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상위 문서, top1=농구 관련 인물(한국))] [목차] [[파일:/image/065/2011/07/26/101111jumpballkba006_0_0.jpg]] || '''이름''' || 방덕원 || || '''생년월일''' || [[1988년]] [[1월 22일]] || || '''키''' || 207cm || || '''체중''' || 116kg || || '''포지션''' || [[센터(농구)|센터]] || || '''드래프트''' || 2011년 KBL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 [br] [[부산 KT 소닉붐]]에 지명 || || '''출신 학교''' || [[성균관대학교|성균관대]] || || '''소속팀''' || [[부산 kt 소닉붐]](2011~2012) ||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 == 아마 농구 시절 == 방덕원이 처음 농구를 시작한 것은 중 3때였다. 당시에 이미 또래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당시 방덕원의 키는 188cm였고 [[농구]] 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를 두루두루 좋아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엘리트 체육만은 안 된다”며 전문 운동선수로 크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결국 방덕원이 선택한 것이 길거리 농구였고 큰 신장 덕에 쉽게 농구를 했고, 재미를 느꼈다. 시 대표로 나선 경험도 있다. 그냥 동네에서 농구를 하던 그에게 본격적인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은 중 3. 16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명지중 코치였던 [[김상준(농구)|김상준]](前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 코치가 방덕원의 아버지를 설득하면서 방덕원은 정식으로 농구를 시작하게 됐다. 키는 컸지만, 기초 운동량이 워낙 떨어졌기에 막상 경기에 나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교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명지고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유택]] 코치는 방덕원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훈련은 동기들과 똑같이 하면서도,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제대로 몸을 만들라는 [[김유택]] 코치의 엄명 때문이였다. 하지만 고 3이 되어 첫 선을 보인 방덕원은 ‘무기’ 그 자체였다. 207cm 신장에 깔끔한 동작으로 골밑 득점을 성공했고, 간결한 움직임을 통해 최대의 효과를 봤다. 방덕원이 지키는 명지고의 골밑은 최강이었다. 그 때부터 사람들도 방덕원이라는 선수를 주목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고 [[2007년]]에 [[성균관대학교]]는 [[고려대학교|고려대]], [[연세대학교|연세대]]를 제치고 주목을 받았었다. 하지만 대학 때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드래프트에서 14순위로 뽑혔다. 그러나 프로에서도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는데, 결정적으로 스피드가 느렸다는 게 문제였다. 방덕원은 최고의 하드웨어를 가졌지만 [[부산 kt 소닉붐|kt]]의 기본적인 팀의 컬러인 수비와 속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덕원은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한 채''' 농구공을 놓았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131025004645?OutUrl=naver]] 이후 2013년 신문기사를 통해 성추행으로 구속되었다는것이 알려졌다.인천의 한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여성 A씨를 뒤에서 껴안은 것으로 드러났다. 방씨는 같은 달 서울지하철 5호선 차량 내에서도 여성 B씨의 몸을 더듬다 들켜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분류:농구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