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박형준)] [목차] == 개요 == 現 [[부산광역시장]] [[박형준]]의 생애를 다룬 문서. == 학창 시절 == 1960년 1월 19일,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학창 시절을 모두 서울에서 보낸 영향인지 [[동남 방언|부산 사투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서울 숭덕초등학교, 동국대사대부중을 거쳐 대일고등학교[*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된 [[오세훈]]과는 대일고등학교 1년 선후배 사이다. [[한선교]] 아나운서가 2회, 박형준 시장이 3회, 오세훈 시장이 4회 졸업생이다.]를 졸업하고 1978년에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79년 [[10.26 사건]]과 80년 [[5.18 민주화운동|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사회과학 이론에 빠져들기 시작해 좌파이론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0&oid=047&aid=0000101848|#]] 군복무는 민주화 [[학생운동]]에 참여해 시위를 하다 최루탄에 눈을 다쳐 [[근시]], [[부동시]]로 [[병역면제]]를 받았다.[* [[썰전]] 269회에서 말한 내용.] 198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가 모교로 돌아가 1985년 사회학 석사 , 1992년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80년대 후반 「창작과 비평」, 「현실과 과학」 등 진보적 학술지를 통해 일어났던 여러 사회과학 논쟁에 참여해 비교적 일찍 소장 논객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이 당시를 가리켜 박형준 본인은 "굳이 노선을 이야기하자면 사상적으로 온건계열의 [[PD(정파)|민중민주파]]에 가까운 시기"였다고 술회한다. 1991년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 무렵 [[정태인]]과 함께 진보언론의 종가였던 월간 <[[말(잡지)|말]]>지의 편집위원을 잠깐 지내기도 했다.[* 나중에 [[오마이뉴스]]를 창립하는 오연호 기자 등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 정계 입문 이후 == 정치활동은 [[민중당(1990년)|민중당]]에서 시작했다. 창당 당시 강령 기초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1991년 부산 [[경실련]] 기획위원장으로 시민단체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 [[이재오]], [[김문수]] 등 민중당 지도부급 인사들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개혁을 지원하겠다"면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자 그도 정치 노선을 바꾸어 [[1994년]] [[김영삼]]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정책자문기획위원으로 합류하였다. 문민정부가 [[전두환]], [[노태우]]를 전격적으로 잡아넣는 등 과거 청산에 적극 나선 것도 이들의 선택에 명분이 되어주었다. 문민정부가 끝난 이후에는 동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2003년까지 재직하였다. >"YS정권 때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하면서 청와대 프로젝트를 많이 했는데 그때, 아 시민운동의 시각에서 보는 사회와 국정의 시각, 통치의 맥락에서 보는 사회라는 게 상당히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 과정에서 제일 많이 배운 것은 YS개혁이 의도와 결과가 왜 달라지는가를 보면서였습니다. 다원화된 사회, 다원화된 이익갈등을 통제·조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개혁을 한다 하더라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본 겁니다. 그래서 정말 국가경영능력이 중요한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민주주의는 다수의 논리이긴 하지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하죠. 리더는 비전도 있어야 하지만 실제 운영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영이란 복합적이고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는 그런 분야는 착한 사람이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선의만 가진 사람이어도 안되고, 지사형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데올로기스트도 바람직한 게 아닙니다. 의지는 선량하게 갖되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실용주의로 풀어가는 선량한 마키아벨리스트가 필요합니다."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0&oid=047&aid=0000101848|2007년 8월 1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수영구(선거구)|수영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이명박]] 진영에 가담하여 [[친이|친이계]]의 브레인으로 활약하면서, 친이계 내에서도 이재오계에 속하게 된다. 당시 이해찬 등 참여정부의 386인사를 강력 비판하며 친이계의 브레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진보진영에서는 변절자로, 조갑제 등 극우보수진영에서는 좌경세력으로 동시에 욕을 많이 먹었다. 자신의 전향 이유에 대해서 '주사파의 교조주의, 전체주의적 사고에 염증을 느꼈다', '사회는 선의만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국정을 사회운동 하듯이 하면 망한다' 등의 발언을 하였다. 이는 탈냉전과 소비에트 붕괴 후 운동가들이 흔히 겪었던 일로, 박형준의 경우엔 진보 이념과 이상주의의 한계를 느끼고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봐야 할 듯.