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896년 출생]][[분류:1975년 사망]][[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의 정치인]][[분류:나치당원]][[분류:슈투름압타일룽/인물]][[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질서경찰/인물]][[분류:힐데스하임 출신 인물]]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 '''무장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br]{{{+2 빌헬름 코페}}}[br]Wilhelm Koppe''' |||| ||||{{{#!wiki style="margin: -4px -9px" [[파일:코페1.jpg|width=100%]]}}}|||| || {{{#FFF 이름}}} ||<(>'''Karl Heinrich Wilhelm Koppe'''[br] 카를 하인리히 빌헬름 코페 || || {{{#FFF 출생}}} ||<(>[[1896년]] [[6월 15일]] [br] [[독일 제국]] 힐데스하임 || || {{{#FFF 사망}}} ||<(>[[1975년]] [[7월 2일]] (향년 79세) [br] [[서독]] 본 || || {{{#FFF 복무}}} ||<(>[[독일제국군]] [br] [[슈투름압타일룽]] [br] [[슈츠슈타펠]] [br] [[질서경찰]] || || {{{#FFF 최종계급}}} ||<(>[[독일제국군]] [[중위]] [br] [[질서경찰]] [[대장(계급)|대장]] [br]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대장(계급)|대장]] (상급집단지도자) || || {{{#FFF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 || {{{#FFF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 ||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코페2.jpg|width=100%]] || || [[나치 경례]]를 하는 코페[* 오른쪽이 빌헬름 코페, 코페 앞에 있는 인물은 [[막스 쉬멜페니히]] [[슈츠슈타펠|SS]][[대령]]이다.] || [[나치 독일]]의 정치인, [[무장친위대]] 및 [[질서경찰]] [[대장(계급)|대장]]이다. == 초기 행적 == [[힐데스하임]]에서 태어난 코페는 [[1914년]] [[8월]]에 독일육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종군했고 부상당해 1급 철십자 훈장과 전상훈장을 받았다. 중위계급으로 전후 군에서 물러난 코페는 사업가로 일하면서 [[1930년]] [[9월]]에 [[나치당]]에 입당하고 이듬 해 [[SA|돌격대]]에 입대했다. == 친위대 행적 == || [[파일:코페3.jpg|width=100%]] || || [[슈츠슈타펠|SS]][[대령]] 코페 || [[1932년]] [[1월 2일]]에 친위대에 들어간 코페는 [[1933년]] [[12월]]에 나치당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그는 각지의 친위대 지방조직을 전전한 후 [[1935년]] [[11월]]부터 [[1936년]] [[9월]]까지 친위대 상급지구 슈프레의 참모장이 되었다. || [[파일:코페4.jpg|width=100%]] || || [[슈츠슈타펠|SS]][[중장]] 코페 || 그 후 [[1939년]] [[9월]] 친위대 [[중장]]으로 승진하고 [[1939년]] [[10월]]까지 친위대 상급지구 엘베의 보안경찰 감찰관으로 근무하며 드레스덴과 작센의 [[게슈타포]]를 감독했다. == [[제2차 세계 대전]] == [[1939년]] [[10월]]부터 [[폴란드 침공]] 후 독일령으로 편입된 구 폴란드령에 설치된 친위대 상급지구 발터의 지도자와 발터지구 친위대 및 경찰지도자로 임명된 코페는 [[1943년]] [[11월]]까지 자리를 유지했는데 [[1943년]] [[10월]]부터 [[1945년]] [[4월]]까지 [[프리드리히 크뤼거]] [[슈츠슈타펠|SS]][[대장(계급)|대장]]을 대신하여 친위대 동부지구 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코페는 [[1942]]년 친위대 대장 및 [[질서경찰]] 대장, [[1944년]] [[무장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전황이 악화되던 가운데, 영토내의 3만명에 달하는 결핵환자의 처형을 주도한 코페는 격화되던 [[레지스탕스]] 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남성의 가족을 처형하고 여자와 아이들은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이에 [[1944년]] [[7월]]에 크라코프에서 폴란드 지하조직이 코페를 암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 전후 행적 == 독일의 패전 후, 가명으로 본의 초콜렛 공장에서 대표직으로 일한 코페는 [[1960년]]에 체포되었지만 [[1962년]]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정식재판은 [[1964년]]에 본에서 열려 14만 5천명의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건강상태를 이유로 재판은 연기되어 [[1966년]]에 본 재판소는 코페의 기소중지를 결정했다. 서독정부는 폴란드 정부로부터 코페를 전범혐의로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당시 소련치하의 폴란드와 냉전상황이어서 이를 거부했다. 코페는 [[1975년]]에 [[본(독일)|본]]에서 향년 79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