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복원궁(福源宮)은 [[고려]] [[예종(고려)|예종]] 때 설립된 국내 최초의 도관(道觀, [[도교]] 사원)이다. 복원관(福源觀)이라고도 한다. == 연혁 == 『[[고려도경]]』에 따르면 1110년 [[북송]]에서 우류(羽流, 도사)들이 고려에 파견됐고, 북송 정화(政和) 연간(1111~1117)에 [[개경]] 왕부(王府)의 북쪽, 태화문 안에 복원궁이 세워졌다. 『[[고려사]]』에서는 "1120년 음력 6월과 12월에 예종이 친히 행차해 초제(醮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가장 빠르다. 1221년 5월 북쪽 성랑(城廊)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조선]] 초에 들어 예조에서 "초제를 지내는 장소가 너무 많습니다."라고 해서, [[대청관]]과 소격전만을 남기고 신격전·구요당·소전색 등은 폐지됐다. == 내부 시설 == === 전(殿) === * 신격전(神格殿) 복원궁 내의 전각. 초제를 지내던 장소로 [[원종(고려)|원종]] 때는 특이하게 [[불교]] 행사인 도량이 열리기도 했다. * 삼청전(三淸殿)·소격전(昭格殿) 복원궁 내의 전각. 내부에 삼청상(三清像, [[원시천존|옥청]]·[[영보천존|상청]]·[[노자|태청]])을 그린 그림이 있었다. 그 중 태청인 [[노자|혼원황제]](混元皇帝)의 그림은 수염과 머리카락이 [[감색]]인 점이 [[휘종(송)|송 휘종]]의 그림과 비슷했다. 1149년 갑자기 삼청전에 있던 작은 종이 울렸다는 기록이 있다. 후 조선왕조에선 복원궁을 없애고 경성(京城, 개경)에 대청관과 소격전만 남겨 중종 대까지 초제를 지낸다. [[소격서]]로 이어지는 [[한성]]의 소격전은 1396년 착공해 1402년 완공됐다. * 태일전(太一殿) 1378년 [[공민왕]]이 복원궁에서 태일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이 세워지고 수도가 [[한양]]으로 옮겨간 뒤 복원궁에서 태일에게 초제를 지내기도 했다.[* 『[[동문선]]』 제115권의 복원궁 태일 이배별 초례 청사(福源宮太一移排別醮禮靑詞).] 1397년 폐지돼 소격전과 합쳐졌다. === 당(堂) === * 구요당(九曜堂) 9명의 성신(星神)인 [[구요#s-1]]를 모시는 사당. 고려궁지에도 있었다. * 천황당(天皇堂) == 종사자 == * [[도사]] 『[[고려도경]]』에 따르면 복원궁에 체재하는 도사의 수는 10여명이었다. 초창기에 도사들은 낮에는 재궁에서 머무르고 밤에는 사실(私室)로 돌아갔는데, 언관들이 이를 문제삼아 법으로 금했다. * 위숙군(圍宿軍) 각종 관청이나 성문을 지키는 인원. 복원궁에는 잡직장교(雜職將校)와 산직장상(散職將相)이 각각 2인씩 배치됐고, 복원궁 천황당에 산직장상 2인이 배치됐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만월대 내 별궁, version=36, paragraph=2.2)] [[분류:도관]][[분류:고려/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