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422년 사망]][[분류:5세기 교황]][[분류:교황(서로마 제국)]][[분류:시성된 교황]][[분류:가톨릭 성인]][[분류:로마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가톨릭 교황)] ||<-5><#806600> [[교황|[[파일:교황 문장.svg|height=40]] '''{{{#FFF 가톨릭 교회의 교황}}}''']] || ||<-5> [[파일:42_s_bonifacio_I.png|height=125]] || || 제41대 [[조시모|성 조시모]] || → ||<#806600> '''{{{#FFF 제42대 성 보니파시오 1세}}}''' || → || 제43대 [[첼레스티노 1세|성 첼레스티노 1세]] || * [[라틴어]]: Bonifacius I * [[이탈리아어]]: Bonifacio I * [[영어]]: Pope Boniface I * 생몰년: ? ~ 422년 9월 4일 * 재위기간: 418년 12월 28일/29일 ~ 422년 9월 4일 전임 교황 [[조시모]]의 죽은 후 장례가 끝나자마자 [[에울랄리오]]의 지지자들이 [[라테라노]]를 점거했는데 새로운 교황은 이곳에서 일요일에 착좌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교구의 주요 성직자들 대부분은 보니파시오 1세를 지지했고,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 되었다. 하지만 [[라테라노]]가 점거되어 착좌식은 [[산 마르첼로 알 코르소 성당]]에서 대신 행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명의 교황이 선출되었기 때문에 혼란은 불가피 했는데 당시 로마 총독은 양 교황 진영에게 폭력 소요사태를 일으키지 말 것을 경고하는 한편 [[호노리우스]] 황제에게 에울랄리오가 먼저 선출되었으므로 그가 적합한 교황이라는 서신을 보낸다. 이에 [[호노리우스]] 황제도 에울랄리오가 적법한 새 교황이라는 답신을 보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측 사이에 폭력 사태가 발생했고, 보니파시오 1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교황 선출의 적법성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다. 결국 [[스폴레토]]에서 [[시노드]]를 개최하여 이탈리아 주교들 앞에서 시시비비를 가려 누가 새로운 교황인지 밝히도록 한다. 그 전까지 두 교황 모두 로마 밖에 머물것을 지시받는다. 하지만 에울랄리오가 이를 어기고 성탄절 미사를 진행하러 로마에 입성했고, 결국 이로 인해 지도층들의 신용을 잃게된다. 황제 [[호노리우스]]의 의중은 에울랄리오에 가까웠으나 이로 인해 형세는 역전 되었고, 결국 [[시노드]]를 취소하고, 보니파시오 1세가 적법한 교황이라는 칙령이 내린다. 보니파시오 1세는 교황에 오른 뒤 펠라기우스주의를 배척하는 한편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의 승낙 없이는 교회 문제를 처리하지 말라는 칙령을 반포하자 [[호노리우스]] 황제를 설득해 이 칙령을 취소하도록 한다. 또한 전임 [[조시모]] 교황과 마찰을 겪은 북아프리카 주교들과의 다툼도 원만하게 해결한다. 3년여의 짧은 재위기간 동안 많은 일들을 처리한 보니파시오 1세는 중병에 걸려 죽고 만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9월 4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