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세계의 섬들)]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사도섬을 관할하는 지자체, rd1=사도시)] 佐渡島 (좌도도) さどがしま ||[include(틀:지도, 장소=佐渡島, 높이=224px, 너비=100%)]|| [목차] == 개요 == [[일본]] [[니가타현]] 북서쪽에 있는 섬. 섬 전체가 [[니가타현]] [[사도시]]에 속하며 면적은 855km²로 한국의 섬들과 비교하면 가장 큰 [[제주도]](1,850km²)의 절반 정도 수준이며, 두 번째로 큰 [[거제도]](379.5km²)보다는 두 배 이상 크다. 일본에서는 본토 4개 섬을 포함해 6번째로 큰 섬이며 본토에 속한 섬 중에서는 가장 크다.[* 1.[[혼슈]] 2.[[홋카이도]] 3.[[규슈]] 4.[[시코쿠]] 5.[[오키나와 섬]] 6.[[사도 섬]] 7.[[아마미오 섬]]([[아마미 군도]]) 8.[[쓰시마 섬]] 9.[[아와지 섬]] 10.[[아마쿠사시|아마쿠사]] 시노시마(下島) 11.[[야쿠 섬]] 12.[[타네가 섬]] 13.[[후쿠에 섬]]([[고토시]]) 14.[[이리오모테 섬]]([[야에야마 제도]]) 15.[[도쿠노 섬]]([[아마미 군도]]) 16.[[오키 섬]] 17.[[아마쿠사시|아마쿠사]] 우에시마(上島)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러시아와 분쟁 중인 '[[북방 영토]]'의 섬 3개는 제외.(이투루프 섬, 쿠나시르 섬, 시코탄 섬)] 일본에서 이 섬을 일컫는 명칭으로 사도가시마(さどがしま)와 사도시마(さどしま)와 같이 두 가지가 있다. 본토 일본인들 중에도'사도시마'로 읽는 사람이 많지만, 현지인들은 '''사도가시마'''(佐渡ヶ島)라고 부른다. 이 섬을 비롯한 인근 지역의 이름은 '사도가'가 아니라 '사도'이다. 한국에는 '사도 섬'이라는 명칭으로 많이 알려졌다. 일본 정부관광국에서는[[https://www.welcometojapan.or.kr/location/regional/niigata/sadogasima.html|#]]에 따르면 '사도가시마 섬'과 '사도 섬'을 혼용하고, 주 니가타 대한민국 총영사관[[http://overseas.mofa.go.kr/jp-niigata-ko/brd/m_260/view.do?seq=846425|#]]에서는 '사도 섬'을 사용한다. 현재 인구는 5만 2천명 수준인데 인구가 3만 명인 쓰시마 섬[* 한때 7만 명에 근접한 수준에 도달하였으나 점점 감소하는 중이다.]처럼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키 섬]]도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4만 명이 넘었으나 현재는 2만 4천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 역사 == [include(틀:일본의 옛 지명)] 사도시가 설치된 2004년 이후는 [[사도시#s-2|사도시 문서의 역사 문단]] 참조. 원래는 사도라는 다른 쿠니(国)였으나 근대 들어서 [[니가타현]]에 편입되었다. 옛날에 [[유배]]지로도 악명이 높았던 섬. [[에도 시대]]에는 사도봉행이 놓였다. 유배객으로서 많은 [[귀족]]들이 사도로 들어왔고, 니시미카와 사금산이 있어 예부터 금의 섬으로 알려졌다. 사도국이 성립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701년에 이곳에 사와다군(雑太郡)을 두었고 721년에 사와다군, 카모군, 시모치군의 3군으로 나뉘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슈고다이로서 혼마씨를 사도에 파견하였다. 동시에 사도에 들어온 고케닌 시부야, 아이하라 씨 등과 함께 센고쿠 시대까지 이들이 사도를 지배했다. [[에치고]]국의 다이묘 우에스기 겐신의 뒤를 이은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평정해 혼마씨는 멸망하였고 [[에도 막부]]가 사도 봉행소를 두어 사도국을 지배하였다. 사도금광[* 일본의 광산은 금광이니 은광이니 하는 명칭이 아니라 자원+山으로 표기한다. ex) 금광: 킨잔金山, 은광: 긴잔銀山]에서 산출된 금은 막부의 재정을 넉넉하게 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때 사도 봉행소를 폐지하고 사도현이 되었다. 1871년 1차 부현 통합으로 아이카와현이 되었고 1876년의 2차 부현 통합으로 니가타현에 흡수되었다. 1896년에는 사도 3군(사와다군, 카모군, 시모치군)이 사도군으로 통합되었다. == 교통 == 섬 동쪽에 [[사도 공항]]이 있다. 한때 [[니가타 공항]]을 연결하는 노선만 한정하여 운항하게 된 적이 있었으나 누적된 적자로 인하여 [[2014년]] 이후로 사실상 운항이 중단되었다. 도로 교통은 섬내에서는 [[일본 350번 국도|350번 국도]], [[45번 니가타현도]]가 부설되었다. 사도가 섬과 일본 본토[* [[니가타]] 등이 이에 해당된다.]를 오가는 이동수단은 어쩔 수 없이 [[여객선]] 혹은 [[페리(선박)|페리]]를 타고 가야 하는 불편이 있다. 페리는 [[제3섹터]] 회사인 사도 기선에 의해 운항되고 있다. 사도 기선은 일본 최초의 제3섹터 회사로 니가타현이 지분의 35.51%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섬 동부의 료츠에서 [[니가타시]]로 가는 노선과 섬 서부의 오기[* 타라이부네(たらい船)라고 하는 나무 대야 배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다.]에 서 [[조에츠시]] 나오에츠항으로 가는 노선이 운항중이다. 교통카드 사용도 가능하다. 섬내에는 버스 교통이 있다. == 사도 광산 == 한때 금광으로 이름 높은 지역이었으며[* 그걸 반영해서 [[징기스칸 4]]에서는 사도 섬에 자원으로 금이 있고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전략 게임 [[쇼군: 토탈 워]] 시리즈에서도 사도 섬에 금광이 위치하여 정복 1순위로 꼽히곤 한다.], 사실상 일본 최대의 금광.