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박인환}}}[br]朴寅煥 | Park In-hwan'''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parkinhwanface.jpg|width=100%]]}}} || ||<|2> '''출생''' ||[[1926년]] [[8월 15일]]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인제면]] 상동리[* [[http://www.kado.net/?mod=news&act=articleView&idxno=955585|#]]] || ||<|2> '''사망''' ||[[1956년]] [[3월 20일]] (향년 29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35번지 자택 || || '''본관''' ||[[밀양 박씨]][*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1080|#]]]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직업''' ||시인 || || '''학력''' ||인제공립보통학교 {{{-2 (전학)}}}[br][[서울덕수초등학교|경성덕수공립소학교]] {{{-2 (졸업)}}}[br][[경기고등학교|경기공립중학교]] {{{-2 (중퇴)}}}[br]명신중학교 {{{-2 (졸업)}}}[br][[평양의학전문학교]] {{{-2 (중퇴)}}}|| || '''신장''' ||약 180cm||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시인(문학)|시인]]. 본관은 [[밀양 박씨|밀양]](密陽). == 생애 == 1926년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인제면]] 상동리에서 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아버지 박광선(朴光善)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사이에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가 부친과 함께 상경하여 경성덕수공립소학교(現 서울덕수초등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이어 [[경기고등학교|경기공립중학교]]에 진학하였는데, 재학 중에 교칙을 어기며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중퇴하였다. 이후 한성학교 야간부를 다니다가, [[황해도]] [[재령군|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하였다. 부친의 강요로 [[평양의학대학|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8.15 광복]]으로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한 뒤 서울로 내려와 [[종로]]에서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절친이자 선배 시인 [[오장환]][* 이후 월북하였다.]의 낙원동 남만서점을 해방 후에 물려받은 것이다. 여기서 아내도 만난다. 마리서사에서 많은 문학인들과 교류했는데, 박인환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도 반말하듯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굉장히 무례하고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그 이유에서 였는지 [[김수영(시인)|김수영]]이 그를 유독 깠다. 그후 1955년 '박인환선시집'을 출간했고, 이듬해인 1956년, [[소설가]] [[이상(작가)|이상]]의 기일을 기념한다고 3일 간 폭음한 탓에 결국 그해 3월 2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35번지 자택에서 급성 알콜중독성 [[심장마비]]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5603220020920102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6-03-22&officeId=00020&pageNo=1&printNo=10215&publishType=00020|요절했다]]. 향년 29세. 박인환은 [[이상(작가)|이상]]의 기일 날 그를 기리는 시 "죽은 아폴론"을 쓴다. 그 시에는 이상의 기일이 3월 17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상의 기일은 4월 17일이다. 이것이 박인환의 실수인지, 3일 후 닥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일부러 틀리게 적은 것인지는 작가 본인만 알 일이다. 대표작으로 [[https://ko.wikisource.org/wiki/%EB%AA%A9%EB%A7%88%EC%99%80_%EC%88%99%EB%85%80/%EC%84%B8%EC%9B%94%EC%9D%B4_%EA%B0%80%EB%A9%B4|세월이 가면]]과 [[https://ko.wikisource.org/wiki/%EB%AA%A9%EB%A7%88%EC%99%80_%EC%88%99%EB%85%80/%EB%AA%A9%EB%A7%88%EC%99%80_%EC%88%99%EB%85%80|목마와 숙녀]] 등이 있다. '세월이 가면'은 박인환 시인의 마지막 시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 일화가 있다.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대포집 '은성'에서 극작가인 이진섭,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나애심]]이 같이 술을 마시던 가운데, 시를 쓰던 박인환의 종이를 들고 [[이진섭]]이 즉석에서 곡을 붙이고 [[나애심]]이 바로 불렀다. [[나애심]]이 먼저 술자리에서 나가자,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그 악보를 받아들고서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그 가게로 몰려와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 참고로 은성의 사장은 [[최불암]]의 모친이었다. ''목마와 숙녀''의 경우 연배가 있는 분 중에는 박인희의 노래만 알고 원작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도 왕왕 있다. 노래에 묘사된 가사까지만 들었을 때는 어느 정도 애틋한 감상도 들 법하지만 원작의 경우 [[섹스|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은 구절을 비롯해 노래에서 생략된 후반 부분이 온전히 더해져 한층 더 탄식과 체념의 정서가 짙다. == 여담 == * 그가 태어난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에 그를 기리는 박인환문학관이 있다. 2012년 개관. * 1955년 선시집을 발간했으나 출판사 화재로 인해 초판본이 소실되고, 이듬해 1956년 재발매되었다. 화재로 인해 모두 소실된 줄 알았던 초판본이 1980년 대에 [[http://www.kukak21.com/bbs/board.php?bo_table=news&wr_id=14202|발견]]되었는데, 동료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장호강]] 대령에게 증정한 것으로 보이며, 박인환의 친필과 [[송지영]], [[김광주]] 등 문인들의 서평이 남아있다. * 1990년 KBS에서 방영한 10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전쟁]]에 당시 합동통신 기자였던 최기덕 씨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아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을 당시 소문을 듣기로는 박인환이 서울에서 [[북한군]] 편에 서서 의용군 모집에 앞장섰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9.28 서울 수복]] 이후 만난 박인환은 얼굴이 새하얗고 수염이 덥수룩히 자란 채 전혀 밖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아니라 공산당을 피해 숨어지내던 사람 같았다고 한다. * [[양복]]이 더없이 어울리는 말쑥한 외모로도 유명하며, 생전에 [[김수영(시인)|김수영]]과 등단시기도 비슷해 막역한 사이였으나 후에 성향차이로 멀어진다. *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명동백작]]에서 주인공 3인 중 한명으로 등장한다. * 키가 180cm 정도 되는 장신이었다. 그의 부인도 농구선수 출신이었는데 키가 170cm이었다. 양가가 서로 장신이 유전이었던듯 하다. * [[조니 워커]] 위스키와 [[카멜(담배)|카멜]] 담배를 좋아했다고 한다. 박인환의 장례식에 온 동료 문인들이 그의 관에 조니 워커 위스키와 카멜 담배를 넣어주었을 정도로 생전에 좋아하는 것이었다고. 그는 위스키에 대해 논하면서, "우리는 [[위스키]]를 마신다. 첫 잔은 과거를 위해 두번째 잔은 오늘을 위해. [[내일]]? 그까짓 것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도 남겼다.[* 1950년대 한국에서 [[도라지 위스키]] 같은 가짜가 아닌 진짜 위스키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밀수로 들어온 것 혹은 미군 기지에서 빼돌려 들어온 것을 구하는 방법 뿐이었다. 박인환 시인도 그런 방법으로 유통되던 위스키를 마셨을 것이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박인환, version=52)]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인제군 출신 인물]][[분류:1926년 출생]][[분류:1956년 사망]][[분류:밀양 박씨]][[분류:망우역사문화공원 안장자]][[분류:심장마비로 죽은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