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독일의 군인]] [[분류:독일 국방군/인물]] [[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 [[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 |||| '''{{{#fff 친위대 돌격대지도자 [br]{{{+2 슈투름반퓌러 베른하르트 크루거}}}[br] SS-Sturmbannführer Bernhard Krüger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베른하르트.png|width=100%]]}}}|||| || {{{#FFF '''출생'''}}} ||<(> 1904년 11월 26일, 독일 리자, [[작센 왕국]]|| || {{{#FFF '''사망'''}}} ||<(> 1989년 3월 1일(향년 84세), [[독일]] [[함부르크]]|| || {{{#FFF '''복무'''}}} ||<(> [[슈츠슈타펠]], 친위대 국가보안본부 (RSHA) - 해외 정보국 VI F 4a 부서|| || {{{#FFF '''국적'''}}} ||<(> [[독일 제국]] -> [[나치 독일]] -> [[서독]]|| || {{{#FFF '''정당'''}}} ||<(>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FFF '''최종 계급'''}}} ||<(>친위대 돌격대지도자 (소령) || [목차] [CLEARFIX] == 개요 == 베른하르트 작전을 주도한 [[나치 독일]] 친위대 소령 (돌격대지도자) [[베른하르트 크루거]]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친위대]]의 고위 장교였다. 1904년 5월 17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고 1928년에 NSDAP([[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일원이 되었다. 크루거는 [[SS]]에서 빠르게 진급하며 돌격대지도자([[독일 국방군]] 소령에 대응하는 친위대 계급) 계급에 도달했다. 그는 위조 분야의 전문가였으며, 영국의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 목적으로 위조 영국 지폐를 생산하는 비밀 작전인 유명한 "베른하르트 작전"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용소의 유대인들 중 위조, 그래픽 디자인, 경제나 은행 관련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을 모아 위조 지폐를 생산해냈다. 아돌프 브루거의 증언을 토대로 2007년 개봉한 오스트리아의 영화 [[카운터페이터]]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크루거는 [[영국군]]에 의해 2년간 구금된 후 [[프랑스]]로 이송되어 위조 지폐를 제작하는 일을 맡았다. 그는 1948년에 석방되어 [[독일]]로 돌아왔으며, 주요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피고인으로 등재되지 않았다. 또한 1989년 탈나치화 법원에서도 그가 감독했던 유대인들의 증언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베른하르트가 주도한 위조지폐 제작은 전시에는 다른 국가들도 하던 짓거리(...)라서 전쟁범죄라 보긴 어려웠다. 또한 베른하르트는 지폐 제작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서 작업에 참여하는 유대인들에겐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해 주었고, 이 때문에 당사자들도 베른하르트에게 우호적으로 증언을 해주어서 무죄로 풀려날 수 있던 것. == 베른하르트 프로젝트 == "베른하르트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실행했던 비밀 작전으로 영국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위조 영국 지폐인 [[파운드화]]를 생산하는 작전이었다. 작전의 이름은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베른하르트 크루거 친위대 소령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작전은 크루거가 위조 지폐 제조를 담당하는 유대인들을 감독하는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수행되었다. 위조 파운드 지폐는 고품질이었으며, 영국 경제를 약화시키고 파운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영국 경제 곳곳에 스며들 예정이었다. 나치는 이것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영국의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조 지폐는 진짜 영국 지폐와 매우 흡사하게 만들어졌다. 베른하르트 작전 중에 약 1억 3천만 파운드의 위조 지폐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수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베른하르트 작전은 계속해서 실행될 수 없었다. 파운드화의 위조 성공 이후 미국의 [[달러]]를 위조하던 프로젝트를 이어나갔지만, 전쟁 말기, 동쪽에서는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복수의 칼날을 간 [[소련군]]이 몰려오고 있었고, 아프리카 전역을 정리한 후 순차적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영국군]]과 [[미군]]이 상륙하면서 전황이 점차 독일의 패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결국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1945년 수감자들은 오스트리아(오스트마르크주)에 위치한 Ebensee concentration camp로 이송되었다. 위조 지폐 중 일부는 이탈리아로 유통되어 흩어지거나 손실되었고 친위대원의 급여로 지급되기도 했다. 나머지는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군]]에 의해 압수되었고, 위조 파운드화가 유입되었던 영국에는 전후에도 꽤 오랬동안 영향을 미쳤었다. 역사상 가장 큰 위조 작업 중 하나로 간주되는 베른하르트 작전은 많은 국가에서 지폐의 보안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그러한 위조가 얼마나 위험하고 효과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