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f1eacd, #decd87 20%, #decd87 80%, #f1eacd)" {{{#000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제1대 왕비[br]{{{+1 베레니케 1세 | Berenice I}}}'''}}}}}}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베레니케 1세.png|width=100%]]}}} || ||<-2> '''휘''' ||베레니케(Βερενίκη)|| ||<-2> '''생몰년도''' ||기원전 345년 ~ 기원전 275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초대 왕비. == 생애 == 기원전 345년경 에오르다이아(Eordaea)에서 마케도니아 귀족 라구스 또는 마가스와 [[안티파트로스(마케도니아)|안티파트로스]]의 딸 안티고네의 딸로 출생했다. 10대 때 마케도니아 귀족 필리포스와 결혼하여 아들 [[마가스(키레네)|마가스]]와 딸 안티고네, 테옥세나를 낳았다. 마가스는 훗날 키레네의 왕이 되었고, 안티고네는 [[에페이로스 왕국]]의 [[피로스 1세]]와 결혼했으며, 테옥세나는 시라쿠사의 참주 [[아가토클레스]]와 결혼했다. 기원전 322년 필리포스가 사망한 뒤, 안티파트로스가 딸 에우리디케를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혼인시키기로 했다. 베레니케는 에우리디케의 시녀로서 이집트로 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만났다. 프톨레마이오스와 에우리디케는 곧 결혼하였고,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 [[멜레아그로스(마케도니아)|멜레아그로스]]를 낳았다. 기원전 317년, 프톨레마이오스는 베레니케를 두 번째 아내로 삼았다. 두 사람은 [[아르시노에 2세]], 필로테라, 그리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를 낳았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베레니케 1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생전에 맞이한 부인 중에서 지적 능력이 가장 우수하여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기원전 305년 [[디아도코이]] 간의 전쟁이 본격화하고 [[알렉산드로스 3세]]의 후계자들이 잇따라 죽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비로소 [[파라오]]를 칭했다. 그는 이집트에서 맞이한 첫 아내 에우리디케가 아닌 베레니케 1세를 왕비로 삼았고, 그녀의 자식들을 후대했다. 급기야 기원전 287년 베레니케 1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를 후계자로 삼기로 했다. 이에 에우리디케와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는 소아시아 서부와 마케도니아의 지배자 [[리시마코스]]에게 망명했다. 기원전 283년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사망했고, 베레니케 1세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가 [[프톨레마이오스 2세]]로 즉위했다. 베레니케 1세는 기원전 275년경에 사망했고, 사후 남편과 함께 신격화되었다. [[분류:고대 이집트 왕비]][[분류:기원전 345년 출생]][[분류:기원전 27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