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콩고민주공화국의 역사)] ||<-3> {{{#f9d618 {{{+1 '''벨기에령 콩고'''}}}[br]'''Congo belge'''}}} || ||<:><-2> [[파일:콩고 독립국 국기.svg|width=150]] ||<:> [[파일:98FD2C07-F06C-4D9D-B4A7-BC5082B56F6A.png|width=150]] || ||<-2> '''[[국기|{{{#f9d618 국기}}}]]''' || '''[[국장|{{{#f9d618 국장}}}]]''' || ||<-3><:>'''{{{#0039a5 Travail et progrès}}} [br] {{{#f9d618 노동과 진보}}}'''|| ||<-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ationCongoFreeState.png|width=300]] || ||<-3><:>'''{{{#f9d618 1908년 12월 18일 ~ 1960년}}}''' || ||<-2><:>'''{{{#f9d618 성립 이전}}}'''||<:>'''{{{#f9d618 멸망 이후}}}'''|| ||<-2><:>'''[[콩고 독립국|{{{#f9d618 콩고 독립국}}}]]'''||<:>'''[[레오폴드빌 콩고|{{{#f9d618 레오폴드빌 콩고}}}]]'''|| || '''{{{#f9d617 국가}}}''' ||<-2>[[La Brabançonne|브라반트의 노래(La Brabançonne)]] || || '''[[수도(행정구역)|{{{#f9d617 수도}}}]]''' ||<-2>[[킨샤사|레오폴드빌]] || || '''{{{#f9d617 정치체제}}}''' ||<-2>[[벨기에 제국]]의 [[식민지]] || || '''[[언어|{{{#f9d617 언어}}}]]''' ||<-2>[[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 || '''[[민족|{{{#f9d617 민족}}}]]''' ||<-2>320여 개가 넘는 토착 민족 || || '''{{{#f9d617 통화}}}''' ||<-2>콩고 프랑 || [목차] [clearfix] == 개요 == [[1908년]]부터 [[1960년]]까지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에 존재했던 [[벨기에]]의 [[식민지]]였다. [[1922년]]부터는 [[루안다-우룬디]]라는 이름 하에 오늘날 [[르완다]], [[부룬디]] 일대를 차지하고 있던 벨기에 식민지도 영역에 포함되었다. [[1960년]] [[6월 30일]] [[콩고민주공화국|콩고 공화국]]의 독립으로 붕괴하였다. == 역사 == [[1908년]] [[레오폴드 2세]]로부터 콩고 식민지를 회수하여 국가 식민지로 삼은 벨기에 정부는 콩고를 계층적으로 조직된 행정 구역으로 나눠 정해진 원주민 정책(politique indigène)에 따라 균일하게 운영하였다. 특히 [[1940년대]]~[[1950년대]] 벨기에령 콩고는 광범위한 [[도시화]]가 이뤄졌고, 벨기에 정부는 벨기에령 콩고를 '모범적인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교육, 복지, 개발 정책을 시행하였다.[* -Freund 1998, pp. 198–9] [[1950년대]]가 되면 벨기에령 콩고는 그 외 [[아프리카]] 식민지들과 비교해서 평균 2배나 되는 임금을 받았다.[* -Freund 1998, p. 198] 식민지 정부의 이러한 근대화 정책과 경제 성장에 힘입어 벨기에령 콩고 내에서는 지식인층이 성장하였고, 이들은 자국의 독립을 갈망하였다. 이들의 주도하에 급진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 여파로 [[1960년]] 1월 벨기에 정부는 콩고 독립을 논의하기 위해 테이블 회의를 개최하였다. 벨기에령 콩고의 13개 정당 대표 96명이 초대되었는데, [[조제프 카사부부]], 모이즈 촘베(Moïse Tshombé), [[파트리스 루뭄바]] 등이었다. 본 회의에서 벨기에는 4년에 걸쳐 천천히 권력을 콩고인들에게 이양할 것을 지시할 예정이었으나, 콩고인들은 벨기에를 신뢰하지 않았고 결국 1960년 6월 1일까지 완전한 독립 추진을 결의했다.[* -Kim, Kwang-Su (2015). The Historical Contextualization of the Identity of the Kongo Kingdom in Pre-Independence DR Congo History. 한국아프리카학회지, 45, p7] 식민지 유지에 대한 엄청난 반대에 직면한 벨기에 정부는 결국 그 해 6월 30일 콩고의 독립을 인정하여 벨기에령 콩고가 붕괴하고 [[레오폴드빌 콩고|콩고 공화국(레오폴드빌)]]이 수립되었다.[* -Lye & The Diagram Group 2002: 145, Reader 2013: 653-686, 819, The Diagram Group 2000: 119)] == [[콩고민주공화국]]과의 비교[* 출처: The Belgian Congo as a Developmental State] == === [[경제]] === 벨기에령 콩고의 주 산업은 광업이었다. 막대한 이윤을 얻기 위해 벨기에 식민 정부는 원주민들에 대해 '저임금' 정책을 유지했고 원주민들의 경제적 발전을 방해하려는 태도를 취했다. 이로 인해 벨기에인과 콩고인 사이의 소득 격차가 극심했는데, 1958년 기준 두 민족의 소득 격차는 33:1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 후 콩고의 실질 임금은 벨기에 시대보다 감소했다. 독립 직후인 1960년 콩고인들의 실질 일당은 8.14$였으나 불과 5년 후인 1965년에 1.47$로 급락했다. 그리고 1979~80년에는 실질 임금이 0에 수렴했다. 1인당 GDP(PPP)는 독립 직후 약 2,700$로 당시 [[인도네시아]]의 2배에 달했지만, 오늘날 콩고민주공화국의 1인당 PPP는 약 1,000$에 불과하여 오히려 벨기에 시대보다 감소했다. 소득 격차도 독립 후 훨씬 심해졌다. 2010년, 콩고인의 월평균 소득은 25$이다. 같은 기간, 주지사의 월 평균 급여는 8,228$로, 소득 격차는 329:1에 달해 식민지 시대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되었다. 식민지 시대를 곱씹어보자. 1958년 당시 110,000명의 백인(인구 1%)이 임금의 45%를 차지했는데, 오늘날 콩고의 약 2,605명의 정치인(0.003%)이 임금의 95%를 차지하고 있다. [각주] [[분류:벨기에 식민지 콩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