[* 규슈의 타이오킨산이 사도가금광보다 금을 많이 뽑아냈던 적도 있지만, 사도가는 1601~1989년, 타이오는 1894~1972년으로 채굴 시작 시간, 채굴기간, 종료일까지 모두 타이오보다 길다.] [[에도 막부]] 시대에는 도쿠가와 가문의 금고 역할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컬트 매니아들에겐 성지처럼 통한다. 비유하자면 [[일본]]판 [[황해도]] [[옹진군(황해도)|옹진군]]. 이후 군함도처럼 미츠비시그룹에 매각되어 미츠비시 그룹 소유가 되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전쟁물자를 확보하는 시설이었고 여기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끌려와 [[강제노동|강제노역]]을 하였다. 최소 1141명의 조선인들이 노역했다는 일본 정부의 문서가 공개된 바 있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11221/110891605/1|#]] 노역을 시켰던 기업은 전후 조선인 1141명의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 1949년 일본 정부에 해당 금액을 [[공탁]][* 변제공탁이라 해서, 돈을 갚아야 하는 데 받을 사람이 어디 있는지 모를 경우에 정부에 대신 해당 금액을 맡겨둘 수 있다. 1949년이면 [[태평양 전쟁]] 패전 후 4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다 대부분 일본을 떠났을 것이기 때문에, 노역을 했던 조선인들의 소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했으나, 10년 뒤 1959년[* [[한국전쟁]]이 1950-1953년이다] '''정작 일본 정부가 시효가 지났다며 이를 국고로 환수'''했다는 내용의 문서이다. 일본 정부는 2018년 조선인이 징용된 사도 금광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추진 후보로 선발하려다가 보류했지만, 니가타현과 사도시가 계속 추진하였으며[[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6/07/06/0200000000AKR20160706149100073.HTML?input=1195m|#1]][[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2868665|#2]] [[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4&sid2=235&oid=001&aid=0010220088|#3]] [[https://m.yna.co.kr/view/AKR20211227159200073?section=international/all|#]] 결국 2021년 12월 28일 일본 문화심의회가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했다. 2020년 6월 [[군함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를 알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아 유네스코의 경고까지 받은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4&oid=025&aid=0003117601|사례]]가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등재추진측에서는 '에도시대까지가 대상이며 태평양 전쟁 기간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애초에 이전에 유네스코 권고가 나왔던 [[하시마 섬]]을 비롯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도 형성 시기로 따지면 전쟁 기간에서 수십년이나 전이였기 때문에 이전의 [[군함도]] [[강제징용]] 관련 권고 이행 미비가 사도 금광의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결국 2022년 1월 28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추천을 결정'''했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20128/k10013454191000.html|#]] 2월 1일[[https://www3.nhk.or.jp/news/html/20220201/k10013460181000.html|#]] 그러나 과거 __일본이 위안부 문서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타 회원국이 반대하면 해결될 때까지 심사를 무기한 중단' '''시키는 제도를 강력히 요구해 도입__시킨 바 있는데[* 21년 4월 도입], [[자승자박|이를 한국과 중국이 사용할 경우]] 일본은 사도 광산 등재에 난관을 겪을 것이다.[[https://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029253.html|#]] 그 외에도 유네스코에서 지난 21년 7월, 추천서 제출 전에 관계국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지침이 채택되었기에, 일본 내에서도 가능성이 없다며 추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강행되었다고 한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역할이 있었으며 참의원 선거 앞두고 지지층 결집 분석이 나왔다.