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107호}}}]]''' || ||<-2> {{{#fff {{{+1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br]{{{-1 白磁 鐵畵葡萄文 壺}}}}}}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신촌동)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fff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 '''{{{#fff 수량/면적}}}''' || 1개 || || '''{{{#fff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17세기) || [[파일: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jpg]] [목차] == 개요 == 白磁 鐵畵葡萄文 壺. [[조선]] 후기, 18세기 경에 만들어진 철화백자.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107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높이 53.3㎝, 입지름 19.4㎝, 밑지름 18.6㎝, 배지름 43.3㎝. 조선 후기, 1700년대에 [[사옹원]]의 분원에서 만들어진 철화백자로,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와 함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철화백자 항아리로 인정받는다. 특히 이 항아리의 포도 그림은 격이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당대 최고의 궁중 화원이 기량을 펼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백자_철화포도문_항아리|한국어 위키백과 :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7204&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자철사포도문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820743&cid=46657&categoryId=46657|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자철화포도문호]]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5446&cid=40942&categoryId=33383|두산백과 : 백자철화포도문호]] == 국보 제107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1070000,1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白磁 鐵畵葡萄文 壺)]] >조선시대 검은색(철화) 안료를 사용해 포도무늬를 그린 백자항아리로, 높이 53.3㎝, 아가리지름 19.4cm, 밑지름 18.6cm이다. > >조선시대에는 도화서의 화가인 화원들에게 도자기를 굽는 곳에 가서 도자기들에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이러한 그림 중에는 청색 안료인 청화(靑華)로 된 것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고, 검은색 안료인 철사나 붉은색 안료인 진사(辰砂)로 된 것은 비교적 수가 적었다. > >항아리 중에서 포도무늬의 그림은 또 다른 격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항아리의 크기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조선 중기 항아리의 전형으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항아리의 아가리는 알맞게 올라왔으며, 아가리에서 어깨까지 둥글게 팽창되는 모습이 당당함과 대담함을 느끼게 한다. > >몸체에는 검은색 안료를 사용해 포도 덩굴무늬를 그려넣었는데, 그 사실성 및 농담과 강약의 적절한 구사에서 18세기 백자의 높은 회화성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조선의 도자기]][[분류: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