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212121><:><-2>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사카 || || '''[[라틴어]]''' || Sacae || || '''고대 [[페르시아어]]''' || 𐎿𐎣𐎠 || || '''[[산스크리트어]]''' || शक || || '''[[고전 이집트어]]''' || 𓋴𓎝𓎡𓈉 / 𓐠𓎼𓈉 || || '''[[고전 그리스어]]''' || Σάκαι || || '''[[한자]]''' || [[塞]][* 당대 [[상고한어]]로 Sək이라 발음한다. 현대 [[중국어]]에선 Sè 또는 Sāi.] || [목차] [clearfix] == 개요 == '사카'란 원래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페르시아인]]이 [[스키타이]]인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인도유럽조어]]로 [[궁수]]를 뜻하는 단어 *(s)kéwd-e-ti[* 이 단어에서 영어의 shoot가 유래했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스키타이계 종족들은 서쪽으로는 현대의 [[헝가리]]에서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 동쪽으로 [[알타이]] 산맥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스텝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페르시아인은 이들을 모두 '사카'라고 불렀다. 후대의 [[그리스]] [[로마]] 역사가들은 이들을 구분하여 서쪽인 [[동유럽]]에 있던 이들을 '스키타이', 동쪽인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이들을 '사카'라고 했다. 하지만 '사카'라는 것이 특정 부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스텝 지대에 살던 여러 [[유목민]] 부족을 모두 뭉뚱그려 부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스키타이 계열이나 이란어족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 역사 == 이들은 [[아케메네스 왕조]]나 [[파르티아]]에 정복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살았다. 창건자인 [[키루스 2세]]가 샤카의 일파로 추정되는 [[마사게타이]]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적이 있는 반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 당시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사카족의 [[카타프락토이]]가 페르시아 측에 서서 싸웠다.[* 확실히 확인된 것인 아니지만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 [[영화]]에서 나오는 베수스가 입고 있던 기병 [[갑옷]] 복장도 사카나 사르마티아 중장갑 [[기병]]의 복장으로 추정된다.] 파르티아가 페르시아를 장악한 이후 기원전 2세기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밀려난 [[대월지]]가 서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여러 사카 부족이 월지의 [[공격]]으로 남쪽으로 밀려났다. 그 와중에 대월지에 의해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붕괴되었고, [[파르티아]]도 왕이 전사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건실한 국력을 지녔던 파르티아는 방어에 성공했고 이란에 귀순한 소수 이외에 대부분의 사카족은 이후 [[인도]] 방향으로 밀려 이동했다. 인도로 밀려나기 전에 있었던 그 땅을 '사카스탄'이라고 했는데, 현대 [[이란]]의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시스탄-발루치스탄 지역이다. sistan은 sakastan이 변형된 것이다. 이후 이들은 신드-구자라트-라자스탄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했다. 기원후 1세기에 해당 지역에 곤도파레스 왕조, 혹은 [[인도-파르티아 왕국]]이 들어섰으며, 대부분의 인도-파르티아와 인도-샤카 세력은 이후 서서히 파르티아와 [[쿠샨 왕조]]에 복속되어 [[페르시아]]화, [[인도]]화되었다. [[호탄]]에 잔류한 사카인들도 [[쿠샨 왕조]]의 영향을 받았고, [[소그드인]]은 [[마사게타이]]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 같이 보기 == * [[스키타이]] * [[인도-스키타이]] * [[인도-파르티아 왕국]] * [[마사게타이]] * [[서사트라프]] * [[호탄]]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사카, version=16)] [[분류:중앙아시아의 민족]]