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에 위치한 사찰, rd1=불국사)] [[파일:external/www.gyeongsan.go.kr/00375-1.jpg]] 佛窟寺 [목차] [clearfix] == 개요 ==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불굴사길 205(강학리 5)에 있는 [[절(불교)|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 역사 ==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옥희(玉熙)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찰 옆에 석굴이 있는데 거기에서 [[원효]](元曉)가 수도했다고 하며, [[김유신]]도 이곳에서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종교)|기도]]하다 천신(天神)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고도 한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건물이 500동에 이르고 암자가 12곳, 물레방아가 8대나 있었으며 '''지금과는 반대로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번창하였으나, 조선 [[영조]] 12년(1736)에 큰 비가 내려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졌다. 그 뒤 [[송광사]]에서 온 어느 노승이 중건하였지만, 불굴사는 과거의 사세를 찾지 못하고 결국 쇠퇴하여 은해사의 말사로 오늘에 이른다. 절이 갑자기 쇠퇴한 이유를 전하는 설화가 있다. 조선시대 들어 유생들이 절을 놀이터로 삼고 승려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등 횡포를 부리는 탓에 불굴사는 크게 곤욕을 치렀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점잖은 선비가 찾아왔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유생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방도를 묻자, 선비는 산 너머 솔밭에 가면 큰 거북돌이 있을 테니 그 거북의 눈을 빼면 손님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일러주었다. ~~유생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답한게 킬포인트. 사실 손님이 아예 오질 못하게 됐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승려들이 선비에게 들은 대로 거북의 눈을 빼자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가 오더니 산사태가 일어나 절이 모두 묻혀버렸다. ~~근데 이 이야기로 따지면 유교를 따르는 선비와 불교를 따르는 승려 모두 원시신앙을 믿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뭐병~~ 이후 작은 암자만 복원하여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고 한다. == 건물 == 법당과 약사전·염불당·산신각·석탑·염화실·종무소 등 건물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429호로 지정된 불굴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약사여래입상과 석등·부도 등이 현전한다. 이 중 삼층석탑은 창건 당시에 조성된 것으로 높이 7.43m이다. 약사여래 입상은 머리에 모양이 족두리 비슷한 장식이 있어 주목받으며, 6km 떨어진 [[팔공산]] [[갓바위(팔공산)|갓바위]]와 마주본다고 하여 민간에서는 영험한 불상이라고 소문이 났다. 1976년 사찰 옆 석굴을 수리하다가 청동불상 1좌를 발굴하기도 하였다. 주불전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이 없고, [[1988년]] [[인도]]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불교)|사리]]를 봉안한 석탑이 있다. 불굴사가 번성했던 시절의 옛 대웅전 자리를 찾아 적멸보궁을 짓고 안에 탑을 설치하였다. 약사여래입상(문화재자료 401호)은 약사전 건물 안에 봉안되었는데, 호사가들은 약 6 km 떨어진 [[갓바위(팔공산)|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불굴사 약사여래입상이 서로 마주 보며, 갓바위가 [[양]](陽)이고 약사여래입상이 [[음]](陰)이 되어 한 쌍을 이룬다 [[카더라]]. == 교통 == [[대중교통]]으로는 [[경산 버스 803|803번]], [[경산 버스 818|818번]] 능성행, [[경산 버스 하양1|하양1번]] 능성행이 있다. 803번은 음양리와 능성동 쪽이 아니라 신한교차로에서 갓바위 쪽으로 가기 때문에 신한리에서 내려야 된다. 또한 818번은 아침에 2번, 밤에 1번만 운행하기 때문에 주의. 버스에서 하차 후 40분 정도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분류:대한불교조계종 말사]][[분류: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분류:경산시]][[분류:한국의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