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栢]][[栗]][[寺]] [목차] [clearfix] == 개요 ==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울산)|산업로]] 4214-110 ([[동천동(경주)|동천동]])에 위치한 [[절(불교)|절]]. 경주 시가지 북쪽의 [[경주 금강산]] 중턱에 있다.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로 작은 절이지만 [[이차돈]]의 순교 현장이었던 점 등 [[신라]] 때는 중요한 절이었다. [[경주시청]]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등 접근성이 불편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경주시외버스터미널|경주터미널]] 등에서는 거리가 좀 있는 편. == 역사 ==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흰 피가 솟구치고 잘린 목은 [[소금강산]]까지 날아갔고(?)[* 애초에 백률사가 [[소금강산]]에 위치한 곳이다.] 날아간 목이 떨어진 자리에 [[법흥왕]]이 세운 절이 백률사라고 한다. 처음 이름은 자추사(刺楸寺).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가 불교를 공인했으므로 신라 불교의 시작점이자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 [[삼국유사]]에서도 [[경덕왕]]이 행차한 이야기, 납치된 [[부례랑]]의 무사귀환을 기도한 이야기 등 꽤 많은 얘기가 여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지금의 조그만 백률사를 생각하면... 다만 백률사의 규모 자체는 신라시대부터 작았다고 한다. 백률사 대웅전 앞을 보면 바위벽에 [[석탑]]을 조각해 새겨놓은 것이 있는데, 신라 때부터 이미 부지가 너무 좁아서 대웅전 앞에 탑을 놓을 자리가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그랬다고 한다. [[헌덕왕]] 9년(817)에 이차돈을 추모하여 석당(石幢)을 세웠는데 여기에 이차돈의 잘린 목에서 흰 피가 나오는 조각이 새겨져 있고 지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옮긴 [[이차돈 순교비]]다. 신라 3대 금동불이라는 [[대한민국의 국보|국보]] 28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도 여기에 있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절 건물 자체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다시 지은 것이다. 2019년에 백률사에서 100m 떨어진 지점에서 이차돈의 무덤과 사당으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되었다. [[http://www.tbc.co.kr/tbc_news/n14_newsview.html?p_no=20190829165702AE01004|##]] 2022년 태풍 [[힌남노]] 때 큰 피해를 입었다. [[분류:신라/건축]][[분류:대한불교조계종 말사]][[분류: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분류:경주시]][[분류:이차돈]][[분류:한국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