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서진의 황족]][[분류:296년 사망]][[분류:하내 사마씨]] [include(틀:진서)] ||<-2> '''하비헌왕(下邳獻王)[br]{{{+1 司馬晃 | 사마황}}}''' || || '''시호''' ||헌(獻) || || '''작위''' ||무시정후(武始亭侯) → 서안남(西安男) → 하비왕(下邳王) || || '''성''' ||사마(司馬) || || '''이름''' ||황(晃) || || '''자''' ||자명(子明) || || '''부친''' ||[[사마부]] || || '''생몰''' ||? ~ 296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진]]의 황족으로 자는 자명(子明). == 생애 == 안평헌왕 사마부의 5남으로 [[위(삼국시대)|조위]]에서 무시정후(武始亭侯)로 봉해지고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임명되었다. 뒤에 서안남(西安男)으로 사봉되고 동관태수(東莞太守)를 역임하였다. 265년 서진이 들어선 뒤 하비왕(下邳王)에 봉해지고 식읍 5176호를 받았다. 장수교위(長水校尉), 남중랑장(南中郞將)을 역임하였다. 273년 사지절(使持節), 도독영익2주제군사(都督寧益二州諸軍事), 안서장군(安西將軍), 익주자사(益州刺史)가 되었으나 병에 걸려서 부임하지 못했다. 283년 상서우복야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에 진동장군(鎭東將軍), 도독청서2주제군사(都督靑徐二州諸軍事)로 임명되었다. 290년 [[혜제(서진)|혜제]]가 즉위한 뒤 입조하여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임명되고 산기상시(散騎常侍)가 더해졌다. 황후 [[가남풍]]이 [[양준(서진)|양준]] 일파를 주륙하려고 할 때 사마황은 호군(護軍)을 거느려 동액문(東掖門)에 주둔했으며, 뒤에 상서령(尙書令)에 임명되었다. 사마황은 이후 사공(司空)으로 옮기고 시중(侍中)이 더해졌으며, 상서령은 그대로 받았다. 이후 296년에 훙서하여 태부(太傅)로 추증되고 헌(獻)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사마황은 정직함과 청렴함, 효우, 겸허한 태도로 종실 내에서 명망이 높았다. 사마황의 슬하에는 사마부(司馬裒)와 사마작(司馬綽)이 있었다. 사마부는 요절했으며, 사마작은 심한 병을 앓고 있었고 양성현왕(良城縣王)에 봉해졌다. 그래서 태원왕 [[사마보(태원왕)|사마보]]의 3남 사마위(司馬韡)를 사마부의 후사로 삼았으나 요절하여 사마위의 아들 사마소(司馬韶)를 후사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