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신라 추존 국왕)] ---- [include(틀:신라 왕실)]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0%,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신라의 갈문왕[br]{{{+1 아도 갈문왕 | 阿道 葛文王}}}'''}}} || ||<|2> '''출생[br]{{{-3 (음력)}}}''' ||연대 미상 || ||[[신라]] || ||<|2> '''사망[br]{{{-3 (음력)}}}''' ||연대 미상 || ||[[신라]] || ||<|2> '''재위기간[br]{{{-3 (음력)}}}''' ||'''{{{#fbe673 신라의 갈문왕}}}'''|| ||[[148년]] 전후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밀양 박씨]] || || '''휘''' ||아도(阿道) || || '''가계''' ||후술 ||}}}}}}}}} || [목차] [clearfix] == 개요 == 朴阿道 (? ~ ?). [[신라]] 초기의 [[왕족]]. 박아도 본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고, 오늘날 남아있는 그에 관한 기록은 딱 두 줄이다. >十五年, 封'''朴阿道'''爲葛文王.,,新羅追封王皆稱葛文王, 其義未詳,, >15년 '''박아도(朴阿道)'''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삼았다.,,신라에서는 후대에 [[추존|추봉]](追封)한 왕을 모두 갈문왕이라 칭했는데 그 의미는 알 수 없다.,, >----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제1 일성 이사금 조 >朴堤上,,或云毛末,,, 始祖赫居世之後, 婆娑尼師今五丗孫. 祖'''阿道葛文王''', 父勿品波珍湌. 堤上仕爲歃良州干. >[[박제상]](朴堤上),,혹은 모말(毛末)이라고 한다.,,은 시조(始祖) [[혁거세 거서간|혁거세]](赫居世)의 후손이고 [[파사 이사금]](婆娑尼師今)의 5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아도(阿道) 갈문왕(葛文王)'''이고, 아버지는 [[파진찬]](波珍湌) 물품(勿品)이다. 제상은 삽량주간(歃良州干)으로 임금을 섬겼다. >---- > 삼국사기 권45 열전 제5 박제상 조 기록을 신뢰한다면 '파사 - 지마[* 다만 파사 이사금의 후손이라고만 했지 지마 이사금의 후손이라고 하지는 않았으므로, 파사 이사금의 아들 중 지마 이사금이 아닌 다른 왕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마 외의 다른 왕자는 기록이 없다.] - 아도 - 물품 - 제상'이 될 것이다. [[갈문왕]]으로 추봉된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파사 이사금]]의 손자이자 후사가 없는 [[지마 이사금]]의 아들로서 [[지마 이사금]]을 이을 유력한 [[이사금]] 후보였지만 [[일성 이사금]]의 귀국으로 인해 이사금이 되지 못하자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갈문왕으로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박제상은 [[4세기]]에 활동했던 인물이기에 시대 차가 너무 많이 나며, 이런 점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의 연대가 부정확하다는 근거로 언급되기도 한다. 박아도가 조금 장수했다고 보면 말이 안 되는 정도는 아닐 수도 있지만, 비슷한 시기 [[고구려]] [[태조왕]]은 백몇십 살을 살았다는 등 더 심하다. 문제는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일성 이사금]]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일성은 삼국사기 기록으로는 [[유리 이사금]]의 장남이나 유리 이사금의 차남인 [[파사 이사금]]보다 늦게 왕이 되는 등 이상한 점이 많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이 맞다면 최소로 계산하더라도 8~90세까지 장수한 것이 되기 때문에, 유리 이사금의 아들이 박아도고 박아도의 아들이 일성 이사금이고, 왕을 못 한 박아도를 아들 일성이 갈문왕으로 봉한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출처 이기백, 「신라시대의 갈문왕」,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20] 이렇게 왕을 못 한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올린 사례가 신라 제12대 [[첨해 이사금]]과 제13대 [[미추 이사금]] 때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은 관련 기록 대부분을 억지로 부정하여 문제가 있다. 일성 이사금과 파사 이사금 둘 다 유리 이사금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박아도는 거론되지 않는다. 게다가 박아도가 갈문왕이 된 것은 박일성이 이사금위에 오른 지 15년째 되는 해라서 아버지로 추정하기엔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 한편 이름으로 쓰인 [[아도]](阿道)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와 신라본기에서 공통적으로 승려로 등장하는 인물이라, [[지마 이사금]] 사후 왕위를 물려받지 않은 것이 그가 출가했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되기도 한다. [[분류:갈문왕]][[분류:몰년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