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십육국춘추)] [목차] == 개요 == 卜珝 (? ~ 312) [[전조(오호십육국)|전조]]의 인물. 자는 자옥(子玉). [[흉노]] 후부(後部) 출신. == 생애 == 복후는 어려서부터 《[[주역]]》에 대해 담론하는 것을 좋아하여 곽박과 교류하였다. 이후 곽박이 강남으로 피난 가자, 복후는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 은둔하였다. 영봉 원년(308년) 10월, 황제에 즉위한 광문제 [[유연(전조)|유연]]은 복후의 명성을 듣고, 그를 불러 대사농, 시중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복후는 병을 이유로 굳게 거절하였다. 광문제가 말했다. >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생각이 있다. 복후가 나의 조정에 임관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 어찌 [[한고조|고조]]의 4공(四公)과 다르다 하겠는가! 그 고고한 뜻을 이룰 수 있게 해주겠다." 이후 광문제가 다시 사자를 보내 복후를 광록대부로 불렀으나, 복후는 또 거절하며 사자에게 말했다. > "그곳은 제가 죽을 장소가 아닙니다." 광문제가 붕어하고 소무제 [[유총(전조)|유총]]이 제위를 잇자, 소무제가 복후를 불러 태상에 임명하였다. 당시 [[유곤]]이 병주(并州)를 거점으로 할거하고 있었는데, 유총이 복후를 불러 유곤을 언제쯤 평정할 수 있겠느냐 물었다. 이에 복후가 답했다. > "병주는 이미 폐하의 영토나 마찬가지이니, 올해 안으로 평정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자 소무제는 농담삼아 복후에게 말했다. > "짐은 선생이 직접 가는 수고를 부탁하고 싶은데 어떠한가?" 복후가 말했다. > "신(臣)이 의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 한 채 달려온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소무제는 크게 기뻐하며 복후를 사지절, 평북장군으로 삼고, 진북장군 근충과 함께 진양(晉陽) 정벌에 종군하게 하였다. 가평 2년(312년) 정월, 복후는 떠나기 직전에 그의 여동생에게 당부했다. > "내가 이번 원정에 나서는 것은 스스로 죽고자 함이니, 너는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항상 삼가도록 해라." 이후 근충과 복후는 군대를 이끌고 진양성을 포위하였다. 가평 2년(312년) 3월, 진양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진나라를 구원하러 온 [[탁발부]]의 구원군이 당도하여 근충과 복후를 패퇴시켰다. 근충이 복후의 군대가 먼저 전장을 이탈하는 바람에 패했다며 복후에게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멋대로 군중에서 참수하니, 이 소식을 들은 소무제는 크게 분노해 사람을 파견해 근충을 참수케 하였다.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흉노]][[분류:312년 사망]][[분류:참수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