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헤센카셀 방백)] ---- ||<-2> '''헤센카셀의 방백[br]{{{+1 빌헬름 8세}}}[br]Wilhelm VIII, Landgraf von Hessen-Kassel'''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빌헬름 8세.jpg|width=100%]]}}} || || '''출생''' ||[[1682년]] [[3월 10일]][br]헤센카셀 방백국 [[카셀]]|| || '''사망''' ||[[1760년]] [[2월 1일]] (77세)[br]린텔른|| ||<|2> '''재위''' ||<#E7E7E7>헤센카셀 방백국의 방백|| ||[[1751년]] [[4월 5일]] ~ [[1760년]] [[2월 1일]]|| || '''배우자''' ||작센차이츠의 도로테아 빌헬미네[br],,(1717년 결혼 / 1743년 사망),,|| || '''자녀''' ||카를, 프리드리히 2세, 마리아 아말리아|| || '''아버지''' ||헤센카셀 방백 카를 1세|| || '''어머니''' ||쿠를란트의 마리아 아말리아|| || '''형제''' ||[[프레드리크 1세]], 조피 샤를로테, 마리 루이제, 막시밀리안, 게오르크 카를|| [목차] [clearfix] == 개요 == 헤센-카셀 [[방백]](Landgraf).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 시기에 헤센 군주로서 활동했다. == 생애 == 1682년 3월 10일에 [[카셀]]에서 헤센-카셀 방백 카를(1654~1730)과 [[쿠를란트-젬갈렌|쿠를란트]]의 마리아 아말리아(1635~1711)의 3남으로 태어났다. 3남이라는 입지상 원래는 헤센-카셀 방백국의 군주로 거론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궁정에서 교육을 받은 빌헬름은 [[파리(프랑스)|파리]]와 [[제네바]]로 유학갔고,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네덜란드]]에서 군복무를 시작했다. 그는 여러 연대 지휘관과 네덜란드 여러 요새의 지휘관을 거쳐 1727년 기병대 장군의 직위에 올랐다. 그는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때 네덜란드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전쟁에 가담하여 1747년까지 종군했다. 1720년, 형 [[프레드리크 1세|프리드리히]]가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 그후 1730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형 프리드리히를 대신해 헤센-카셀 방백령의 [[총독]]으로서 헤센-카셀의 실질적인 통치를 맡았다. 1751년 프리드리히가 사망하자, 그는 정식으로 헤센-카셀의 방백으로 즉위했다. 빌헬름 8세는 헤센군 증강 작업에 착수해 약 24,000명에 달하는 병력을 징집했다. 이는 당시 헤센-카셀 방백령의 총인구가 약 30만 명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대단히 많은 숫자였다. 1756년 [[7년 전쟁]]이 발발하자, [[개신교]] 국가를 지원하는 헤센-카셀 방백령의 정책에 따라 개신교 국가인 [[프로이센 왕국]], [[영국]]-[[하노버 왕국|하노버 선제후국]]과 연합하여 [[가톨릭]] 국가인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 [[프랑스 왕국|프랑스]]와 대립했다. 그 결과 헤센-카셀 방백령 국토 전체가 전쟁에 휩쓸려 초토화되었다. 빌헬름 8세는 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 1760년 2월 1일 린텔른에서 사망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들 프리드리히 2세가 그 뒤를 이어 헤센-카셀 방백이 되었다. [[분류:독일의 군주]][[분류:헤센카셀 가문]][[분류:1682년 출생]][[분류:1760년 사망]][[분류:카셀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