[[https://m.yna.co.kr/view/AKR20220129032800073?section=international/all|#]] 특히, 추천한다고 발표하기 전에 한일 갈등을 우려하는 미국에 일본 정부가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고 보도됐다.[[https://m.yna.co.kr/view/AKR20220130014051073?section=international/all|#]]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폐기 사례와 같이 미국의 찬성을 이끌어내어 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려는 시도로 풀이되기도 한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일본의 시도에 반발하고 있다.[[https://m.yna.co.kr/view/AKR20220130037800083?section=international/all|#]] 러시아 외무부도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일본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인류의 기억에서 지우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를 상대로 지속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https://m.yna.co.kr/view/AKR20220210004200080?section=international/all|#]] 러시아는 현재 유네스코 위원국 21개국 중 하나여서 러시아만 반대해도 만장일치 통과가 무산되고 러시아가 다른 위원국들에 반대 의견을 피력하면 2/3 찬성이 어려워진다. [[군함도]] 등재때와 상황이 달라진걸로 보인다.[[https://mnews.jtbc.joins.com/News/Article.aspx?news_id=NB12045506|#]] 위원국 중에는 인도도 있는데 인도 역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에게 피해를 받은 국가다. 추천서에 에도시대로 축소해버리고, 사도 금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어떻게든 흔적을 없애려는 문서가 담겼다.[[https://m.yna.co.kr/view/AKR20220213056500073?section=international/all|#]] [youtube(K6gCgtvzsKY)] 2022년 7월 28일 유네스코가 사도광산 추천서의 미비점을 지적하며 추천서를 기한까지 자문기관에 보내지 않았으며 2023년 등록 심사를 위한 절차를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https://m.yna.co.kr/view/AKR20220728012800073?section=international/all|#]] 결국, 정치권 내에서 질타가 쏟아진 것이다.[[https://m.yna.co.kr/view/AKR20220729079000073?section=international/all|#]] 사도 광산과 관련해 5명의 추가 증언이 나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02394?sid=104|#]] 2022년 9월 29일 다시 잠정추천서를 냈고[[https://m.yna.co.kr/view/AKR20220930068300073?section=international/all|#]] 2023년 1월 19일 재추천서를 냈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30120/k10013954981000.html|#]] 2023년 8월에 현지 조사를 했다.[[https://m.yna.co.kr/view/AKR20230831148800073?section=international/all|#]] == 기타 == [[창가학회]] 등 일련종 계열 종교의 개조 니치렌(日蓮)이 1271년부터 74년까지 사도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련종 등등 종교들이 성지로 여긴다. 이 섬을 배경으로 한 [[SCP]]가 존재한다. [[http://scpko.wikidot.com/scp-2627-jp|번역]] 일본 유일의 [[따오기]][* [[니가타현]]에서 따오기는 곧 니가타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해서 도쿄와 니가타를 잇는 신칸센의 등급에는 토키가 있으며 [[니가타시]]의 가장 높은 빌딩이자 컨벤션 홀로 쓰이는 빌딩의 이름 또한 새의 이름을 빌려와 토키멧세(朱鷺メッセ)로 명명 되어졌다.] 서식지로 유명하다. 일본어로는 トキ(토키)라고 하는데 한때 일본 내에서 멸종되었다가 중국에서 데려와 다시 번식시키고 있다. 이곳에는 [[다이쇼 시대]], 나가오카 철도[* 한때는 [[도큐 전철]] 그룹 산하였던적도 있으며, 니가타현 본토([[나가오카시]])에서도 철도를 운행하였으나 1995년 철수하여 현재는 에치고 교통이라는 이름으로 버스 노선만 운영중이다. 또한,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가 이 회사 사장 출신이며 이때의 경력을 토대로 [[신칸센 정비법]]의 기본이 되는 다나카 구상을 추진한다.]에서 사도철도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등의 이유로 면허를 반납하여 [[미성선|건설되지 못하였다]]. 현재는 니가타 교통에서 같은 구간을 지나는 버스노선을 운행중이다. 특히 원맨운전으로 전환되기 전 까지는 버스정류장을 [[역]]으로 칭하였으며, 이 중 현재 카나이[* 이전 지명이 카나자와이다.] 정류장은 한자까지 동일한 [[카나자와역]]이었다. 철도와 전혀관계없지는 않았던 것이 철도 위탁 화물을 취급했다(...) [[분류:일본의 섬]][[분류:사도시]][[분류:한일관계]][[분류:중일관계]][[분류:세계유산 잠정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