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커스 S 기관포(Vickers S Cannon)''' [목차] == 제원 == 개발 / 생산 : [[빅커스|빅커스-암스트롱]] 형식 : 중기관포 중량 : 134 kg 전장 : 2.97 m 포신 길이 : 1.7 m 사용 탄종 : 40 mm (1.8 kg) 연사속도 : 100발/분 포구속도 : 570 m/s 급탄 방식 : 15발 상자형 탄창 탑재 기종 : [[호커 허리케인]] == 소개 == '''빅커스 클래스 S 40mm'''(1.57인치)라고도 불리는 이 중기관포는 1930년대 후반에 항공용 무장으로 개발이 시작되었다. 탄약은 [[영국 해군]] 함선들에 실리는 2파운더 [[대공포]]인 [[폼폼 포]](Pom-pom Gun)에 쓰인 40x158R 카트리지를 기반으로 따로 개발되었다. 원래 이 무기는 [[1차 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에 [[영국]]의 코번트리 병기창(Coventry Ordnance Works)에서 개발해낸 37mm 11/2파운더 COW 건의 개념에서 파생된 [[기관포]]였다. COW건은 원래 중폭격기의 선회 총좌에 올려져 방어 무기로 사용되었고 S건도 처음에는 특별히 개조를 거친 [[빅커스 웰링턴]](Vickers Wellington II) 폭격기에 장착되어 테스트를 받았다. 이 방어총좌 형식은 제식 무기로 채택되지 않아 S건은 한동안 병기창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공중에서 효과적으로 지상의 [[전차]]나 [[장갑차]] 같은 기갑 차량들을 파괴할 수단이 필요해지자 다시금 꺼내져 보스콤 다운(Boscombe Down) 실험장에서 사격 테스트를 받게 된다. 새로 설정된 지상공격 임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용의 특수 장갑 관통탄도 개발되었다. == 개발 == 이렇게 만들어진 빅커스 S건을 탑재하는 후보를 정하는 문제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RAF]]에서 [[루프트바페]]를 상대로 요격 임무에 치중하고 있던 [[스핏파이어]]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고, 그나마 2선으로 물러나기 시작한데다 막 굴리기 알맞은 [[호커 허리케인]]이 유력한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렇게 해서 호커 허리케인의 지상 [[공격기]] 형식이 만들어졌는데, 이것들은 '''호커 허리케인 Mk IID'''로 불렸다. S건은 포신 길이만 1.7미터나 될 정도로 너무나 커서 날개 안에 내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공격기로 개조된 허리케인들은 양 날개 아래에 각각 1문씩 S건을 매달게 된다. 시험이 좀 더 진행되면서 무거운 중량 문제를 떠나 공기역학적인 문제점들도 드러났다. 호커 기술진들은 [[두랄루민]] 박피 2장을 프레스 가공하여 기관포 좌우에서 죄어 유선형 카울링을 만들어냈고, 이 장비는 곧바로 채용되었다. == 실전 투입 == [[1942년]] 중반부터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제6스쿼드론(No. 6 Squadron)의 조종사들이 호커 허리케인 IID를 몰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신무기를 이용하여 148대의 전차를 명중시켰는데 그중에서 47대를 격파했다고 한다. 그밖에 거의 200대에 달하는 [[추축군]] 차량들이 이 40mm 기관포가 내뿜는 포화에 불타올랐다. 그러나 탑재기인 허리케인 IID는 사실상 빅커스 S건을 장착한 것 외에 지상 공격 임무를 수행하면서 받게 될 대공 사격으로부터 기체를 보호할 장갑은 거의 추가되지 않았고, 이때문에 낮게 날면서 지상 목표를 향해 사격하는 동안 여러 대가 추축군의 대공포에 피탄되어 큰 손실을 입었다. 운동에너지가 무려 221,000줄[* [[A-10]]의 고정무장인 [[30mm]] [[GAU-8]] 개틀링건의 초기형 탄약이 203,000줄이다. ]에 달하는 40mm 탄약은 장갑차나 구형 전차, [[돌격포]] 같은 기갑 차량에는 효과를 볼 수 있었지만 새로 전선에 모습을 나타낸 [[티거]] 중전차처럼 장갑이 두꺼운 목표물에는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1943년]]부터 운용이 개시된 '''호커 허리케인 IV'''는 대공 사격에 견디기 위해서 엔진과 조종석 및 연료탱크 주변에 장갑판을 덧붙여 생존성이 조금 나아졌다. S건 자체적으로도 탄창 용량을 12발에서 15발로 늘리고 포신을 개량하는 등, 약간의 개선 작업이 가해졌다. [[1944년]]부터 빅커스 S건으로 무장한 허리케인들은 [[일본군]]을 상대로 [[동남아시아]] 전역에 투입되었다. 이 전역에서는 북아프리카 전선과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철갑탄 대신 [[고폭탄]]을 장전하고 출격했는데, 보급로를 오가는 차량들과 강위로 항해하는 소형 선박들을 파괴하는데는 더 효율적이었다. 또한 일본군의 전차들은 장갑이 빈약하여 40mm 고폭탄으로도 충분히 격파할 수 있어 독일 전차군단을 상대했던 파일럿들에게는 [[군침이 싹 도노|입맛이 다셔지는 목표였다고 한다]]. 동남아시아 전선에서 평가에 따르면 전차에 발사된 탄의 평균 25%가 목표물에 명중했는데, 이것은 대전차 무기로 흔히 쓰이던 60파운드 RP-3 로켓탄의 명중률 5%에 비하면 현저히 높은 것이었다. 리틀존(littlejohn)이란 별칭으로 불린 40mm HE 포탄은 AP탄보다 명중률이 거의 2배나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것은 고폭탄두가 철갑탄두에 비해 가볍고 탄속이 더 빨라 조준에 사용된 [[M1919 브라우닝]] [[기관총]]의 .303(7.7mm) 기총탄과 비슷한 탄도 특성을 보였던 탓이 크다. 영국 공군은 빅커스 S건으로 무장된 허리케인 IV를 가리켜 "탱크버스터"라고 부르면서 [[1947년]]까지도 제식 병기로 유지했는데, 이것들은 마지막까지 일선에서 활동한 허리케인 전투기였다. [[분류:기관포]][[분류:항공 병기/세계 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