[[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4112370442#Redyho|출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명박 캠프에 합류하여 [[BBK 주가조작 사건]] 등 이명박에 대한 네거티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며 이명박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08081314513120002300-001.jpg|width=100%]] || || 대통령실 홍보기획관 시절(2008년 베이징 올림픽) ||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수영구(선거구)|수영구]]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을 노렸으나, [[친박]] 무소속을 표방한 [[유재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낙선한 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홍보기획관, [[정무수석비서관]], 대통령 사회특별보좌관을 지내면서 친이계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수영구(선거구)|수영구]] 출마를 노렸으나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위시한 [[친박]]계가 이미 당 공천권을 장악한 상태라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컷오프당했고, 이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유재중]]에게 다시 한 번 밀려 [[낙선]]하였다.[* 무소속으로 나온 영향인지 당시 3위로 낙선한 [[민주통합당]] 허진호 후보와도 득표율이 겨우 5%밖에 차이나지 않았다.] 이후 [[새누리당]]에 복당하지 않았고, 당적을 갖지 않은 채 야인으로 지냈다. 중간에 2014년 9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대한민국 국회]] 제28대 [[국회사무총장|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 야인생활 == 2017년 1월 썰전 202화에서 '''야인특집'''으로 정청래와 함께 출연했다. 17대 국회의원 시절 한나라당 언론발전특위 간사일 때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타협해서 [[참여정부]]의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인 신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는데, 이로 인해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과 [[친박]]에게 엄청나게 찍혀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유시민]] 작가가 [[JTBC]] 인터뷰에서 좋은 토론상대였던 사람은 누구였냐는 질문에 [[유승민]]과 박형준을 꼽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2017년 6월 2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썰전]]에서 하차한 [[전원책]] 변호사의 후임으로, 새로운 보수 패널로서 출연이 확정되었다. 썰전에 나와 말하길 "보수의 이념은 '자유'로 대표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급격한 민주주의를 겪어 현재 대중들의 생각은 '보수=[[박정희]] 시대의 이념'과 같은 낡은 구시대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라는 이념을 다시 재확립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상당히 의미 있는 발언. 이후 박형준의 생각tv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푸는 형식의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이명박]] 수사 관련 == [[문재인 정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드러나고,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과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다시 재조명되어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을 조준하는 상황이다. 썰전 237회에서 MC인 [[김구라]]가 그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유시민 또한 들어가 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박형준이 청와대 사회특별보좌관으로 있는 동안 저 블랙리스트에 관여되었을 거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썰전 231회에서 '국정원 민간인 댓글부대 파문'이 다루어졌을 때, "제가 MB 시절 비리에 연루되었음이 드러난다면, 제가 단두대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며 확실히 관여되지 않았음을 주장하였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1169|이명박의 퇴임 후 안전판을 목표로 청와대에서 총선을 지원하려 한 문건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썰전 시청자 게시판에는 박형준의 하차를 요구하는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3098428|출처]][* 다만, 유시민이 박형준에게 본인도 그런 소리를 듣고 있다며 위로를 해 주기는 했다.] 박형준 [[본인]] 입장에서는 억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MB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도 있으므로 [[당선]]에 큰 공헌을 한 사람으로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 것이다. 이후 9월 29일 [[https://youtu.be/0i_xV9d-C48|tbs의 한 라디오 방송]]에서 총선 지원 의혹에 대해 해명했는데, '''의문의 1패를 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인이 말하길 19대 총선[* 방송 내용을 들어보면 초반부에 박형준이 19대 총선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무소속으로 출마한 시점은 19대가 맞다. 숫자를 착각한 듯.]