퇴, 이적]][[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은퇴, 이적]][[분류:세레소 오사카/은퇴, 이적]][[분류:알 아흘리 SFC/은퇴, 이적]][[분류:다롄 스더/은퇴, 이적]][[분류:저장 이텅/은퇴, 이적]][[분류:OFK 베오그라드/역대 감독]][[분류:스트라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