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트란실바니아 공]][[분류:헝가리 국왕]][[분류:1580년 출생]][[분류:1629년 사망]][[분류:후네도아라 주 출신 인물]][[분류:화폐의 인물]] [include(틀:역대 헝가리 국왕)] [include(틀:역대 트란실바니아 공)] ---- ||<-2> '''헝가리 왕국의 국왕[br]트란실바니아 공[br]{{{+1 베틀렌 가보르}}}[br]Bethlen Gábor'''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Gabor_Bethlen-Hungary_National_Musem.jpg|width=100%]]}}} || || '''이름''' ||베틀렌 가보르[br](Bethlen Gábor)|| || '''출생''' ||[[1580년]] [[11월 15일]][br][[트란실바니아 공국]] 머로시예|| || '''사망''' ||[[1629년]] [[11월 15일]] (향년 49세)[br][[트란실바니아 공국]] [[알바이울리아|줄러페헤르바르]]|| ||<|6> '''재위''' ||<#E7E7E7>[[헝가리 왕국]]의 국왕|| ||[[1620년]] [[8월 25일]] ~ [[1621년]] [[12월 31일]]|| ||<#E7E7E7>[[트란실바니아 공국]]의 공작|| ||[[1613년]] [[10월]] ~ [[1629년]] [[11월 15일]]|| ||<#E7E7E7>[[오폴레|오폴레 공국]]의 공작|| ||[[1622년]] ~ [[1625년]]|| ||<|2> '''배우자''' ||카로이 주전너 ,,(1605년 결혼 / 1622년 사망),,|| ||[[카타리나 폰 브란덴부르크|브란덴부르크의 카타리나]] ,,(1626년 결혼),,|| || '''아버지''' ||베틀렌 퍼르커시|| || '''어머니''' ||라자르 드루지너|| || '''형제''' ||이슈트반|| || '''종교''' ||[[칼뱅파]]|| [목차] [clearfix] == 개요 ==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의 [[프린스|공작]]. 1622~1625년에는 [[보헤미아 왕국]] 산하 [[슐레지엔]] 공국의 오폴레 공작도 겸했다. == 생애 == [[헝가리인]]의 자치공국이었던 [[트란실바니아 공국|에르데이 공국]]의 머로시예(Marosillye)[* 현 [[루마니아]] 일리아(Ilia).]에서 태어났다. 세케이푈드(Székelyföld)[* [[헝가리인]]의 친척뻘인 [[세케이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헝가리 왕국]] 시절부터 존재하여 현재 루마니아에도 남아있다. 현재 루마니아의 하르기타 주, 코바스나 주, 무레슈 주 일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중에 반 [[합스부르크 가문]] 봉기를 이끌어 에르데이 공작으로 취임하는 보치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án 1557~1606)과 함께 [[프라하]]로 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장 [[루돌프 2세]]를 만나 평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이때 합스부르크 가문이 에르데이 공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고 이후 평생 반 합스부르크 노선을 걸었다. 1599년 [[왈라키아 공국]]의 [[미하이 2세]]와 맞붙었으나 패전했고, 이후 루돌프 2세에게 고용된 [[이탈리아인]] [[용병]]대장 조르조 바스타(Giorgio Basta 1550~1607)에 저항하는 봉기를 일으켰으나 패배하고 [[오스만 제국]]으로 망명했는데, 이때부터 동부 헝가리인 귀족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1613년 바토리 가보르가 사망하자 오스만 제국의 [[파디샤]] [[아흐메트 1세]]는 베틀렌 가보르를 에르데이 공국의 군주로 임명했고, [[클루지나포카|콜로즈바르]]에서 열린 에르데이 공국 신분제 의회에서 정식으로 승인받았다. 에르데이 공작으로서 예술과 과학을 증진하기 위해 애썼으며 너제네드(Nagyenyed)[* 현 루마니아 아이우드(Aiud).]에 아카데미를 세웠다. [[30년 전쟁]]이 벌어진 1618년 [[페르디난트 2세]]가 [[보헤미아 왕국]]에서 일어난 반란의 진압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상 헝가리[* 현재의 [[슬로바키아]].] 대부분을 장악하고, [[브라티슬라바|프레스부르크]]를 점령하여 [[성 이슈트반 왕관]]을 빼앗았다. 1620년 [[반스카비스트리차|베스테르체바녀]]에서 헝가리 국왕으로 선출되었으나 상 헝가리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1년 만에 헝가리 국왕 칭호를 포기했다. 1623년에 다시 페르디난트 2세와 전쟁을 시작했고, 보헤미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개신교 연합군이 패배한 뒤로는 전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베틀렌은 [[튀르크인]]을 헝가리와 유럽에서 쫓아내기 위해 동부동맹을 맺으려는 계획에 전념하고 페르디난트의 지원을 얻을 목적으로 그의 딸과 결혼을 하고자 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그는 독일 제후들과 손잡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지기스문트]]의 딸 [[카타리나 폰 브란덴부르크|카타리나]]와 결혼했고, 1626년 [[합스부르크 가문]]의 [[헝가리 왕국]]을 재점령했지만 가톨릭교도와 제국군이 승리하자 프레스부르크 조약으로 페르디난트와 다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1629년 11월 15일 사망했으며 유해는 줄러페헤르바르[* 현 루마니아 [[알바이울리아]].]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 여담 == 헝가리 [[포린트|2000포린트]] 지폐의 인물이다.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Hősök tere) 14인의 동상 위인 중 1명이다. 튀르키예 사극 드라마 [[위대한 세기 : 쾨셈]]에서 시즌2의 히로인 "베들렌 파리아"의 아버지라는 설정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