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베트남 관련 문서)] [include(틀:싱가포르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싱가포르]]에 있는 베트남 혈통의 싱가포르인들이다. 대다수는 [[중국계 베트남인]] 혈통을 물려 받았다. == 역사 == [[베트남 전쟁]] 당시 [[보트피플]]들이 베트남을 탈출했는데 주로 베트남 내 [[화교]]였다. 이들은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대만]], [[호주]], [[뉴질랜드]] 등지로 탈출했는데 싱가포르에도 난민으로 왔다. 이 때 부유했던 베트남 화교 난민들은 대부분이 [[광동성]] 출신과 [[푸젠성]] 출신들이라서 [[민남어]], [[광동어]], [[객가어]] 등 현지에서 쓰는 [[중국어]] 방언을 알아서 크게 문제가 없어서 싱가포르로 귀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학력자였다보니 [[영어]] 구사력도 좋았다. 문제는 순수 [[베트남인]] [[보트피플]]들이다. 이들은 아예 중국어도 영어도 못해서 대부분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베트남 난민들은 차라리 [[영국령 홍콩|영국령]]으로 베트남 난민을 [[영국 정부]]의 정책에 의해 수용하던 [[홍콩]]을 거쳐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으로 이민갔다. 물론 현재는 싱가포르가 미국보다 잘 사는 나라지만 [[1960년대]] 갓 독립한 [[싱가포르]]는 아직 개발도상국으로 현재 싱가포르로 노동자들이 이민 오는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더 잘 살아서 경제 원조를 해주던 처지였다.[* 지금은 싱가포르가 [[미국]]에 비해 부유하며 [[미국]]에 가려는 [[싱가포르인]]이 거의 없어서 [[1999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ESTA|무비자 정책 대상국]]이 되었다. [[캐나다]]는 애초에 비자 면제국이고 [[영국]]이 [[1988년]]에 [[ESTA]] 대상국이 된 것을 감안하면 빠르다. 심지어 [[일본]]보다도 빠르다.] 싱가포르가 현재처럼 [[선진국]]으로 거듭난 것은 [[리콴유]]의 경제 정책이 성공한 [[1987년]] 이후의 일이며 이 때부터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쇼와 시대]] 말기 [[헤이세이 시대]] 초기인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절정]]을 찍고 [[일본/경제|일본 경제]]가 쇠퇴할 때 [[싱가포르/경제|싱가포르 경제]]는 성장했다.[* 2007년에 싱가포르의 1인당 소득이 그해 일본의 소득보다 높았다.] [[1960년대]] 초에는 [[태국]]의 [[타이항공]]이 [[싱가포르]]에 무상으로 관람차를 건설해주고 [[리콴유]]가 [[미얀마]], [[말레이시아]], [[필리핀]] 정도로만 먹고 살자고 할 때였었다. 그 시절에 [[싱가포르]]는 [[미국]], [[영국]], [[호주]]의 지원을 받기 위해 [[보트피플|베트남 난민]]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70년대]] 후반에 [[중월전쟁]]을 겪은 통일 [[베트남]]에서 [[중국계 베트남인|화교]]들을 대거 추방할 때 많은 수가 싱가포르에 오기도 했다. 이들 [[중국계 베트남인|베트남 화교]]들은 전술한 것처럼 [[광동인]]들로 [[광동어]]를 모어로 썼으며 [[표준중국어]]를 할 수 있는 이도 많아 싱가포르에 정착하기가 쉬웠다. 이들 [[중국계 베트남인|베트남 화교]] 출신들은 현재는 거의 [[중국계 싱가포르인]]에 동화되어 겉으론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다들 자본가나 전문직들이었기에 부유한 건 당연하다. 실제로 [[남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시기 자본가였거나 [[전문직]]이었고 이들은 [[대만]], [[홍콩]]으로도 많이 갔다. == 현재 == 싱가포르에서 [[베트남인]]들의 인구는 15000명 정도이지만 이는 [[베트남]] 출생에 [[베트남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숫자에 불과하고 사실은 더 많다. 왜냐하면 [[베트남인]] 난민들은 대부분 [[광동인]], 호키엔인, [[객가]] 위주의 [[중국계 베트남인]]들이고 이들은 중국계가 많던 싱가포르에 적응을 쉽게 해서 사실상 베트남 출신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그렇다. 이는 [[홍콩]]도 마찬가지라서 홍콩에서 생각보다 베트남이 고향인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당장 [[영웅본색]] 감독인 서극도 [[중국계 베트남인]] 출신이었고 [[베트남 전쟁]] 이후 [[홍콩]]으로 이주한 케이스이다. 참고로 [[홍콩]]이나 현재 [[광둥성]], [[푸젠성]], [[하이난성]]과 [[베트남]] 북부는 문화적으로 유사하다. 현재 대부분의 베트남계 후손들은 호커센터[* [[싱가포르]]의 푸드코트이자 포장마차로 음식이 저렴하고 푸짐해 여기서 다들 식사를 떼운다.] 및 재래시장, [[베트남 요리]] 음식점에서 일하지만 일부는 성공해서 [[은행]] 및 [[패밀리 오피스]] 등 금융계나 외국계 대기업[* [[HSBC]], [[삼성]], [[LG]] 등 싱가포르엔 여러 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이 있다.]에 다니기도 한다. 사실 중산층의 삶을 사는 베트남 난민 후손들은 [[중국계 베트남인]]의 후손이고 킨족이라고 불리는 원래 [[베트남인]]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일원으로서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고 살아간다. 사실상 [[베트남]]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남자는 대게 공사판 등 막노동판에서 [[중국인]]이나 [[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일하고 여자는 가사도우미를 한다. 물론 [[베트남인]] 엘리트들도 [[싱가포르]]에서 전문직으로 근무하기도 한다.[* [[베트남인]]들이 많이 진출한 [[대한민국|한국]], [[일본]], [[홍콩]], [[대만]]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필리핀인]] 가사 도우미가 적은 이유가 이 베트남 여성들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인]]들은 말이 통하는 [[영미권|영어권]]인 [[필리핀인]]들을 영어도 못 하는 베트남 사람들보다 더 선호하여 되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의 몸값이 더 비싸다. 베트남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가사도우미 여자들의 경우 대게 시골 출신들이 많으며 세상 물정에 어두워 사기에 휘말려 매춘굴로 팔려가거나 하는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싱가포르 경찰의 범죄예방 프로그램 에서 베트남계 브로커가 인력 송출 회사와 짜고 어리숙한 시골 여자들을 유인 후 겔랑의 메춘굴에 팔아넘긴 사례가 나왔다. 피해자는 영어를 할 줄 몰라 도움을 못 받았다가 간신히 기회를 얻어 도움을 받고 베트남에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 관련 문서 == * [[베트남인]] * [[중국계 베트남인]] * [[보트피플]] * [[중국계 싱가포르인]] * [[싱가포르인]] [[분류:싱가포르의 민족]][[분류:베트남계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