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미얀마의 역사)] [include(틀:일본 제국의 괴뢰국)] ---- ||<-3> '''{{{#fff {{{+1 버마국}}}}}}[br]{{{#fff ဗမာနိုင်ငံတော်[br]ビルマ国[br]State of Burma}}}''' || ||<-3> {{{-2 [[일본 제국|[[파일:일본 제국 국기.svg|width=20]] {{{#000 일본 제국}}}]]{{{#000 의}}} [[괴뢰국|{{{#000 괴뢰국}}}]]}}} || ||<-2> [[파일:버마국 국기.svg|width=80%]] || [[파일:버마국 국장.png|width=60%]] || ||<-2> {{{#fff '''국기'''}}} || {{{#fff '''국장'''}}} || ||<-3> {{{#006A44,#FECB00 '''တစ်သွေး၊ တစ်သံ၊ တစ်မိန့်'''}}}[br]{{{#006A44,#DA2D1C '''하나의 피,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질서'''}}} || ||<-3> {{{#fff '''상징'''}}} || || {{{#fff '''국가'''}}} ||<-2>'''[[세상이 끝날 때까지]]''' || ||<-3> {{{#fff '''지도'''}}}[* 짙은 초록색 부분은 버마국이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영토다. 옅은 회색 부분은 여전히 [[영국령 버마]]의 영향력이 미치던 영토였고, 옅은 연두색 영토는 아예 [[태국]]에 합병당한 땅이다.] || ||<-3><#f5f5f5> [[파일:버마국 영토.png|width=300]] || ||<-3> '''{{{#fff [[1943년|{{{#fff '''1943년'''}}}]] ~ [[1945년|{{{#fff '''1945년'''}}}]]}}}''' || ||<-2> {{{#fff '''수립 이전'''}}} || {{{#fff '''멸망 이후'''}}} || ||<-2><#b0313f> [[버마 군정청|{{{#fff '''버마 군정청'''}}}]] ||<#00247D> [[영국령 버마|'''{{{#fff 영국령 버마}}}''']] || ||<-3> {{{#fff '''역사'''}}} || ||<-3> '''독립''' [[1942년]] [[5월 17일]][br]'''공화국 해체''' [[1945년]] [[8월 19일]] || || {{{#fff '''수도'''}}} ||<-2>[[양곤|랑군]] || || {{{#fff '''정치 체제'''}}} ||<-2>[[공화제]], [[전체주의]], [[독재]] || || {{{#fff '''국가대표 겸 내각총리대신'''}}} ||<-2>[[바모]] || || {{{#fff '''언어'''}}} ||<-2>[[버마어]], [[영어]], [[일본어]] || || {{{#fff '''통화'''}}} ||<-2>버마국 루피 || [목차] [clearfix] == 개요 == 버마국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미얀마]] 지역에 있었던 [[일본 제국]]의 [[괴뢰국]]이자 [[대동아공영권]]을 이루는 국가중 하나였다. == 수립 == 태평양 전쟁 개전 후인 1942년 [[아웅 산]]은 자신이 양성한 버마 독립군과 [[일본군]]과 함께 영국군에 대항하여 그들을 일시적으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일본 제국은 종전 후 버마 독립을 약속하여 전쟁 초반에는 버마 지역에 [[군정#군정청]]을 실시한다. 그러나 버마인들의 전쟁 협력을 필요로 한 일본 제국은 버마를 보다 일찍 독립시키기로 결정했고, 1943년 군정을 폐지하고[* 다만 [[카친주]]는 군사상의 이유로 계속 군정을 실시한다.] [[바모]][*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 분리된 영국령 버마의 초대 총리를 지냈다.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에는 [[반영]] 운동으로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를 국가원수로 하는 버마국이 수립된다. 독립 후 일본과 협약을 맺은 버마국은 바로 연합국에 선전포고한다. 일본군은 협약을 통해 버마에 군대를 계속 주둔할 수 있었다. 또한 버마국은 [[태국]]에 일부 동부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점령 초기 버마인들은 [[일본군]]들을 '아시아의 해방자'라며 환영했으나, 그들은 영국보다 더 가혹한 통치를 펼쳐 수많은 버마인들을 학살해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이에 [[아웅 산]]이 이끄는 30인의 동지들은 1944년에 '반파시스트 인민자유동맹(AFPFL)'을 조직하여 일본 제국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 멸망 == 1944년 시작된 [[임팔 작전]]이 일본군의 패배로 끝나고, 이 후 일본 제국이 영국군의 반격으로 계속 밀려나자 1945년 3월 27일, 아웅산이 이끄는 버마 독립군(BIA)은 영국편에 붙어 일본을 공격해 일본군과 버마국 정부를 몰아내고 종전하기 전까지 버마 대부분을 탈환하게 된다. 더이상 버마를 통치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일본군은 1945년 4월 버마 동부로 후퇴하고, 5월 2일 영국군은 [[양곤|랑군]]을 탈환한다. 일본군이 버마에서 축출되면서 버마국 정부는 일본으로 망명하고 버마국은 사실상 멸망한다.[* 바모는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패전 후 체포되지만 특사로 풀려나 버마 정계에 복귀한다.] == 군대 == 일본의 버마 군정기에 버마 독립군이 해산하고 버마 방위군으로 재편되었다. 버마국 수립후에는 버마국 국군인 버마 국군(Burma National Army 약칭 BNA)으로 편성된다. [[아웅산]]은 버마국 국방상에 취임했고 후임 사령관은 [[네윈]]이 맡게 된다. 하지만 일본이 전쟁에서 패망할 기미가 보이자 아웅산은 1945년 3월 27일 버마국 정부에 대한 반란을 선언하고 버마 국군은 일본군을 공격하며 연합국 편에 붙는다. 버마 국군은 미얀마 독립 후 지금의 미얀마군으로 계승된다. == 기타 == 일본은 불교를 이용해 버마인들의 민심을 끌어모으려 했으나 동남아인들이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와 [[대승 불교]]의 교리상 차이 등으로 인해 불교를 이용한 회유는 실패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일본 제국의 괴뢰국)] [include(틀:일본 제국의 군정청)] == 출처 == * [[가로세로 세계사]] 2권: 동남아시아, 동방의 천년 문명이 열린다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6. p41. [[분류:1943년 건국]][[분류:1945년 멸망]][[분류:일본 제국의 괴뢰국]][[분류:미얀마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