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75호}}}]]''' || ||<-2> {{{#fff {{{+1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br]{{{-1 白磁 象嵌蓮花唐草文 大楪}}}}}} || ||<-2>{{{#!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 '''{{{#fff 수량/면적}}}''' || 1개 || || '''{{{#fff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15세기) || [[파일: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jpg|width=450]] [목차] == 개요 == 白磁象嵌蓮花唐草文大楪. [[조선]] [[세조(조선)|세조]] 12년인 1466년 또는 [[성종(조선)|성종]] 초에 왕의 명으로 우산리 2호 가마에서 만들어진 [[조선백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175호이다. == 내용 == 높이 7.6㎝, 입지름 17.5㎝, 밑지름 6.2㎝. 고려백자의 전통 양식을 이어 만들어진 [[조선백자]]로, 경기도 [[광주시|광주]]의 우산리 2호 가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우산리 2호 가마는 분원 관요가 설치되기 이전에 운영되었기 때문에, 분원이 운영되기 전에도 정교한 갑번 백자와 경질 상감 백자가 제작되었음을 밝혀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호암미술관]] 소장 '성화 병술'(1466)이 새겨진 상감 백자 지석과 양식과 재질이 완전히 동일한 연질백자로, 같은 1466년(세조 1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중이다. 또는 연대를 좀 더 늦게 잡아 성종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추측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15세기 중반 경에 만들어진 상감 백자 대접류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 외부 링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7199&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31967&cid=42680&categoryId=42680|한국 미의 재발견 - 도자공예 : 백자 상감 연당초문 대접]] == 국보 제175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750000,1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白磁 象嵌蓮花唐草文 大楪)]] >고려 백자의 전통을 이은 조선 전기의 백자로, 높이 7.6㎝, 입지름 17.5㎝, 밑지름 6.2㎝인 대접이다. 바탕흙은 석고와 같은 질감으로, 벽이 얇은 그릇이다. 아가리 부분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고 안쪽 윗부분에는 단순화된 덩굴무늬가 둘러져 있다. 바깥면에는 그릇의 위와 아랫부분에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연꽃 덩굴 무늬를 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다. > >이러한 백자상감류는 조선시대 15세기 중반경에 주로 만들어진 것으로 대체로 경상도와 일부 지방가마에서 고려의 수법을 계승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조선의 도자기]][[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