에서 선거 지원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공천 탄압을 받았다고 하는데, 경선 이틀 앞두고 경선 선거인단 여론조사에서 자기가 앞선다는 결과가 나오니까 당시 [[친박]] 중심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경선을 무효로 만들어 낙천시켰다고 한다.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도 그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며, 이 당시 여권과 절연 상태라 지원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또 한 가지 이유로는 이 문건이 공직비서관실 감찰팀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들었는데, 공직비서관실은 공직자들의 비리를 감찰하는 곳이며 그 중에서도 감찰팀은 경찰 등으로부터 파견 온 인력이 모여있는 곳인데, 자기네 업무도 아닌 총선 지원 문건을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http://m.tbs.seoul.kr/news/newsView.do?channelCode=CH_N&seq_800=10242334&idx_800=2268649&typ_800=12&grd_800=null|출처]]. 검찰에서 국정원 • 군 • 경찰에서 공동으로 이명박 정권 집권 시절에 벌인 사이버 여론조작 댓글 공작의 실체가 드러나며 수사한 결과 [[2017년]] 10월 25일 박형준이 [[이명박]]에게 매일 업무를 보고하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0260600055&code=910100|출처]] == 정계 복귀 이후 == === 자유한국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 === 통합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되어 범중도보수를 비롯해 야권의 통합에 나섰다. [[2020년]] 1월 16일 새보수당의 요구 당대당 통합 논의는 부적절하다고 공개적 반대 의사를 표출한다. 이에 새보수당에서 박형준에게 시민단체가 참여한 혁통위는 자문기구일 뿐이며 당대당 통합 논의에 박형준이 끼어드는 것은 월권이라고 비판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83902|“박형준 나가라” …보수 통합 방식 두고 갈등 고조]] 2020년 1월 20일 자유한국당에서 박형준의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20/2020012002390.html|새보수당과 당대당 통합협의체 구성을 수용]]하며 논란을 일소했다. 2020년 1월 21일 반나절 일정으로 [[제주특별자치도]]를 방문하였고, [[원희룡]] 지사에게 범중도보수신당 합류 동참을 요청하였고 결국 원 지사는 범중도보수신당 합류를 선언하였다. 1월 29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21대 총선에서 통합 성공하면 과반까지 가능하고 주장하였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357926625642640&mediaCodeNo=257>rack=sok|인터뷰 기사]]. 2월 6일 중도·보수 야권 통합을 추진 하며 본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혁신통합추진위원회(통추위)가 6일 통합신당준비위원회(통준위)를 출범하고 공동위원장 중 한명이 되었다. 이후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서 미래통합당 혁신통합추진위원장이 되었다. 2020년 3월 9일, [[21대 총선]] [[비례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미래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기는가 싶었지만, 거센 비판을 받으며 2시간 만에 공천 신청을 취소하였다. 이후 본인의 공천 신청으로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본인이 직접 사과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309/100081534/1|박형준, 미래한국당 공천 신청→철회 번복…“혼란 끼쳐 죄송”]]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 [[김종인]] 영입설이 파다하던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자리에 김종인 전 대표의 고사로 [[황교안]] 대표가 앉았고, 추가로 통합을 이끌었던 박형준 교수와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를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하여 삼두체제에 돌입했다. 박 교수는 공천 신청 후 번복 해프닝을 겪자마자 다시 큰 자리에 앉게 되었다. 김종인 전 대표도 돌아와 4인 공동체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차명진의 세월호 막말 사태 등 미래통합당에 악재가 연이어 터졌는데, 이후 인터뷰에서 개헌 저지선도 위태롭다는 발언을 하였다. 보수 지지자들은 엄살 작전이라고 생각했으나 미래통합당이 103석을 얻어 개헌저지선에 턱걸이하면서 박형준의 발언은 현실이 되었다. 당연히 이 반응이 나왔을 때 보수 지지자들은 당황했으며, 당장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그정도는 아니라면서 선을 긋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보수 인사 중에는 거의 근접하게 총선 판세를 읽었던 셈이다. 선대위원장 [[김종인]]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예측으로 괜히 김종인이 선거의 구세주라고 굳게 믿고 과반을 기대하던 선거날 통합당 지지자들의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었다.[* 이날 김종인만 믿던 미래통합당 지지자들의 충격은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였다. 과반이라는데 갑자기 민주당 180석이 뜨고 있다.] == [[2021년 재보궐선거|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 출마 == 총선에서 완패한 이후로는 잠시 정치계 일선에서 물러나고 다시 보수 논객으로 돌아가 [[TV조선]]의 [[강적들]]과 같은 정치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2020년 7월 이후로는 [[오거돈]]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부산광역시장]] 출마설도 나오는 등[[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100&key=20200810.22004002663|#]] 다시 정치계 일선에 등장할 수도 있다는 평이 있었다. 