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일본 남성 코미디언]][[분류:일본 남배우]][[분류:1908년 출생]][[분류:1981년 사망]][[분류:요네자와시 출신 인물]] [[파일:external/www.gonzoshouts.com/hamama21.jpg]] (한자명(일본어): 伴 淳三郎 / ばん じゅんざぶろう). [[일본]]의 [[코미디언]] 겸 [[배우]] 1908년 1월 10일 - 1981년 10월 26일 본명은 스즈키 히로사다(鈴木 寛定) 1908년 [[야마가타현]] 요네자와시에서 태어났다. 소학교 졸업 후 구마가야에 있는 형의 집에서 기숙생활을 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형과의 사이가 나빠지면서 가출하고 [[도쿄]]로 상경했다. 이후 몇 가지의 극단에 들어가는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이후부터 하급 영화배우가 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반에 여배우 [[기요카와 니지코]]와 활동하기 시작했고, 주역급 영화배우로도 활동한다. [[1939년]], [[요시모토]] 흥업의 인기 탤런트를 대량으로 뽑았을때도 암약한다. 그런데, 뽑기 공작에 분주할 때 그는 노리는 상대의 이름을 써 늘어 놓은 메모장을 택시 안에서 두고오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메모장을 둔 택시를 잡은 것이 하이다 가쓰히코로, 그는 주운 메모장을 반 준자부로에게 갖다 주고, 그것을 무사히 끝내고 그는 하이다에 맞설 수 없었다고 한다. [[1940년]]에 바케네코 여배우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 공연을 하고, 일본으로 귀국후 사요 후쿠코와 극단을 결성했지만 금방 해체되었다. 이후 일본군 징병소집장을 받게 되어 징병검사를 받고 군대에 가게 될 상황이었다. 그는 징병검사장으로 가기 전에 이쁘장하게 [[화장]]하고 [[여장]]을 했고, 그 상태에서 검사 직전에 간장을 대량으로 마시고 "간질환"을 위장해 군입대 불합격판정을 받아 [[병역기피|병역을 기피]]했다. 여기에서 그가 징병검사장으로 들어갔을 때 징병검사장 검사관이 그가 화장하고 여장을 한 것 때문에 분개했다고 한다. [* 이 당시 일본이 [[징병제]] 국가이다보니 병역기피가 당연히 있었다.(--막장스러운 [[일본군]]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특히 당시에는 [[태평양 전쟁]] 국면 때문에 병력수가 부족하다보니 몸이 조금이라도 안좋은 경우에도 징집했고, 식민지인들까지 징집했다고 한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520111922&Section=|반 준자부로가 간장 대량으로 마시는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했다는 것은 한국 언론기사에도 나와있는데, 그의 이름을 반 준사부로로 잘못 표기했다!]] ] 물론 이 병역기피는 '''정의의 병역기피'''로 침략전쟁에 끌려가는 것을 회피한 것이 된다. 훗날, 반 준자부로와 비슷하게 병역을 기피한 [[나쓰메 소세키]]는 이후 1984년에 [[이토 히로부미]]를 밀어내고 [[1000엔권 지폐]]의 모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기요카와 니지코, 가사기 시지코와 함께 아사쿠사에서 활동했고, 이때 [[미소라 히바리]]와의 인기 상승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1952년에는 1930년대부터 같이 활동한 기요카와 니지코와 결혼했지만 그의 여벽(女癖) 때문에 이혼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요카와 니지코는 그가 죽을 때까지 교제를 계속했다. '''[[1981년]] 10월 26일, 그는 식도정맥류파열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기 전에 오래전부터 아내로 있어오고 이혼한 후에도 사실상 아내로 있어오던 기요카와 니지코가 그를 간병했고, 그의 장례식 상주도 기요카와 니지코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