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 [include(틀:라인 동맹 구성국)] ||<-3><#ffd425> {{{#ef0e15 {{{+1 '''발데크피르몬트 후국'''}}}[br]'''Fürstentum Waldeck und Pyrmont'''}}} || ||<-2>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width=100%]] || [[파일:발데크피르몬트 후국 국장.png|width=60%]] || ||<-2><#000> {{{#ffd425 '''국기'''}}} ||<#000> {{{#ffd425 '''국장'''}}} || ||<-3><#ef0e15> {{{#fff '''위치'''}}} || ||<-3><#fff>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Waldeck_%281871%29.svg.png|width=250]] || ||<-3><#ffd425> [[1712년|{{{#000 '''1712년'''}}}]] {{{#000 '''~'''}}} [[1918년|{{{#000 '''1918년'''}}}]] || ||<-3><#ef0e15> {{{#fff '''역사'''}}} || ||<#ffd425><-2> {{{#000 '''성립 이전'''}}} ||<#ffd425> {{{#000 '''멸망 이후'''}}} || ||<-2><#fff> [[프랑켄 공국|{{{#000 '''프랑켄 공국'''}}}]] ||<#000000> [[바이마르 공화국|'''{{{#fff 바이마르 공화국}}}''']] || ||<-3><#ef0e15> {{{#fff '''지리'''}}} || ||<#000> {{{#ffd425 위치}}} ||<-2>독일 [[헤센]] || ||<#000> {{{#ffd425 '''수도'''}}} ||<-2>아롤젠 || ||<-3><#ef0e15> {{{#fff '''인문환경'''}}} || ||<#000> {{{#ffd425 '''언어'''}}} ||<-2>[[독일어]] || ||<#000> {{{#ffd425 '''종교'''}}} ||<-2>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000> {{{#ffd425 '''민족'''}}} ||<-2>[[독일인]] || ||<-3><#ef0e15> {{{#fff '''정치'''}}} || ||<#000> {{{#ffd425 '''정치체제'''}}} ||<-2>[[입헌군주제]] || ||<#000> {{{#ffd425 '''국가원수'''}}} ||<-2>[[후작]] || [목차] [clearfix] == 개요 == 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은 [[신성 로마 제국]]과 [[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후국(Fürstentum)[* 영어로는 Prince가 되는데 영국의 Prince가 Duke와 동격이라 동일하게 공작으로 번역되고 프랑스의 Prince가 Duke보다 높아 친왕 혹은 대공으로 번역되는 것과 다르게 독일의 Fürst(=Prince)는 Duke보다는 낮고 백작보다는 높은, 그러나 후작과는 또 다른 작위이기에 번역명이 난잡하다. 일단은 후작으로 번역한다. ]이었으며 수도는 아롤젠(Arolsen)이었다. 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은 서로 떨어져 있는 2개의 [[월경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남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큰 월경지가 발데크, 북쪽에 있는 상대적으로 작은 월경지가 피르몬트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121 km², 인구는 5만 9천명 가량이었다. == 약사 == 발데크피르몬트 후국의 시작은 1180년에 발데크 백국으로 출발했으며, 1349년 제국백국이 되었다. 1625년 피르몬트를 얻어 발데크-피르몬트 제국백국이 되었으며, 1655년에 발데크에서 아롤젠으로 천도했다. 1712년에 [[카를 6세]]의 허가로 후국(Fürstentum)으로 승격되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제후국인 [[리히텐슈타인]] 역시 비슷한 방법으로 1719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6세의 윤허로 후국(Fürstentum)의 지위를 얻어 리히텐슈타인 후국이 되었다.],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발데크 공이 퇴위하였고, 이듬해 자유주가 되어 바이마르 공화국을 구성하게 되었다. 1921년 북쪽의 피르몬트가 주민투표를 통해 [[프로이센]] 자유주 산하 [[하노버]] 주로 흡수되어 발데크 자유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29년 발데크 자유주 역시 주민투표를 통해 [[프로이센]] 자유주의 [[헤센]] 주로 흡수되면서 소멸하였다. == 왕사(王史) == [include(틀:역대 발데크피르몬트 후작)] 후국 승격 이후 * 프리드리히 안톤 울리히 (1712 ~ 1728) - 즉위한 해에 공작령으로 승격. * 카를 아우구스트 (1728 ~ 1763) * 프리드리히 카를 아우구스트 (1763 ~ 1812) * 게오르크 1세 (1812 ~ 1813) * 게오르크 2세 (1813 ~ 1845) * 게오르크 빅토어 (1845 ~ 1893) - [[발데크피르몬트의 에마|네덜란드의 에마 왕비]]와 [[헬레네 프리데리케 아우구스테|올버니 공작부인 헬레네]]의 아버지로 [[빌헬미나 여왕]], [[카를 에두아르트]], [[올버니의 앨리스 공녀|애슬론 백작부인 앨리스]]의 외할아버지. * 프리드리히 (1893 ~ 1918) === 공위요구자 === * 프리드리히 (1918 ~ 1946) *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요시아스]](1946 ~ 1967) * 비테킨트 (1967 ~ ) - 1936 ~. 前 서독 공군 중령 * 카를 안톤(1991 ~ ) 포함 3남 특이사항으로는 마지막 공세자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1896-1967)는 1930년 [[무장친위대]]에 들어가 1936년 상급집단지도자(Obergruppenführer)까지 올라갔고, 이 때문에 나치 패전 후 부헨발트 재판에서 종신형을 언도받았다. --공위요구자 계승을 형무소에서 했다(...)-- 20년으로 감형되지만 건강 문제로 3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래도 요시아스와 두 남동생의 자손이 번성해서 1900년에는 계승권자가 그들 세 형제뿐이었지만 지금은 남계 자손이 30명 가까이로 늘었다. 참고로 요시아스는 [[올덴부르크 대공국]]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의 [[니콜라우스 폰 올덴부르크]]의 막내여동생 알트부르크과 결혼했는데 니콜라우스는 반대로 요시아스의 유일한 여동생인 헬레나와 결혼했다. 즉 '''남매가 [[겹사돈]]'''이다. 흥미롭게도 니콜라우스는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의 (사실상) 1남 3녀 중 유일한 아들이였고, 아내 헬레나는 반대로 3남 1녀 중 고명딸이였으며 슬하에 아들이 딸보다 많다.(6남 3녀) 반대로 성별이 바뀐 요시아스와 알트부르크는 슬하에 아들보다 딸이 더 많다.(1남 4녀) == 여담 == * 발데크 백국 시절 필리프 4세(재위 1513 ~ 1574)의 딸 [[https://en.m.wikipedia.org/wiki/Margaretha_von_Waldeck|마르가레타]]는 [[백설공주]] 이야기의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 이곳의 국기가 [[독일]] 국기와 같다. [[분류:독일 제국 구성 제후국]][[분류:1918년 멸망]][[분류:라인 동맹 구성국]][[분류:유럽의 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