그리고 9월, 지역언론인 국제신문 보도에서 “부산은 리더십에 따라 발전 잠재력이 큰 도시다. 통합당이 열린 경선을 한다면 고민해 볼 생각이다”고 말하며 부산시장 출마 의지를 보였다.[[http://www.kookje.co.kr/mobile/view.asp?gbn=v&code=0100&key=20200901.22012009507|#]] 그리고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선공후사의 자세로 많은 양보를 해 왔다”며 “이제는 개인 욕심을 내겠다”고 선언하며 부산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2/0001028142?sid=100|#]] 부산광역시장 여론조사 결과들에 대해서는 [[2021년 재보궐선거/여론조사#s-4]] 문서 참조. 한편 2020년 10월 29일, [[국민의힘]]에 복당 신청을 하였고, 복당이 허용되면서 8년 만에 복당하게 되었다. 2020년 12월 8일, 드디어 부산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본격적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youtube(hj6_RZv3rbo)] 12월 15일, 부산 북항 컨벤션센터에서 출마 선언식을 열고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071728|#]] 같은 날 발표된 아시아경제-윈지코리아컨설팅 여론조사에서도 가상 대결에서 민주당 [[김영춘(정치인)|김영춘]] 국회사무총장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https://view.asiae.co.kr/article/2020121511325797933|##]] [[2020년]] [[12월]] 현재 발표중인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당 후보군 조사와 가상대결 양쪽에서 오차범위 밖 선두를 달리고 있다. 대국민 여론조사를 최대한 반영하기로 경선룰이 확정된만큼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또 국민의힘 내에서 박형준 다음으로 지지율이 높은 [[이언주]]의 경우에는 민주당 후보와 가상대결을 했을 때 오차범위 내에서 고전하고 있는 반면에[* 이언주가 부산이 고향이기는 하지만 각종 발언으로 논란이 쌓인데다 오랫동안 부산에서 활동을 해 온 박형준이나 김영춘과 달리 지역구가 경기도 광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미지가 바닥을 친 이후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21대 총선을 치르고 나서 눌러앉은 것이므로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거기에 이언주 예비후보의 본인 주소지는 여전히 부산이 아닌 경기도 성남시 이다.] 박형준은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한 1대1 가상대결에서 오차범위를 벗어나는 큰 격차의 우위를 나타내는 등 월등한 본선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2월 16일 있었던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후보 1차 1대1 토론회에서 [[이언주]] 후보와 맞붙었는데, 박형준 후보는 이 후보의 정체성을, 이언주 후보는 박 후보의 [[이명박 정부]] 당시 불거졌던 각종 의혹을 문제삼으면서 두 후보가 거친 설전을 벌였다. 이때문에 박형준 후보가 마지막에 사과까지 했다. 토론평가단은 박형준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https://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1992590|#]] 이어 19일에 있었던 [[박성훈(1971)|박성훈]] 후보와의 토론에서는 정책 검증에 주력하며 토론평가단의 좋은 평가를 받으며 우위를 굳혔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20639|#]] 이어 박민식 후보와의 토론과 이언주-박민식 단일화 이후 처음 실시된 전체 후보 토론회에서 모두 승리하며 토론회 4전 전승에 성공했고[[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2608225028202?utm_source=naver&utm_medium=search#0DKU|#]], 가덕신공항 특별법 통과 이후 처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가운데 민주당을 상대로 유일하게 오차범위 밖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오면서 확실한 대세론을 굳혔다.[[https://www.ytn.co.kr/_ln/0101_202103020544037340|#]] 3월 4일 부산광역시장 국민의힘 경선 결과 종합 54.40%를 득표하여 28.63%를 득표한 박성훈 후보, 21.54%를 득표한 이언주 예비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승리해[* 세 후보의 득표율을 합치면 100%가 넘어가는데, 이는 이언주 후보에게 주어진 여성가산점 때문이다.] 당의 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식 후보로 선출되었다.[[http://naver.me/GEAAZoF5|#]] 더불어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가 김영춘으로 확정된 후 처음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48%의 지지를 얻으며 32.5%의 지지를 얻은 김영춘 후보와 격차가 조금 좁혀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차범위 밖에서 10% 이상 크게 앞서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3083343|#]] 그 후 LH 사태가 터지면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폭락한 한편 본인 역시 여러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둘 중 어느 것이 더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 되었는데, 3월 21일 부산지역 신문인 국제신문에 의해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오히려 김영춘 후보와의 격차가 20% 이상으로 크게 벌어지면서 전자가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3/21/2021032101400.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