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구당서)] [include(틀:신당서)] ||||[[파일:백거이.jpg|width=100%]]|| ||<:> '''성명''' ||<(> {{{#000000 백거이(白居易)}}}[* [[병음]]: Bái Jūyì (바이 쥐이).] || ||<:> '''자''' ||<(> {{{#000000 낙천(樂天)}}} || ||<:> '''호''' ||<(> {{{#000000 취음선생(醉吟先生) · 향산거사(香山居士)}}} || ||<:> '''생몰년도''' ||<(> {{{#000000 772년 ~ 84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당(통일왕조)|당]]나라 때 시인. 자는 낙천(樂天)으로 백낙천(白樂天)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 상세 == 중국 문학을 말할 때 따로 당시(唐詩)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당나라 때에 시문학이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태백]]과 [[두보]]가 바로 당시로 유명한데, 백거이는 [[왕유(당나라)|왕유]], [[한유]], [[두목(당나라)|두목]]과 더불어 위의 두 사람 못지 않게 유명한 시인이다. 흔히 당시(唐詩)는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의 네 시기로 구분하는데, 이백과 두보는 성당기 시인, 백거이는 중당기 시인으로 분류한다. 같은 중당기 시인인 한유와 함께 네 사람을 한데 묶어 '''이두한백(李杜韓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백거이의 시가 3800여 수 전하는데, 대표작으로는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琵琶行),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 [[매탄옹]](賣炭翁) 등이 있다. 원래 [[당현종]]의 인생이 그야말로 드라마였기 때문에 시인들의 주된 표적(?)이 되었는데, 자연 이를 다룬 작품도 무지 많다. 개중 백거이의 장한가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아쉬움을 주제로 상상을 가미하여 만든 명시이다. <[[장한가]]>에는 "하늘에서 만난다면 비익조가 되기를 원했고(在天願作比翼鳥 재천원작비익조),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기를 바랐지(在地願爲連理枝 재지원위련리지)."라는 구절이 있다. 백거이가 비익조와 연리지를 사랑의 비유로 사용했기에 [[비익연리]](比翼連理)란 사자성어가 되어 지금도 쓰인다. 글쓰기에서는 [[퇴고]]를 강조하는데, 여기에 얽힌 백거이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백거이는 매번 시를 짓고 나서 동네 [[노파]]에게 들려주고는 '''노파가 알아듣지 못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글을 뜯어고쳤다'''. 백거이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거물 시인도 이렇게 치열한 어휘 구사를 위해 노력했는다는 일화이다. 생전에 작품들이 널리 퍼져, 많이 배우신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잣거리 [[목동]]들까지 애송할 정도였다니 그 인기와 백거이가 구사한 언어의 힘을 짐작할 만하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통일신라]]와 [[나라시대]] [[일본]]에서도 무척 인기가 좋아서 신작을 하나 내면 거의 실시간이나 다름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단어 [[설월화]](雪月花)를 처음 사용한 사람 역시 바로 백거이. 또한 훗날 [[헤이안 시대]] 중기의 인물인 [[무라사키 시키부]] 역시 백거이에게 영향받아 [[장한가]]를 인용해 [[겐지모노가타리]]의 첫장을 썼다. 16세기 말 [[명나라]] 이반룡(李攀龍)이 편찬했다고 전하는[* 이반룡의 이름에 가탁했을 뿐 실제 찬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선(唐詩選)>은 당시 입문서로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책이지만, 정작 백거이의 시는 통속적이란 이유로 빼놓았다. [각주] [[분류:수당시대/인물]][[분류:772년 출생]][[분류:846년 사망]][[분류:당나라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