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프랑스의 화가]][[분류:1841년 출생]][[분류:1895년 사망]][[분류:장티푸스로 죽은 인물]][[분류:부르주 출신 인물]] Berthe Marie Pauline Morisot(1841~1895) [목차] == 개요 == > 훌륭한 예술감각이군. 모리조의 작품보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미묘한 분위기를 살린 우아한 그림을 볼 수 없을 걸세 >---- >제 1회 인상주의 전시회 당시 모리조의 그림을 평가한 정치가 · 미술 평론가 앙투안 카스타냐리의 말 中 프랑스의 화가 == 생애 == 1841년 1월 14일 부르주에서 중산층의 딸로 태어났다. 모리조는 예술적인 집안의 분위기 덕분에 미술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미술학교는 여학생을 받지 않아 여성들은 개인교습을 받곤 했는데, 그녀는 미술을 함께하던 언니 에드마와 함께 귀샤르, 코로, [[에두아르 마네|마네]]와 같은 화가에게 사사했다.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와 가깝게 지냈으며 1874년 마네의 동생 외젠과 결혼했다. 1874년 4월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모리조는 [[에드가 드가|드가]]의 권유로 참여했고, 그 후 딸 줄리를 낳았을 때 한 번을 제외하고 총 8회 개최된 인상주의 전시회에 항상 작품을 출품했다. 결혼 후 언니 에드마는 화가의 길을 접었지만 남편 외젠은 베르트의 예술을 격려했고, 덕분에 그녀는 화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다. 1895년 3월 2일 54세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 화풍 == 당시의 일반적인 여성화가들과 달리[* 남자 화가들처럼 사교계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고, 샤프롱(chaperon)이라는 여자 보호자를 대동해야 집 밖을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리조는 실외장면을 많이 그렸으며 대담한 색조와 색채를 대상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을 선호했다. 물론 그렇다라도 그녀의 그림 대부분은 실내장면을 담고 있으며, 집 안에서도 여자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에 초점을 맞췄다. 그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요람>이 있는데 언니 에드마와 어린 조카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모리조는 마네의 영향을 받아 강한 색조 대비를 넣었다.[* 가령 방은 크림색, 분홍색 이지만 언니 에드마의 옷은 검은 색으로 표현했다.] 우아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띠는 모리조의 그림은 인상주의자들의 화려한 주제와 대조되지만 그녀는 근대 파리의 화가들이 열었던 새로운 지평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요람3.jpg|width=100%]]}}} || ||<:>''' 요람 '''[br]'''(The Cradle)'''[br]1872년, [[파리(프랑스)|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