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동명이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무산군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분류:1895년 출생]][[분류:몰년 미상]][[분류:1958년 사망]] [목차] ==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 朴順石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박순석}}}[br]朴順石'''}}}}}} || || '''본관''' ||[[밀양 박씨]][* [[http://chilgok.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921|#]]] || ||<|2> '''출생''' ||[[1895년]] [[6월 29일]] || ||[[대구광역시|대구부]] [[인동(구미)|인동군]] 읍내면 진평동[br](現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 인근의 [[옥계동(구미)|옥계동]]과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성윤(독립운동가)|김성윤]]·[[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이내성]]·[[이범성]]·[[이상백(1886)|이상백]]·[[이영래(1901)|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 || || '''사망''' ||[[1958년]] [[5월 28일]][* 5월 8일에 별세했다는 기록도 있다.[[http://chilgok.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921|#]]] || || '''상훈''' ||대통령표창 || [clearfix] 박순석(朴順石)은 1895년 6월 29일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現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서 [[이상백(1886)|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한 후 3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고, 2차로 3월 14일에는 약목면 장날에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다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352153&evntId=0034987450&evntdowngbn=Y&indpnId=0000018759&actionType=det&flag=1&search_region=|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8년 5월 28일 별세했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朴舜錫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박순석}}}[br]朴舜錫'''}}}}}} || || '''본관''' ||[[밀양 박씨]] || ||<|2> '''출생''' ||미상 || ||[[함경도]] [[무산군|무산도호부]] 하동면 일동[* 구한말 무산군 하동면 일동·이동·삼동·사동·오동·육동·칠동·팔동·구동 → 1914년 무산군 동면 강선동 → 1949년 무산군 동면 강선리 →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무산군 강선리 → 1977년 11월 청진시 무산군 강선리 → 1979년 청진시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 1985년 7월 함경북도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인근의 풍산리·차유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br](현 [[함경북도]]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 || '''사망''' ||미상 || || '''상훈''' ||대통령표창 || [clearfix] 박순석(朴舜錫)은 함경도 무산도호부 하동면 일동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길림성]] 연길도(延吉道) [[화룡시|화룡현]](和龍縣)[* 현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화룡시]].] 부숭(敷崇)에 살았다. 그는 1920년 음력 2월 길림성 화룡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같은 해 4월 20일경 조선독립단 단원 [[한창준]] 등과 함께 무산군 서하면에 거주하는 박제남의 집을 방문하여 서하면 면민들에게 7월 10일까지 군자금 제공을 권유하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곧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http://theme.archives.go.kr/next/indy/viewIndyDetail.do?archiveId=0001164800&evntId=&evntdowngbn=N&indpnId=0000130449&actionType=det&flag=4&search_region=|#]]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