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부동흥}}}'''[br]'''夫東興'''}}}}}}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부동흥.jpg|width=100%]]}}} || || '''창씨명''' ||[[마츠다]] 토코(松田東興)[* 정주식(鄭周植)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6428|독립유공자 공훈록]] 참조.] || || '''본관''' ||[[제주 부씨]][* 열공계(悅公系) 19세 동(東) 항렬.] || ||<|2> '''출생''' ||[[1927년]] [[10월 4일]][* 제주부씨족보 권2 451쪽에는 12월 4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 ||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읍|구좌면]] 동복리 1602번지[br](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 || '''사망''' ||[[1999년]][* 대전현충원묘적부에는 1990년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5월 26일]] (향년 71세)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279호 || || '''상훈''' ||대통령표창 수여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기업인]].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 생애 == 1927년 10월 4일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1602번지에서 아버지 부자도(夫子道, 1894. 2. 21 ~ 1966. 2. 15)와 어머니 [[청주 한씨]] 한생도(韓生道, 1889. 8. 19 ~ 1966. 7. 26)[* 한사진(韓仕進)의 딸이다.] 사이의 6남 7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전기통신대학|동아전기통신공학교]](東亞電氣通信工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경상남도]] [[동래군]] 출신의 동기생 [[나카노]] [[요시오]](中野吉雄)[* 정주식(鄭周植)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Merit&mngNo=6428|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나카노]] 요시유(中野吉勇)로 적혀 있다.]와 [[히로시마시]] [[산요]](山陽)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합천군]] 출신의 [[https://e-gonghun.mpva.go.kr/user/ContribuReportDetail.do?goTocode=20001&pageTitle=Report&mngNo=6428|정주식]](鄭周植)[* 창씨명 [[스기야마]] 슈쇼쿠(杉山周植).]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한 뒤 [[오사카부]]와 [[히로시마현]] 지역의 조선인 학생들을 동지로 포섭하여 자주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회합을 통해 ① [[일본제국|일본]]이 [[태평양 전쟁|전쟁]]으로 피폐해진 이 시기에 독립 쟁취를 위해 봉기할 것, ② [[만주]]에 비밀결사의 본부를 설치해 독립국민군(獨立國民軍)을 편성할 것, ③ 만주를 [[조선]]의 영토로 할 것, ④ [[전주 이씨]] [[왕공족]]들은 매국의 책임자로 처단하고 [[공화국]]으로 조선 독립을 실현할 것 등 네 가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향 제주도로 돌아와 계몽소설 창작, 조선의 농촌 실정과 사상운동 동향에 대한 조사, 제주도 지역 진출 후 탈출 경로 탐색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3년 11월 2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4년 6월 3일 [[오사카]]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8.15 광복]]을 맞아 복학해 학교를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신흥무진(新興無盡) 주식회사를 창립해 [[사장]]에 취임했다. 1967년 6월 27일에는 영륭산업(永隆産業) [[전무이사]]로서 수출용 원자재 계약을 위해 [[일본항공]]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6706280009920202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67-06-28&officeId=00009&pageNo=2&printNo=392&publishType=00020|출국한]] 기록이 보인다. 1995년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1999년 5월 26일 별세했고, 그의 유해는 2006년 6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성 기업인]][[분류:제주 부씨]][[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출생]][[분류:1999년 사망]][[분류:대통령표창(독립유공자)]][[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