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의 국보)] ||<-2> [[파일:정부상징.svg|width=28]] '''[[대한민국의 국보|{{{#f39100 대한민국 국보 제260호}}}]]''' || ||<-2> {{{#fff {{{+1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br]{{{-1 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국립중앙박물관,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 '''{{{#fff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분청 || || '''{{{#fff 수량/시설}}}''' || 1점 || || '''{{{#fff 지정연도}}}''' || 1991년 1월 25일 || || '''{{{#fff 제작시기}}}''' || [[조선시대]](15세기 후반) || [[파일: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1.jpg|width=550]] [[파일: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2.jpg|width=550]] [목차] == 개요 == 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조선]] [[세조(조선)|세조]]~[[성종(조선)|성종]]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분청사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대한민국 국보]]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내용 == 높이 9.4cm, 입지름 4cm, 밑지름 6.3cm, 몸지름 24.1cm.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로, 연대 확인 결과 15세기 후반에 [[호남]]지방의 [[고창군]] 용수리, [[광주광역시]] 충효동 등의 요에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조선 세조 재위시기 또는 성종 즉위 초기에 해당된다. 야외용으로 [[술]]이나 [[물]]을 담아 사용했던 자기로, 특이한 검은색 안료를 사용하여 분청사기 박지기법으로 만들어진 최우수작으로 여겨진다. 조선 초기 한국의 도자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하게 사용된다. == 외부 링크 == * [[https://ko.wikipedia.org/wiki/분청사기_박지철채모란문_자라병|한국어 위키백과 :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6279&cid=40942&categoryId=33065|두산백과 : 분청사기박지모란문철채자라병]] == 국보 제260호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1,02600000,11&pageNo=5_2_1_0|문화재청 홈페이지 :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粉靑沙器 剝地鐵彩牡丹文 扁甁)]] >조선시대 만들어진 분청사기 병으로 야외에서 술, 물을 담을 때 사용하던 용기이다. 자라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자라병이라 불리우며, 크기는 높이 9.4㎝, 지름 24.1㎝이다. > >병 전체를 백토로 두껍게 바르고, 윗면에는 모란꽃과 잎을 간략하게 나타냈다. 무늬가 새겨진 곳 이외의 백토면을 깎아낸 후, 검은 색 안료를 칠하여 흑백의 대조가 대비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와 같은 무늬 장식기법을 박지기법이라 하는데, 분청사기 무늬 중 조형적으로 가장 뛰어나다. > >이 병의 박지모란무늬는 구성이 대담하고 활발할 뿐만 아니라 무늬와 바탕면과의 대조를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탕면에 검은 색 안료를 입혔다. 병의 밑면에도 모란을 선으로 새겨 장식하고 있다. 굽은 낮고 바닥 가장자리에 덩굴무늬 띠를 돌렸으며, 유약의 색은 회청색으로 광택이 있으나 바닥의 일부는 산화되어 변색되어 있다. > >박지기법과 검은 색 안료의 사용이 잘 조화되어 분청사기 특유의 대범하고 활달한 분위기가 잘 나타난 작품이다. [[분류:대한민국의 국보]][[분류:조선의 도자기]][[분류: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