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용천군 출신 인물]][[분류:1896년 출생]][[분류:192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 || 성명 ||박운죽(朴雲竹) || || 생몰 ||[[1896년]] [[12월 10일]] ~ [[1922년]] [[6월 13일]] || || [[출생지]] ||[[평안북도]] [[용천군]] 읍동면 하옥리 || ||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운죽은 1896년 12월 10일 평안북도 용천군 읍동면 하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10월 형 [[박운석]]과 함께 보합단(普合團)에 가입하였으며, 용천군에 살고 있는 김서준(金瑞俊)에게 군자금 20원을 모연하는 등 평북 일대에서 다수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일본 관청을 파괴하려고 폭탄을 은닉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서울 종로경찰서 형사 이정선(李廷善)의 사살을 계기로 1920년 12월에 이원성(李元成)·이일화(李一和)·이창근(李昌根)·김낙원(金洛元)·이광수(李光秀)·이광세(李光世)·이원경(李元慶)·김득하(金得夏)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일제 경찰의 혹독한 고문을 받다 1922년 6월 13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박운죽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