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tria-Margiana Archaeological Complex(BMAC) [목차] == 개요 == [[파일:Indo-European_Migrations._Source_David_Anthony_(2007),_The_Horse,_The_Wheel_and_Language.jpg ]]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는 [[선사 시대]]의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한 [[청동기 시대]] 문화이며, 해당 문화권의 분포 지역이 오늘날의 [[아무다리야 강]] 부근([[호라산]])이라는 점에서 달리 옥수스 문명(Oxus civilisation)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약자인 BMAC라고 많이 지칭된다. 중앙아시아의 정주 농경민들이 세운 이 [[문화]]는 훗날에 [[인도 아대륙]]에서 발생한 갠지스 문명을 세운 [[아리아인]]들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화]]의 이름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역사적인 명칭인 [[박트리아]]와 마르기아나[* 오늘날의 [[투르크메니스탄]]의 [[메르브]] 지방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명칭이다.]에서 왔으며, 다른 이름인 옥수스 문명은 [[그리스인]]들이 아무다리야 강을 부르던 이름인 옥소스에서 왔다. == 발굴 == 박트리아-마르기아나 문화의 존재는 1976년에 [[소련]]의 [[고고학자]]인 빅토르 사리아니디가 델바르진, 다실리 오아시스, 토홀로크 21, 고누르, 자르쿠탄 등의 [[카라쿰 사막]] 일대의 여러 지역에서 발굴한 다량의 [[유적]]과 [[유물]]을 학계에 보고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당시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을 한 결과, BMAC의 존속 기간은 기원전 2400년경에서 기원전 1900년경까지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2020년에 [[프랑스]]의 고고학자인 베르티유 리온네와 [[러시아]]의 고고학자인 나데즈다 두보바가 공저한 책인 《The World of the Oxus Civilization》에 의하면, 현대의 주류 고고학계는 그 시기를 수정해서 기원전 2250년경에서 기원전 1700년경까지 존속했다고 본다.[* Bertille Lyonnet and Nadezhda A. Dubova (eds.), ''The World of the Oxus Civilization'', Routledge, London and New York, p. 32.] 빅토르 사리아니디의 발굴 조사로 밝혀진 바로는, 유적지마다 많은 [[성(건축)|성벽과 성문]]으로 둘러싸인 대형 건축물들이 확인되었다. BMAC의 유적들 중의 하나인 고누르 데페의 [[궁전]]은 그 넓이가 150m×140m 정도였고, 다른 유적인 토골로크의 [[신전]]은 140m×140m, 켈렐리의 [[요새]]는 125m×125m에 달했다. 또한, 여러 유적지에서 앉아있는 여인의 모습을 조각한 여인상과 [[쌍봉낙타]]를 묘사한 조각상, [[말(동물)|말]]의 머리 모양으로 조각한 [[도끼]] 유물이 출토되었다. BMAC의 [[유적]]과 [[유물]]은 첫 발굴지였던 [[투르크메니스탄]]의 [[카라쿰 사막]]을 넘어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그리고 심지어는 [[이란]]의 남동부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속속들이 발굴되고 있다. 특히 [[발루치스탄|이란령 발루치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분쟁 지역인 관계로 발굴 작업이 더딘 것을 감안하면, BMAC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였을 가능성도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 문화와 경제 == BMAC는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정주 농경민의 문화였다. 그래서 발굴지에서도 그 흔적이 심심치않게 발견되는데, 주로 [[밀]]과 [[보리]]가 발견되면서 BMAC의 주민들은 밀과 보리를 재배했음이 확인되었다. 거의 농업이 주를 이뤘고 주변의 [[인더스 문명]] 등의 외부 문화권과의 교류가 적지않이 이루어졌으나, 본격적인 상업의 발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BMAC의 유적에서는 앉아있는 여인상이 자주 확인되는데, 당시에 믿었던 여신으로 추정된다. 그 이외에도 많은 수의 [[도장]]이나 장신구, [[청동]]제 물품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재료나 양식이 주변의 [[인더스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상이해서 독자적인 문화를 이루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Kohl, Philip L. (2007). The Making of Bronze Age Euras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1139461993. pp.186-187]. BMAC의 유물들 중에는 [[도장]]도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기호들을 [[문자]]로 보아서 BMAC를 하나의 문명으로 간주하는 가설도 제안된 바 있다. 때문에 BMAC를 옥수스 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 '문자'들은 2021년 현재도 아직 해독되지 못한 상태다. == 다른 문화와의 관계 ==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때문에 BMAC는 비슷한 시기에 존속했던 [[인더스 문명]]과 갠지스 문명에 적지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되며, 뒷날 동튀르키스탄에 정착한 [[토하라인|인도유럽어족 계통]]과 동양 계통이 섞인 아파나시에보 [[문화]]와도 영향을 주고받았다. 역시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번성한 [[아리아인]]의 문화인 안드로노보 문화와도 많은 교류가 이뤄진 바가 있는데, 때문에 BMAC를 아리아인들 중에서 정주 농경 생활을 하던 부류가 세운 문화로 이해하는 학설이 나오기도 했다. BMAC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러시아]]의 [[고고학자]]인 빅토르 사리아니디 역시 이 문화를 [[아리아인|아리안계 정주농경민]]의 문화로 추정했다. 마침 발굴된 [[신전]] 유적에서도 [[조로아스터교]]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요소들이 발굴된 바 있다. 베다 [[산스크리트어]]에 [[기층이론]]이 있는데, 이 문화에서 쓰인 언어 등이 [[https://en.wikipedia.org/wiki/Substratum_in_Vedic_Sanskrit|후보]]이다. [[분류:투르크메니스탄의 역사]][[분류:타지키스탄의 역사]][[분류:우즈베키스탄의 역사]][[분류:아프가니스탄의 역사]][[분류:이란의 역사]][[분류:중앙아시아의 문화]][[분류:인도유럽어족]][[분류:선사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